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4년 어느 가을날, 에드워드 기번이라는 젊고 낭만적인 영국인이 로마 옛 신전의 폐허 한가운데서 명상에 잠겨 앉아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무엇이 한때 “지구의 가장 아름다운 한 부분과 인류의 가장 문명적인 한 구실”을 도맡았던 이 제국을 몰락케 했는가.
기번이 그의 불후의 저서 <로마제국의 쇠망>을 쓴 이후로도 많은 증거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비로소 로마의 막강한 권력에서 쇠망의 징조를 간파한 그 속살을 더듬어볼 수 있다.
기원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단검으로 찌른 우국지사들은 대부분이 원로원 의원들이었다. 그들로서는 그 유혈거사가 공화국을 구출해 내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칭 제왕을 살해하기는 했으나 그의 대망大望마저 살해하지는 않았다. 카이사르의 조카아들이자 양아들인 아우구스투스가 그의 양부가 실패한 부분을 계승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에도 모든 식민제국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하나의 제국이 탄생해서 장장 다섯 세기를 이어갔다.
기원 3세기에 이르러 제국은 영국에서 페르시아 국경까지, 라인 강과 다뉴브 강에서 사하라 사막에 이르는 도로를 완성했다.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제국의 품안에서 태평연월을 노래했다. 특별한 경우에 국경이 소란했던 예를 제외하고는, 저 유명한 ‘팍스 로마나’ 곧 로마 지배 밑의 평화는 약 250년간을 깨지지 않은 채 온존됐다.
로마는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의 맥박 치는 중심지였다. 실로 로마는 세계의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지배자들은 로마를 호화롭게 장식하는 데에 현기증이 날 정도의 거액을 연거푸 쏟아 부었다. 원형경기장 하나가 자그마치 2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정도의 규모였다. 11개의 고가식高架式 수로가 하루에 3억 5천만 톤의 신선한 물을 산으로부터 수도首都로 날랐다. 크고 둥근 천장을 올린 욕장浴場은 공학기술이 이룬 경이였는데, 비즈니스를 하거나 한담을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는 로마인들로 온종일 북적댔다. 굉장히 높은, 카이사르의 궁전이 있던 팔라티누스 구릉에서 굽어본 로마는, 기원 357년에 그곳을 방문한 페르시아 황태자가 “이런 데서도 사람들이 죽음을 면치 못하는가!”라고 경탄했을 정도의 굉장한 전망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 와서 보면, 그러나 그 장관壯觀도 한낱 신기루보다 더 하찮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잘사는 중산층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로마의 경제발전은 그 폭이 협소했다. 제국의 웅대함에 견주면, 호화스런 개인저택 1800채 말고는 누추한 셋집(로마 사람들이 ‘인술라에’ 곧 ‘섬들’이라고 부르던) 4600채가 우글거렸다. 빈한한 사람들은 셋집주인들의 착취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었다. 소수의 상류사회는 다수의 하층계급을 해결하지 못했다. 로마에는 도무지 사랑할 만한 부자가 없었다.
상류층의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소비는 주로 사치한 연회였다. 로마가 쇠퇴해진 원인의 하나는, 날마다 이런 호화판 연회를 벌이고는 객쩍은 소리나 지껄이면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먹고 마신 데에 있었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다. 조직범죄, 마약, 정신적 느즈러짐, 도시의 어두운 뒷면—이런 문제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로마를 어지럽힐 만큼 결정적으로 흔들지는 못했다. 비록 남녀의 불륜행위가 일상 속의 예사였고, 이혼을 밥 먹듯 했으며, 근친상간이 시속이었다고는 하지만, 로마가 도덕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쇠망’했다고 단정해 버린 기록은 모두 다 왜곡된 것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돼 있었던가. 한 가지 사실을 들자면, 비분배적인 사회체제로 말미암아 행복의 추구라는 것이 언제나 봉쇄당했다. 극소수만이 이러한 사회적인 장벽을 뚫고 분배에 한몫 끼어들 수 있었다. 한편으로, 고문拷問을 포함한 물리적인 관료주의는 때때로 생계 터전을 뭉개면서 백성들의 숨통을 눌렀다. 많은 소작농들은 도시민의 엄청난 등급과 맞먹는 살인적인 세금 탓에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토지는 모조리 고리대금업자들이 차지했다. 돈 많은 장사치들과 관리들은 광대한 지역에 걸쳐 부동산 소유주가 됐다. 젊은 귀족들은, 그가 자라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일반병사를 돈으로 살 수 있었기에 자기의 목숨을 위험한 데에 결코 내놓지 않았다. 도시에는 배고픈 대중과 게으름뱅이, 방종한 자들이 우글거렸다. 온 나라의 돈이란 돈은 모두 미친 듯 한 소비에 마구 뿌려졌다.
전쟁포로를 근거해서 노예제도가 생겨났다. 그들에게는 노동이 강요됐다. 노예들은, 하기 싫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노동뿐만 아니라 물건을 만들고 수리하는 일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발전과 창의력 면에서 로마에다 큼직한 공백을 만들어 놓았다. 당연히, 로마인 스스로의 창의력과 기술력이 진보했을 턱이 없었다. 생산품을 받아들일 시장도, 그리고 수요도 없었다. 소비성 경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경기였다.
한때는 부유한 농산물 수출국이었던 이탈리아는 토지를 무한정 묵히고 있었다. 후기 제국에 와서 자작농이란 실지로는 사라지고 없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에서 술을, 북아프리카에서 곡물을, 그리고 에스파냐에서 올리브기름을 들여올 수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땀 흘려가면서 힘들게 토지를 경작하려고 했겠는가. 금金은 수입품에 지불하는 대금과 영지에서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벌이는 건축계획에다 자금을 조달하느라고 쉴 새 없이 로마를 빠져나갔다. 화폐는 가치가 없어지고,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혼돈이 계속됐다.
물가 상승을 성공적으로 억제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목적의 결핍이 생활의 모든 분야에 파고들었다. 일반대중의 영적인 갈망은 충족되지 않았다. 이리하여 사도 바울이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복음 곧 구원의 소식을 가져간 것은 적지 않은 분쟁의 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로마의 초기 크리스천은 영적으로 헐벗고 목마른 노예, 소외당한 자, 빈민가 주민들이었기 때문이다. 로마가 무너진 것은 그리스도 후 500년께였다.기번은 결론을 내린다. “그 몰락의 내력은 간단하고 뻔한 것이다. 우리는 로마제국이 붕괴한 원인을 조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존속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로마는 왜 망했는가? 이 케케묵은 물음을, 먼지 쌓인 역사창고에서 새삼 불러낸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사회진로에 대한 각성이 요청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로마의 멸망에서 깨달음을 얻자는 소리다.로마의 쇠망에서 우리는, 행복을 분배하지 않는 사회의 침몰을 목도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빵의 양극화를 해결할 의지도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사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공동체적인 목적의 결핍이라는 정신적 공황 앞에서는, 온 세계에다 위엄을 뽐내던 로마의 찬란한 검劍도 빛을 잃고 녹슬 수밖에 없었다.
문득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대사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누가 말했는가, 하나님은 위에 계시다고.
거기에는 안 계신다. 안 계시고말고.―어리석지 말거라.
오래된 거짓 진실 때문에 그대는 속았도다.
진실 된 일에 눈을 돌려요, 내 말을 알아들을 테니.
거짓된 일을 믿지 말아요, 나는 말하리니.
왕이야말로 살육하고 약탈하고 맹세를 깨뜨리고
거리를 사기꾼에게 맡겨 황폐하게 했도다.
지금의 우리 현실 그림과 무엇이 다른가. 인간과 자연을 상품화하는 경제동물의 사회가 닥치자 고작 몇 해 안짝에, 서로 더불어 살자 하던 공동체 사회는 구호나 허울 그것마저도 물질숭배와 몽땅 엿 바꿔 먹고 말았다. 이윽고 나라가 총체적인 파탄지경에 닥뜨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진실과 선의를 굳게 잡고 나라와 국민에게 복무하고자 하는, 적으나마 양식과 양심 가진 지도세력으로 물갈이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실지의 우리 정치지도는 암담할 뿐이다. 장로 대통령의 타짜판 정치야, 파장의 옥수수 장사 꼴로, 수명이 다했은즉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그러나 언필칭 언론이라는 저 막무가내의 수구 반동들, 때려죽인대도 요지부동인 한나라당 고정 지지율 36 퍼센트, 불치의 반풍수 집단 통민당―이 백약무효의 암세포들을 대체 어떻게 도려낸다는 것인가.
물구나무선 이 세상을 바로 일으키자 해도 그 길이 도무지 안 보인다. 이런 우리에게 저 위대한 루쉰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될까. 그는 말했다. “땅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그런즉 깨어 있는 소수자들이 본래 없던 길을 닦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의 쓰레기 정치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곧 그것이다. 불의가 정의의 탈을 쓰고 칼춤 추는 이 악하고 더러운 한 시대를 의심하고, 경멸하고, 거부하는 일이 곧 그것이다. 이 엉터리 같은 세상을 올바로 변화시키자고 몸부림치는 일이 곧 그것이다. 그것이 곧 깨어 있는 소수자들이 해낼 몫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오호, 통탄할진저. 홀연히 떠나고 만 盧公移山의 이토록 큰 빈자리와 공허라니! 오늘도 그리움에 가슴 젖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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