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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아이가 생겨 아내 친정집 근처에 집을 구하기로 했다. 장모님 댁 근처에는 들어갈만한 전셋집이 거의 없었다. 전세가 거의 나오지 않았고 간혹 나오는 것들은 너무 비싸거나 날림으로 급하게 지은 집들 뿐 ... 결국 집을 사기로 했다. 집을 산다는 것 ... 우리 부부의 가까운 미래에는 그런 계획이 없었다. 그럴 형편도 안됐고 집을 사면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생각 때문에 ... 집을 팔고 떠나면 되는건데 ... 아무튼 ... 다행히 아주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가 하나 나왔다. 주변 같은 평수 아파트의 절반 조금 넘는 가격. 양가부모님들이 조금씩 보태주시고 또 부족한 건 빌려서 팔자에 없는 집을 샀다. 해야 할 일들 : 장판, 페인트칠 (베란다, 방문), 싱크대 및 전등교체, 도배 ... 장판과 씽크대 교체는 업체에 맡기고 ... 베란다 및 방문 페인트칠, 전등교체는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직접 했다. 문제는 도배 ... 업체에 맡기면 벽지 포함 100만원 정도 견적이 나왔다. ... 돈도 없고 ... 또 이때 아니면 평생 언제 도배를 해보겠냐 싶어서 ... 아버지와 이사 얘기를 하다가 도배는 직접 하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 “ ... 네가야? ...” “ ... 그람, 나가 하지 복덕방 아저씨가 하겄소? ... ” “ ... 택도 없다, 이놈아! ... 도배 한 번도 안 해 본 놈이 ... ” “ ... 아따, 풀 발라서 그까이꺼 대충 붙이면 되제 ... ” “ ... 허허, 참 ... 베랑빡(벽) 꼬라지 볼만 허겄다 ... ” 못미더웠던지 결국 당신이 도와주마고 하셨다. 애엄마는 일이 생겨 빠지고 ... 이틀 계획을 잡았다. 첫째날, 헌 벽지 뜯기 ... 반나절에 헌 벽지 뜯고 바로 도배 들어가려고 했는데 ... 꼬박 벽지 뜯는데만 하루 걸렸다. 물을 뿌려서 찢어내고, 끌로 긁어내고 ... 벽에 찰떡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벽지 ... 벽을 너무나 사랑한 벽지 ... 둘째날, 도배 ... 1) 벽 높이에 맞게 벽지를 자른다. 2) 풀에 물을 부어 적당한 농도를 맞춘다. (풀은 샀다) 3) 벽과 벽지에 풀칠을 하고 붙인다. 4) 벽에 잘 붙게 비질을 한다.
사실은 이게 전부다. 다만 참고할 것은 ... 1) 풀이 너무 되면 풀칠이 어렵고 너무 질면 잘 붙지 않는다.
: 적당히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적당히 ... 2) 벽에도 풀을 적당히 발라줘야 한다. 3) 벽지와 벽에 풀칠 한 후 조금 뜸을 들였다 붙여야 찰떡처럼 잘 붙는다. 4) 벽과 벽지가 뜨지 않도록 완벽하게 공기를 빼줘야 한다. : 비질도 하고, 때로는 벽지를 뗐다가 다시 붙이기도 하고 ...
넓은 벽면은 그나마 수월한데 모서리, 방문 위, 창문 아래는 벽지 길이와 넓이 맞추느라 시간 꽤나 잡아먹었다. 문제는 천장 ... 아, ... 미쎤 ... 임파 ... 씨벌! ... 의자 두 개를 널찍하게 벌려놓고 그 위에 기다란 판자를 올려놓은 뒤 올라가서 풀 먹은 벽지를 천장에 붙인다. 풀 먹은 벽지는 꽤 무겁다. 붙여도 그 무게 때문에 벽지가 자꾸만 처진다. 이쪽을 붙이면 저쪽이 처지고 저쪽을 붙이면 다시 이쪽이 처지고 ... 오랜시간 고개를 젖혀야 하니 고개는 아프고 ... 팔도 아프고 ...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진도는 안나가고 ... " ... 아~ ... 저 천장에 스파이더맨처럼 붙어서 작업할 수 있다면 ... " 중국집에 간짜장 곱배기를 두 개 배달시켰다. 아버지와 난생 처음으로 둘이 맞짜장을 했다. 부자가 둘이 밥먹는 것이 얼마만인가 ... 아버지가 술은 안하셔서 고량주도 없고 먹을 거라고는 단무지와 양파 쪼까리, 중국산 김치뿐이었지만 ... 아버지는 옛날 시골집에서 벽지 바르던 얘기도 하시고, 막내부부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걱정 ... 아이 키우는 일 ... 또 앞으로 어떻게 벽지작업을 해야 속도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인지 ... 도배 일만 아니었으면 이야기는 지금까지 계속 됐을 것이다. ...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일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 까마득하다 ... 경비 아저씨가 구경하러 오셨는데 ... 알고보니 아버지와 동향분이었다. 아버지는 그 경비아저씨께 애가 칠칠치 못하니 잘 좀 봐달라고 당부하셨다. 아파트 살면서 경비아저씨 도움받을 일이 크게 뭐 있겠는가마는 자식을 위해 당신의 희미한 연줄이나마 쓰고 싶어하시는 마음이 갸륵해 암말도 않고 칠칠치 못한 놈이 되기로 했다. 아버지로써 유세 한 번 하시겠다는데 ... 전문가들이면 하루 일인데 ... 계획했던 이틀 째 밤 늦게까지 작업을 했지만 결국 방 하나가 남았다. 다음 날은 일이 있어 내가 타지로 떠나야 했다. 나머지는 돌아와서 내가 마무리 하겠다고 했더니 극구 당신이 내일까지 혼자 마무리를 하시겠단다. 뭐도 손봐야 하고 뭐도 손봐야 한다고 하시면서 ... 타지 일을 끝내고 돌아와보니 도배는 끝나 있었다. 방청소까지 깨끗하게. 내가 대충 칠했던 베란다까지 빈틈없이 뺑끼칠을 해놓으셨다. ... 방마다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마무리 해놓은 아버지의 흔적을 살폈다. 얼마 후, 드디어 아버지에게 배운 도배 일을 써먹을 일이 생겼다. 처제네 딸 방이 벽지에 곰팡이가 피고 군데군데 찢어졌다. 방 하나를 업체에 맡기자니 애매했던지, 도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처제가 혹시 해줄 수 있겠느냐고 애엄마편에 물어왔다. 배운 도배 기술도 한 번 써먹어 볼겸 ... 오케바리! 한 번 빡세게 도배일을 해본 뒤라 시간이 좀 걸렸을 뿐 할 만 했다. 처제랑 둘이 방 하나 도배하는데 하루를 잡아먹었다. 처제랑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하고 ... 그동안 형부노릇 제대로 못한 빚도 좀 갚았다. 저녁은 처제가 한턱 쏴서 온가족이 목에 기름칠도 좀 하고 ... 며칠 뒤에 가서 보니 처음에 풀 농도가 너무 묽었던지 벽 한쪽 면이 살짝 울어 있었다. 그래도 뭐 그 정도면 선방 ... 장롱으로 가리면 되지 뭐 ...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본받을 만한 삶을 사는 것이고 그 본받을 만한 삶에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자급자족도 포함될 것이다. 간단한 집수리나 생활용품 만들기 등 ... 어쩌면 내가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 생각했다. 도배는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일이다. 아버지의 세대에서 나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어떤 전통 같은 것 ... 먼 훗날 딸이 독립했을 때 그 집 도배를 딸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그때 나는 자연스럽게 내 아버지 얘기를 딸에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 딸도 누군가의 집 도배를 하며 아빠와 할아버지 얘기를 할 수 있기를 ... 아마도 이 집에서 사는 동안은 벽지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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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
창호지를 새로 하려면
문에 물을 흠뻑 뿌려 전날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야 하지
그리곤 문살을 햇빛에 말린 후
새 창호지에 쑨 풀을 발라 붙이고
앉아 밖을 내다볼 정도의 위치 한칸을 비워내지
그곳에 맑은 비닐을 붙이기도 하고 유리를 붙이기도 했던 기억이...
봄날이었는지 가을날이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나면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벨스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
망구덕분에 녹슨 기억의 창고도 함 디벼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