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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극에 달할 때는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는
아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했다.
민감하고 예민한 그곳의 고통은
마치 존재를 뿌리채 흔드는 것처럼 여겨지곤 했던 것이다.
고통은 나름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듯
매번 다른 얼굴로 미묘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해안에 파도가 밀려오듯
서둘지 않고 적당한 템포를 유지한 채
다가왔다 멀어져가곤 했다.
고통으로 방바닥을 뒹구는 중에도
그나마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갖가지 형태로 다가오는 고통을 살펴보는 재미(?) 같은 것 때문이었다.
치루와 치질이 겹친 까닭에
치루를 먼저 치료했는데
처음 그곳을 뭔가로 묶었을 때는 묶은대로
일주일 후, 묶었던 그곳에서 뭔가 잘라낸 후에는 잘라낸대로
고통은 쉼없이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꺼내 놓았다.
예를들어 날카로운 뭔가로 짼 느낌이 그곳을 꽉 채우고 있는 동안에
그 다음 다가올 고통이 멀치감치에서 스멀스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식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고통에도 나름의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됐다.
항문은 자신의 고통이 시작된 수년 전을 기억하고 있는 듯
내가 알고 있는 바 항문이 치루 때문에 고통받았던
최초의 고통을 찾아내어
기나긴 고통의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항문은 그토록 오래되었던 고통마저도
한치의 오차없이 복기해내었다.
그것은 가장 최근의 고통인 엉덩이의 뻑적함까지 훑어주고는
다시 역순으로 처음의 고통으로 돌아갔다.
고통 중에
'고통은 단련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보니까 고통에 익숙해지긴 해도
단련되어지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예민한 그곳의 고통이 현란하게 몰아칠 때도
그나마 고통에 저항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는데
엉덩이의 뻑적함은 좀체 당해내기 어려웠다.
엉덩이의 고통은
원활한 시술을 위해 항문을 최대한 벌려야 했던 간호사와
아픔을 못이겨 어떻든 몸부림을 쳐야 했던 나와의 실랑이에서
생긴 것으로 보였다.
고통의 극한에서 간호사의 손아귀에 제압당한 엉덩이는
당시에 떨어내지 못했던 고통을 그대로 기억했다가
하나하나 풀어냈던 것이다.
내 눈으로 확인은 안되었지만
그女의 증언에 따르면 항문 주위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고 했다.
생환의 절정은 총체적 고통의 엄습이었다.
항문과 엉덩이의 고통으로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
때마침 찾아온 감기 몸살은
정신줄을 놓게 하려는 쉼없는 도발을 견인했던 것이다.
요 밑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몸을 지지는 중에도
오한은 멈추질 않았고
밤새 고통으로 나뒹굴면서도
호흡때 마다 잔기침이 났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기침을 제대로 할라치면
항문은 끊어질듯 아팠다.
아픈데도 먹어야 산다는 생물학적 본능은
어찌어찌 몸을 일으켜 밥상에 앉게 했는데
밥상머리에 앉았다 싶으면
엉덩이가 결리면서 찢어지는 고통이 시작됐고
먹어야 한다는 머리 속의 생각과는 달리
몸은 헛구역질을 하며 음식물 섭취를 거부했다.
그렇게 밥상을 앞에 두고 꼬꾸라지길 몇 번 ...
밥상 밑에 모로누워 있자니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하나?'라는
구차스런 생각이 일기도 했다.
......
그런데 그것들이 모두 지나갔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의 쓰나미들이 ...
돌이켜보건대
고통의 극한 속에서 외줄타기를 할 때도,
'이렇게라도 해서 살아야 하나?'라며 에고가
은밀하게 응수타진을 할 때도
용케 버텨낸 것은,
어줍잖게라도 배운 명상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보면 이번 생환은 명상을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해
확인한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2009.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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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