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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 ... 초등학교 2학년 때 시골 촌구석에서 도시로 이사를 왔다. 교과서 빼놓고 책이란 걸 처음 읽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촌에서야 애들이 뭔 책을 읽겠냐? 사시사철 놀거리가 밖에 널렸는데 ... 한번은 부엌에서 불을 때다가 나무쪼가리들 틈에서 너덜너덜해진 썬데이서울을 발견했다. 여자 연예인들 화보를 보고 너무 이뻐서 걔네들이 진짜 사람인지 인형인지 한동안 헷깔리기도 했다. ... 근데 어떻게 그 깡촌에 썬데이서울이 있었을까? ... 물론 내가 들은 최초의 이야기는 어릴 적 잠들기 전 할아버지께 들었던 전설이었다. 괴물지네로부터 처녀를 구한 용감한 총각이야기라든지, 얼굴 없는 몽달귀신 이야기 ... 얘기 듣고 오줌이 마려운데도 무서워서 밖에 못나가고 잠들었다가 이불에 세계지도를 ... 쌌다. 아무튼 ... 도시로 이사오고 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 어느날 엄니가 시장에 갔다 오더니 장바구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놨다. 왕자와 거지 ... 헌책방에서 산 중고책 ... 엄니가 먹을 것도 아니고 왜 갑자기 책을 사 올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맹자 어머니 얘기를 들으셨나? 왕자와 거지 ... 손에 땀을 쥐고 읽었다. 줄거리 .. 옛날 옛날 ... 영국 런던에서 ... 에드워드 왕자가 축복 속에 태어나고 ... 같은날 ... 런던 뒷골목에서 톰이라는 소년이 거지로 태어난다.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톰은 엉겁결에 왕궁으로 숨어들었다가 자기와 너무 닮은 에드워드 왕자를 만난다. 왕자는 답답한 왕궁을 벗어나 친구들과 마음껏 놀고 싶고, 톰은 왕자가 되어 보는 게 꿈이다. 둘은 장난삼아 옷을 바꿔입는다 왕궁 밖에 나갔던 에드워드는 톰으로 오해받아 거지로 살게 되고 ... 왕자가 된 톰은 자기는 거지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밖에서 온갖 개고생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그들이 가난이 잘못된 정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날 왕이 죽고 ... 왕위계승 소식이 전해진다. 에드워드 왕자는 마일즈 기사의 도움으로 왕궁으로 급히 향한다. 드디어 톰의 머리에 왕관이 씌어지려는 순간 ... "멈춰라, 에드워드 왕자는 바로 나다!” 장내는 술렁 ... 톰은 에드워드를 반기고 ... 에드워드는 잃어버린 옥새를 찾아내 자신이 왕자임을 증명한다. 에드워드는 왕위에 오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에드워드는 좋은 정치를 펼 것을 약속한다.
내가 손에 땀을 쥔 이유는, 에드워드 왕자가 뒤바뀐 신분을 회복하지 못하고 평생 거지로 살지나 않을까 ... 또 거지 톰이 잘못해서 거짓왕자 노릇하는 게 발각되면 어쩌나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나는 왕자 에드워드 편이었다. 잃어버린 왕자 자리를 반드시 꼭 다시 찾아야 한다! 불쌍한 에드워드 ... 지금 생각해보니 ... 거지 톰이 왕이 돼서 가난한 사람들 위해 좋은 정치를 펼 수도 있는 거잖어. 에드워드는 부모 잘 만나서 왕자로 태어난 거고 톰은 지지리도 복이 없어서 거지로 태어난 것 뿐인데 ... 그럼 에드워드는 어찌되나? ... 음 ... 가난한 사람들을 규합해서 왕정을 깨부수는 난을 일으키던가 ... 아무튼 ... 나에게 <왕자와 거지>는 허구의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닫게 해주었다. 할아버지께 들었던 전설은 한마디로 쨉도 안됐다. 그리고 책 중간 중간에 그려진, 허구를 사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그림들 ... 다락방같은 책 냄새 ... 짜릿했던 책과의 첫경험 ... 그리고 남몰래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어쩌면 왕자인데 어쩌다가 무슨 사정이 생겨서 지금 가난한 집에 살게 된 것이라고 ... “나중에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올거여 ... 그람 가난한 우리 엄마 아빠는 워쩌지? ... 데꼬갈까? ... 시방까지 나럴 키워줬넌디 ... 아녀, 쪼까 챙피혀 ... 울 엄마 아빠는 촌시렁께 ... 왕궁에 사는 진짜 우리 엄마 아빠는 왕이고 왕비여 ... 다들 멋진 옷에 삐까뻔쩍하게 살텐디 ... 음 ... 일단 식구들은 냅두고 나혼자 왕궁에 가고 ... 낸중에 돈이랑 쌀이랑 먹을거랑 자동차랑 왕창 갖다드리면 되겄지 ... 음 ... 엄니, 며칠 전에 내 종아리 때렸제? ... 낸중에 크게 후회할것이여 ... 나가 누군 지 알고 ... 근디 혹시 나가 워디 사는 지 몰라서 아직까지 안 데려가는겨? ... 아녀, 알긴 아는데 무슨 사정이 있겄지 ... 지둘리믄 꼭 올 것이여 ... 오메, 왕궁에서 언늠 나를 데려갔으면 좋겄다 ... ” ... 근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왕자와 거지 ... 초등학교 때 가난이 싫거나 엄마한테 종아리를 맞고 서럽게 울때마다 “어쩌면 나는 왕자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나를 견딜 수 있게 해준 책 ... 왕자 걸음걸이를 남몰래 연습하게 만들었던 책 ...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었던 책 ... 어릴 적 내 딸이 가장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했던 동화책은 <꽁지닷발 주둥이닷발>이었다. 꽁지와 주둥이가 다섯발이나 될 만큼 크고 무서운 새가 엄마를 잡아가서 다시 찾아오는 이야기인데 ... 딸이 떼를 쓸 때마다 꽁지닷발 주둥이 닷발이 엄마 잡아간다고 협박(?)을 해서 깨갱하게 만들었다 ... 며칠 전 ... 오랜만에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꽁지닷발 주둥이 닷발 얘기를 꺼냈더니 ... “아빠! ... 그건 동화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야 ... 언제까지 그걸 써먹을려고 그래!” 문득 ... 생각이 났다 ... 왕자와 거지 ... ... 나는 언제 깨달았을까? ... 내가 더 이상 버려진 왕자가 아니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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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