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다 되어 일을 마치고 마트를 들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검은색 옷차림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날 지켜보는 거야.
슬쩍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도... 설마~ 불빛이 환한 상가지역이니 괜찮지..뭐
그리고 무 한 개와 엄니가 좋아하는 젤리 6봉지를 샀다.
가격을 치르고 나와 보니 그 남자가 쭈뼛거리며 다가서서
“저... 죄송한데요.. 담뱃값......”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내 몸은 반사적으로 뒤돌아서 바삐 걷고 있었다.
“아, 아뇨...” 한마디 던지고서
따라올세라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오는 내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은,
남자의 애처로운 눈빛과 그의 손에 든 빈 종이컵이었어.
아... 천 원 한 장이라도 쥐여주었어야 했는데... 왜 그리 무서워했을까?
아냐, 잘했어.... 저런 사람들은 상습적으로 저렇게 구걸하듯 살아...
그래도 마음은 시려서... 손끝이 차갑더라.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서는 전철역 앞에서 멈춰 섰어.
자전거보관소 앞 풍경이 익숙해서 한참을 지켜봤다.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챙기고 그 곁에 하얀 개가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모습.
일을 나가는 할머니를 아침부터 밤까지
전철역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충견으로 유명해진 그 개였어.
“할머니 안녕하세요? 건강하시네요. 개도 여전하고... 한동안 안 보여서 걱정했어요.”
“아이고, 아무 일 없었어요. 우리 개도 여전히 나 따라다니고, 오늘은 좀 쌀쌀하니까 따라나오지 말라고 묶어놨더니, 애들이 낑낑거리는 녀석을 또 풀어줬나 봐요. 아니나 다를까, 또 여기 나와 있네요.”
“할머님도 개도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추운데 조심히 올라가세요.”
실은 저 개를 2년 전 여름, 전철역 자전거보관소에 세워진 유모차에서
몇 날 며칠을 보게 된 후, 걱정되어서 시청시민과에 신고까지 했었다.
당시 담당자가 이런 전화를 많이 받아서 상황을 잘 설명해주더라.
할머니와 사는 개 한 마리.... 이웃 사는 자식보다 더 살가운 녀석
어떤 인연인지 알 길 없어도
그 개는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할머니가 외출하면 따라 나와서 전철역 입구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며 충실하게 그 자리를 지켜오던 개였다.
어느 날은 개의 털이 부슬거리고 살도 좀 찐 것도 같고..
어디 아픈가? 염려스럽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보이질 않는 거다. 개가 아픈 것 같더니... 죽었나??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오늘 다시 거의 1년 만에 만나게 되었으니..
내 반가움은 아까의 서늘함을 덜어주는 보상 같았다.
다리를 절룩이는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
그 곁에 신나서 졸랑졸랑 따라가는 개 한 마리의 동행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추운 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30여 분 가까이 걸어 올라가야 할 그 고갯길들을 헤아려봤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가도
변하지 않고 온도를 유지하는 것들을... 한동안 우두커니.
글 올리면서 갑자기 노래가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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