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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17일. 대선을 이틀앞둔 최고조의 선거열기속에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강남 사거리 유세가있었다. 분명히 그장소는 강남역 몇번가본사람이면 누구나아는 '지오다노' 거리에서 조금떨어진 뉴욕제과 앞이었고 나는 친구 둘과 나포함셋이 당구를 치며 맞은편 건물에서 노무현이 올라올 연단을 지켜보고있었다.
우리는 맹추위의 날씨임에도 온풍이 콸콸 돌아가는 나의 단골집 월드컵 당구장에서 창밖에 팔을 괘고 노무현의 모습을 눈아래로 볼수있었으니 천운이라면 천운의 호재속에 미래의 지도자가 될지모를 유력대선후보를 유유히 기다리고있었다. 단지 당구를치기위해 모인것이지 그를 보기위해 일부러 뉴욕제과 앞에간것도 아니었다.
지겨운 찬조연설이 끝난뒤 귀가아플듯한 연호를뚫고 드디어 연단에 올라온그는, 단일화를이뤘던 정몽준의 국민통합21 지지자들로부터 그들의 상징이었던 붉은 머플러를 선물받고 노란머플러와 교차하여 착용한뒤 연설을 이어갔다. 세계 15위속에 드는 국가의 통치자결정 선거답게 외신기자들의 열기도 상당했다. 국내기자들과 좋은자리를 선점하려 미리부터 발씨름을 하는 오묘한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노무현의 첫마디가 '존경하는 강남 시민 여러분' 이었다. 글의 흥미를 위해 살을 덧붙이는게 아니라 있는그대로 말하는것이다. '노무현 강남유세' 동영상만 검색해보아도 단박으로 나온다. 나는 그당시 한나라당과 이회창이 싫기때문에 노무현을 뽑겠다고만 여겼었지 그를 현재의 생각처럼 전무후무한 이상적결정체로 여기진않았었다. 그래서 무심코 그의 말꼬투리를 잡고 친구에게 '강남시민이래 ㅋㅋ' 라고 하자 친구놈도 콧방귀를 뀌며 맞장구쳤다.
이틀이지나 김대중보다 많은격차로 노무현은 이회창을 꺾었고 민주정부2기출범과 동시에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노무현당선자내외는 민주당사앞에서 그유명한 하회탈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불가능일줄 알았던 수구와의 대결을 승리로 장식했다. 그순간 언뜻 그런생각이들었다. 왜 노무현은 강남구 주민을 구민도아니고 주민도아닌 '시민' 이라는 호칭으로 불렀을까. 대선기간내내 전국팔도를 돌다보니 서울시민여러분 대구시민여러분 광주시민여러분. 그냥 버릇이되어 입밖으로 튀어 나온것일까. 아니면 강남을 일부특정구역으로 염두하여 발언했던것일까. 아마 전자가 맞을것이고 그럴가능성이높긴 할것이다.
만약 그럴가능성은 낮지만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면 노무현은 '강남' 이란 존재를 본능적으로 어려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곤했다. 표를 덜주는 지역이라서 혹시나 '주민' 에서 어느정도 승격시킨느낌의 '시민' 의 단어로 그앞의 눈들을 칭했을까. 하지만 이생각은 몇분가지않아 뒤바뀌었다. 만약 노무현의 그 '강남시민'이란 단어가 저도모르게 튀어나온게 아니라면 강남이아닌 전국의 민중을 상대해 한말이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른바 '강남' 이라 불리는 곳은 행정구역상 '강남구' 뿐아니라 '강남.서초.송파' 이렇게 3구를 아우르는 지대를 강남으로 지칭한다.
오세훈이 한명숙을 막판에 몰표로 뒤집은 곳도 잘알다시피 이 마의3구이다. 노무현이 공식유세연설을 했던 강남역 인근의 뉴욕제과 앞은 특별한 이벤트가없어도 인파가 굉장히 많이 몰리는곳인데, 우리도 알고 노무현 역시 잘알았을 사실은 실상 유세를 듣는 대다수는 강남구투표인원에 등재되지않은 타지에서 강남구경온 사람들이었단 점이다. 동대문 의류상가에 동대문구 주민 거의없듯이 이곳도 매한가지다.
언뜻 이런생각이 뇌리를스쳤다. 노무현은 강남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춘게아니라 강남이란곳에 성공을목적으로 기거하는 집없는 가짜강남 전국구 주민의 눈높이를 맞췄다는것, 실제 강남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거의 강남역외곽에 나오지않는다. 서울시민들이 외곽이라부르는 경기 남북부를, 아이러니하게 강남주민들은 본인들의 본거지라할수있는 '강남역' 인근을 외곽으로 여기는게 통상적이다. 그들은 신사와 논현을 가르는 뱅뱅사거리에 모이거나 청담 압구정 거리에 몰리는게 다반사며, 고령층은 자차를 사용하여 화랑에 가거나 맛집이나 찾지, 그추운겨울날 자기편도아닌 빨갱이 노무현을 구경하러 역주변까지 흔쾌히행차들 해주셨을리가 만무하다.
과연유세객들중 현지인이 있긴했을까. 선거캠프도 모를리가없고 노무현도 이사실을 누구보다 잘알고있었다. 어차피 그 함성속에 2번표를 행사할 실제강남유권자는 열명만있어도 기적같은일이었다. 노사모 소속으로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연단가까이에 모여 함성을 지르는쪽과 인파뒤에 우두커니서서 팔짱끼고 무표정으로 관망하는 유권자들, 인근 빌딩에서 운좋게 노무현을 발견해 창밖으로 환호하던 모든직원들 역시 강북에서 강남에 놀러오거나 출퇴근하며 그와 우연히 목도하게된 가난한 대다수 서울시민들임을 노무현이 모를리가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강남주민이아닌 우리대다수를 시민앤드 강남에 덧붙여 '강남시민' 으로 칭해주었다. 전라도에서 올라와 서울에 뿌리내린쪽, 경상도쪽, 충청이남할것없이 노무현은 강남시민이란 단어자체만으로 그날 하루만큼은 우리모두를 돈많고 폼나게 어깨피는 강남인으로 만들어주었다. 그'강남'이란것이 정직한 부이던 부정한 부이던 그는 우리를 그렇게 불러주었다.
그냥 별것아닌 말실수일지도 모를 '강남시민 여러분'에 온갖미사여구를 붙여 미화시키는 나를, 노전대통령이 하늘에서 어떤마음으로 지켜볼지 모르지만 그를 지지하는이가 거의없으며 이땅의 모든속세가 철저하게 일방적으로 집중된 최첨단 강남특별시속에서, 가난한 강북의 타지민중들을 부자중의부자 대한민국1%강남인으로 높여불렀다.
16대 대선이틀전. 결과론적인 나만의 공상이지만, 대내외적으로 가장중요할수도있는 유세일정을 최종 마무리하는 시점에 그는 강남주민을 위해 연설을 하지않았다. 그는 철옹성같은 적지에서도 가난한 아군인 우리를 그들과 동일한 존재로 승격시키며 자존심을 치켜세웠다. 힘없는 300의 전사들을 경상도보다 더더욱 살벌한 적지 '강남의 요충지 강남역' 에서 그들과 동격임을 선언해준것이다. 상대 이회창을 한번이라도 더 욕하고 마무리해야 승기가 보일락말락한 시점에서 그는 자신을 보기위해 강남역에 몰려든 '가난한 전국의 강북인' 들을 위한 연설로 모든것을 마무리 하였다. 네거티브가 전혀없는 역사에 길이 남을 포지티브 유세였다.
노무현은 지피지기였지만 강남에서의 패배를 두려워하지않았다. 나 둠바. 2002년 12월17일 하루만큼은 노무현덕에 떵떵거리는 강남시민이었다. 물론 노무현외에는 그누구에게도 강남인이라 불리우고 싶지않다. 그의 말은 실수도 옳다. 옳기때문에 실수가 성립되지않는다. 그는 절대로 어겨선안될 내인생의 카테고리다. 그가 나를 옮길순있어도 우리가 그를 옮겨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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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