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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씨는 ‘이혼녀’다. 10년 전 남편과 이혼을 하고 현재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산다. 미선씨가 이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의 폭력 때문이었다. 부부싸움이야 여느 부부도 하는 것이지만 ... 남편은 가끔씩 손찌검을 했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이혼’을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맞고 사는 여자들도 간혹 있고 자신만 당하는 특별한 일도 아니니까 ... 참고 살려고 했다. 그렇게 합리화해서라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당하는 일이라도 자신에게만은 ‘특별한’일일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이혼은 정말 맘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이도 있고 주변 눈치도 있고 ... ‘이혼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불편한 시선도 걸렸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맞고 살지언정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참고 버텼다. 직장동료들이 얼굴에 난 멍자국에 대해 물어볼 때도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화장을 더 진하게 하고 오히려 더 밝게 웃고 활기차게 생활했다. 미선씨는 체구가 아주 작고 남편은 거구다. 남편의 폭력은 이를테면 헤비급 선수가 플라이급 선수를 노가드 상태에서 무차별로 난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맞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더구나 본인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했을 때의 정신적인 충격은 ... 수치심과 모멸감이야 말할 수도 없고 ... 한때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애무해주던 사랑했던 남자의 손이 흉기가 되어 자신의 몸을 난타할 때 ... 그 깊은 절망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제 주먹이 날아올 지 모르잖아 ... 그 두려움 때문에 남편 비위를 맞추게 되고, 어느 순간 보니까 내가 남편한테 말할 때 내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는거야 ... 그게 비참하더라고 ... 노예처럼 길들여진다는 느낌이 들었어 ...” 남편은 여느 가정폭력 남편처럼 때리고 난 후에는 잘해줬다. 백화점에서 비싼 옷도 사주고 럭셔리한 식당에서 맛난 것도 사주고 ... 그 맛난 고깃덩어리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구역질이 나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결국 ... 그날이 왔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된 부부싸움 끝에 남편은 언제나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아이가 자고 있어서 비명조차 크게 지를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삼십분 쯤 맞았을까? 어느틈엔가 안방 문이 열려져 있고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엄마가 맞고 있는 것을 보며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렇게 맞다가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까 누가 내 몸을 흔들고 있더라고 ... 우리 애기가 ... 무서워서 그랬는가 소리도 안내고 눈물만 뚝뚝 흘림서 나를 흔들고 있는거야 ... 엄마 죽어분지 알고 ... 서방이란 놈은 그렇게 지 마누라 때려놓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고 ...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대 ... 아이고, 이러다가 우리 애 어떻게 되버릴 수도 있겠구나 ... 애 망칠 수도 있겠구나 ... ” ‘이혼’ 결심을 막고 있었던 모든 것이 허망하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이를 부둥켜안고 미안함과 서러움이 복받쳐서 하염없이 울었다. “미안하다 ... 미안하다... 엄마가 너한테 이런 꼴 보여줘서 미안하다 ...” 아이도 그제서야 소리를 내고 울었다. ... 짐을 쌌다. 가져갈 짐들을 한쪽 방에 전부 몰아넣었다.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서 아이를 업고 새벽녘에 집을 나왔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아이를 업은 손이 벌벌벌 떨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날, 남편이 일 나간 틈을 타 이삿짐 센타를 불러 필요한 짐을 모조리 빼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고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야이 미친년아 ... 너 죽을래! ”하면서 길길이 날뛰었지만 한 번 ‘독하게’ 마음먹은 미선씨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한때 사랑했지만 결국 증오만 남은 남자와 이혼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다. 남편의 ‘폭력’에 대한 후유증은 뒤늦게 찾아왔다. “밤에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는거야. 눈을 감고 있으면 남편이 나를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돌면서 눈이 번쩍 떠져 .... 꿈을 꾸면 누가 내 목을 막 조르는 거야 ... 숨 막혀서 벌떡 일어나고 ... 그러다가 또 잠이 들면 누가 또 나를 쫓아오고 나는 죽어라고 도망가고 ... 깨어 있을 때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막 우울증 같은 것이 생기고 ... 남편에 대한 원망 때문에 홧병이 나는거야 ... 잠을 자야 그동안 만이라도 편히 쉴 수가 있을텐데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 불면증이 찾아왔다. 모든 베란다 창문에 쇠창살을 달았다. 한여름에도 모든 창문과 방문을 꼭꼭 닫고 잤다. 남편이 혹시라도 찾아올까봐, 혹은 혼자 사는 여자 집을 노리는 발바리 같은 놈들이 찾아올까봐 ... 잠들기 전 머리맡에 항상 야구방망이를 갖다 놓고, 위급 상황에서 구조를 요청할 수 있게 핸드마이크를 갖다놨다 ... 아이 앞에서 또 다시 험할 꼴을 당하면 안되니까 ...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야구 방망이를 재빨리 잡는 연습도 하고 ... 누워있다가 재빨리 일어나 야구방방이 잡는 대회가 있었다면 미선씨는 아마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어느날, 야구방망이 잡는 연습을 하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아이 눈동자를 보자 비로소 미선씨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 지 깨달았다 ...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였다. 아이는 끊임없이 먹어댔다. 살이 금새 띠룩띠룩 쪘고 갈수록 신경질적인 아이가 되었다. 결국 아이한테 틱 장애가 왔다. 눈을 쉴새 없이 꿈뻑꿈뻑하고 입 주변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쫙 폈다 ... 미선씨의 불안과 홧병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니 어쩌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미선씨는 자신의 울화를 아이에게 쏟아부었을 것이다. 온갖 심리학 관련책들이 책장을 빼곡히 채워갔다 ... 트라우마 ... 트라우마 ... 트라우마 ... 성냥개비로 높이 쌓은 사각탑처럼 삶의 매 순간이 위태위태하고 어디서 한군데 삐긋하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이러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싶어서 정신병원에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다. 이혼 후 아이는 엄마한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미선씨는 자신의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 때라 아이가 힘겨웠고 버거웠고 귀찮았다. 혼자 있으면 오만가지 잡생각이 나고 우울증 증세가 도지니까 사람들을 일부러라도 만나서 혼자있는 시간을 줄였다. 미선씨가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아이가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매일밤 아이는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잠이 들었다. 어느날, 미선씨가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 집에 혼자 있던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 ... 나 ... 두려워 ...” 미선씨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리카락이 쭈뼛서고 등골이 서늘했다. 이러다가 정말 아이마저 잃겠구나 ... 만사 제쳐놓고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꼭 안았다. 그리고 뭐가 잘못됐는가를 정신 바짝 차리고 되짚어 봤다. 결국 내린 결론은 미선씨가 치유되지 않으면 아이도 치유되지 않을 거라는 것! 다시 한 번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우선 친구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일 때문에 혹시 늦더라도 친구들이 아이를 돌봐 줄 수 있게.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저녁에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 이따금씩 내뱉던 ‘힘들다’는 넋두리도 속으로 집어삼켰다. “엄마가 불안해하니까 애도 불안해한다 싶어서 ... 어느날부터 밤에 베란다 창문을 하나 일부러 열어놓기 시작했어. 쇠창살이 쳐져있지만 그래도 불안하더라고. 아무튼 엄청 용기를 낸거지. 물론 애가 잠들고나면 다시 닫고. 근데 어느날 밤에 ... 내가 일부러 열어놓은 창문을 애가 슬며시 닫고 오더라고. 내가 깜빡 잊어불고 안 닫은 줄 알고 ... 엄마가 불안해할까봐 애가 창문을 닫은거야 ... 그 모습을 보니까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막 쏟아져 ... 내가 애를 위해서 좀 더 강해져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 ” 미선씨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되 누구에게도 원망의 화살을 돌리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자신을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귀 기울여 들었다.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상담프로그램을 녹화해놨다가 수십 번 반복해서 보고 들었다. 하루 종일 그것만 들으면서 지내기도 했다. “남이 상처를 극복하는 것을 보고 듣는다고 내 상처가 낫지는 않더라고 ... 물론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위안이 되기는 했지 ... 심리치료 책도 많이 사보고 ... 일부러 정신없이 막 살았지. 몸이 피곤하면 뻘 생각이 덜 나니까 ... 아무튼 별별 짓 다했어 ... 근데 돌이켜보니 결국 나한테 필요한 건 시간이었어 ...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시간 ...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시간 ... 그렇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까지 딱 5년 걸리대 ... 그러고 나니까 내가 보여 ... 다른 부부들 사는 것도 달라보이고 ... 이전에는 친구들이 자기 남편 욕하면 나도 같이 막 욕하고 씹어주고 그랬는데 ... 이젠 그 친구가 어디서 딱 막혀있는 지 보여 ... 제 삼자 입장에서 얘기해 줄 수 있게 된거지 ... ” 자신의 과거 부부생활도 제 삼자의 눈으로 다시 돌아보게 됐다. 남편의 폭력은 지금도 용서할 수 없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편 탓으로만 돌리지는 않았는가? 또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고비를 넘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간 외면해왔던 자신이 싫은 모습, 못난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아이는 틱 장애도 조금씩 나아지고 살도 조금(?) 빠지고 성격도 많이 온순해졌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지면서 미선씨의 상태도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애도 많이 편안해졌고. 근디 그 어린 것이 지도 남자라고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갑써. 얼마 전에 둘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여자 주인공이 막 힘들어할 때 애가 슬며시 내 손을 잡는거야 ... 내가 지한테는 지켜줘야 할 여자인거지 ... 애가 어려서부터 고생을 해서 그런가 철이 빨리 드는 거 같어 ... 그런 거 보면 쫌 짠하기도 해 ... ” 미선씨는 남자가 그립다. 아니, 따뜻한 사람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결혼생활에 치가 떨려서 한동안 남자라면 이가 갈렸지만 ... 지금은 혼자서도 잘 살 자신이 있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해보고 싶다. 살다보니 사람 보는 눈도 좀 생겼고 다시는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자신도 있다. ‘이혼녀’라고 만만하게 보고 껄떡대고 추근대는 좆밥들 말고 ... 제대로 된, 사람같은 놈 하나 만나서 뜨겁게 사랑하면서 멋지게 남은 인생을 즐기고 싶다. 미선씨는 농담처럼 자신은 ‘뜨거운’ 여자이며 ‘밝히는’ 여자라서 남자 없이는 못산다며 깔깔깔 웃어댔다. 그리고 어디 존 놈, 실한 놈 하나 없냐며 꼭 한 사람 소개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한테는 잘해 ... 앞뒤 안보고 푸욱 빠지는 스타일이거든 ... 물론 그러다가 인생 쓴맛 한 번 지대로 봤지만 ... 물론 지금도 행복해 ... 앞으로 더 행복해질 자신도 있고 ... 벼랑 끝에 한 번 지대로 몰려보니까 지금은 별로 무서운 것도 없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어 ... 나 엄마잖어 ... 글고, 한 사람의 여자로 봤을 때 ... 어때? ... 나 너무 매력적이지 않어? ... ” 미선씨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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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