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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10시 넘어 배가 출출한데 마눌님이 밥이 없다 한다. 라면도 안 사놨다 한다. 그럼 내가 사러가야지. 옷을 주섬 주섬 입고 네 살 난 딸래미 보고 슈퍼 가자 하니 좋아서 내복바람으로 현관을 나서려 한다. 끌고 들어와 잠바와 모자를 입히고 씌우고, 감기가 심해지면 안되니 목에 손수건도 두르고... 애가 밤잠이 없으니 윗집과 무슨 시비가 또 붙을까 싶어 운동을 시킬 심산으로 데리고 나간다. 좀 피곤해지면 잠을 자겠지...
밖으로 나오니 비가 조금씩 내린다. 김종서가 그렇게 처량하게 불렀던 겨울비다. 예전에 노래방에서 내가 이 노래 부르면 모두들 뻑갔었는디... ㅎㅎ. 다시 들어와 우산을 챙기고 길을 나선다. 딸래미는 뭐가 좋은지 혼자 뛰어가고 나는 처량히 따라간다.
슈퍼에 들어가 라면이 진열된 쪽으로 향하니, '삼양라면' 다섯개 들이 묶음 옆에 '맛있는 라면' 여섯개 들이 묶음이 보인다.(한개가 덤이다.) 삼양라면만 사려 했는데 어쩌지? 들고 온 돈은 달랑 만원짜리 한 장인데, 딸래미 먹거리나 사 줄 수 있으려나. 하여튼 두 묶음 들고 딸래미에게 뭐 먹고 싶냐 물으니, 딸기 우유, 초코 우유란다. 다행이다 싶어 딸기 우유 하나, 초코 우유 두개(한개는 오빠꺼)를 샀다. 만원 초과하면 우유 하나 뺀다는 엄포를 놓으며 계산대에 올려 놓으니 합이 9,950원이다. 햐~~십문칠이로고. 라면봉지와 50원짜리 하나를 받고 집으로 향한다.
아기는 뒤따라 오고 나는 먼저 가고 있는데, 빗길 운전에는 역시 앞이 잘 안보이는 모양이다. 특히 네살 꼬맹이는 본넷에 가려 더 안 보이겠지. 웬 승용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좌회전 하다가 우리 애 바로 앞에서 멈춰선다. 설마 설마 하다가 애 잡겠다. 아파트 단지 안이라고 방심하면 안되겠어...
애를 앞세우고 총총 걸음으로 경비실 앞을 지나는데 야윈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 온다. 경비실 옆 처마 밑에 비를 피하고 있다가 우리 꼬맹이를 보자 바로 달려 나온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킁킁거리며 따라 붙는다. 허~~ 참 이상한 길고양이로고, 혹시나 해서 현관문을 열고 야옹 야옹 소리를 내며 고양이를 부르니 집안으로 쑥 들어 온다.
고양이는 자기 집인냥 아들 방으로 들어가 바닥에 깔아 놓은 이불 위에 아주 자연스럽게 앉는다. 딸래미와 아들은 좋아라고 난리다. 먹을 것 찾아서 멸치와 소시지 계란 후라이를 고양이 앞에 들이민다. 고양이는 넙쭉 넙쭉 잘 받아 먹는다. 이 고양이가 사람 손을 전혀 거부하지 않네, 그렇게 더럽지도 않고, 길고양이가 아닌가? 그렇다고 깨끗하게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 같지도 않고...
고양이는 집보러 온 사람처럼 이번에는 아들 방을 나와 안방으로 향한다. 안방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불이 마음에 드는지 냄새를 맡으며 위로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 혀로 몸단장을 한다. 집사람은 빨리 내보내라고 성화다. 애들이 울고 불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마누라 말을 거역할 수 없지 않나. 고양이를 안고 현관문을 살짝 열어서 밖에 내놨다. 고양이는 애처롭게 쳐다보는데 어쩔 수 없다. 나도 밥 얻어먹고 살려면... 다시 안방으로 들어와 눕는다.
마눌님의 딸래미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 거실로 나와 보니 딸래미가 현관문을 열어준 모양이다. 고양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열린 문틈으로 들어와, 쇼파 옆 아기 미끄럼틀 안으로 쏙 들어간다. 마누라는 빨리 꺼내서 내보내라고 길길이 날뛴다. 미끄럼틀 속에서 나와야 내보내든지 어떻게 하지... 나는 나몰라라 하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인정이 메마른 마누라 퉁이 같으니라고, 이 추운 겨울 빗속에 야윈 고양이를 어찌 내보내노? 하룻밤 재워서 보내면 뭐가 덧나나?
눈감고 좀 누워 있으니 갑자기 마누라가 또 호들갑이다. 궁시렁거리며 밖으로 나오니 고양이가 미끄럼틀에서 나와 쇼파에 누워있다. 이 놈 참 웃기는 놈이다. 딸래미는 안방에서 스마트폰하고 있으니 이때 빨리 내보내라는 것이다. 고양이를 들고 아들보고 현관문 열라고 하니 아들놈이 또 울고 난리네, 큰소리 꽥치니 그제서야 주저 주저하며 문을 연다. 고양이를 밖에 내려 놓고, 머리를 들이미는 고양이를 발로 제지하며 문을 닫는다. 아! 맘이 아프다...
딸래미는 고양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집이 떠나가라 "고양이"를 외치며 울부짖는다. 열두시가 넘은 시각인데, 윗집에서 밤 열시 이후에는 잠좀 자자고 또 대자보 붙이겠구먼.
여러분 가정은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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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