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내기 오래전에 블로그에 프롤로그를 써뒀었다. 책에 대한 안내를 그 글로 대신할까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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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읽기' 서문
어느 날 도마복음이 내게 꽂혔다. 예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지나쳤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렇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 같았던 그것 세상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어버릴 수 있는 마법의 열쇠 이건 꿈이 아니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논픽션이다. “누구든지 이 말들을 올바로 풀 수 있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올바로 풀 수’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단서가 나의 읽기를 막을 수는 없다. 혹시 올바로 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나의 읽기가 예수의 말씀을 올바로 풀었다면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읽기는 수많은 읽기 중에 하나다. 지금의 이 읽기는 60억분의 1일 뿐인 것이다. 나의 읽기가 과녁을 빗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 이 탄착점을 기준으로 오류를 조정하고
중앙에 더 가깝게 쏘면 된다.
이제 내가 읽은 것을 많은 사람들과 나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누군가의 읽기가 덧붙여질 것이다. 그때는 예수의 말씀을 올바로 푸는 것에 더 다가가 있지 않을까? 혹시 그렇게만 된다면 그 수확을 더 많은 사람이 나눠 가질 것이다. 이제 세상은 많이 바뀔 것이다. 죽음 위에 세워졌던 모든 성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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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속의 예수는 꽤 오래전부터 숙제였다. 이번에 책을 내는 것은 다음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숙제검사를 받는 것과 같다. 선생님이 어떤 평가를 내리실지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후,
내게 노무현과 도마복음 속의 예수가 계속 겹쳐졌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무리들을 위해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노무현.
그리고 또 하나 겹쳐지는 것이 광야에서 깨어날 것을 목놓아 외쳤던 예수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던 노무현.
역시 블로그에 올렸던 또다른 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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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동안 미뤘던 사우나를 다녀왔다.
몸이 찜질을 원했던 것은 몇일 전인데 오늘에서야 다녀올 수 있게 됐다.
사우나에서 그女가 나오길 기다리며 오랜만에 사티를 했다.
눈을 감자 마자 잠깐이었지만 허리가 구부정하게 있었음이 알아차려지고
허리를 세우게 됐다.
또, 그전에는 몰랐던 땀을 흘리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음이 알아차려졌다.
서둘러 나오느라 얼굴 위로 땀이 배어나고 있었고
약간의 허기가 어른거렸다.
실로 오랜만에 의식적으로 해보는 사티였다.
그렇게 앉아있는데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女는 약속한 시간이 꽤 지났는데 왜 나오지 않을까?
전화를 해야 할까?
그래 너(몸)를 위해서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겠다.
예수도 떠올랐고, 붓다도 떠올랐다.
언젠가 붓다에 대한 견해 차이로 선배와 싸웠던 일도 떠올랐다.
선배는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왜 사회를 개혁하지 않았는가? 했고
난 외부로부터의 개혁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며
결국엔 모두가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아, 그렇다면 자신을 죽이러 드는 무리를 껴안으려 했던 예수는 무모했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아, 노무현 대통령은 예수의 길을 갔구나.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께 용서를 구했다.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
노무현 역시 그랬다.
그가 싸우지 않고 몸을 던진 것은 용서였다.
그러나 용서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했는가?
정치를 하면서 세상을 개혁하겠다고 온 몸을 던지는 이들은 깨달은 이다.
보수가 정치를 하는 것은 쉽다.
국민의 두려움과 거지 근성을 적당히 마사지하면 되니까.
진정한 개혁은 종교의 몫이 아닌가 한다.
붓다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고 ...
개혁은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날 때 가능하다고 본다.
붓다는 자신의 등불을 켜라고 했고
예수 역시 사자를 잡아먹는 사람이 되라 했다.
둘 다 깨어나라는 얘기다.
무리는 깨달은 이를 잡아먹는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걸어간 노무현.
그는 깨달은 이였다.
...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난 시민의 조직된 힘
그렇다. 그냥 시민의 조직된 힘이 아니다.
'깨어난'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그女를 기다리면서 노무현이 간 길을 생각했다.
어쩐 일이냐며 아직 전화도 안했는데 벌써 그女가 나왔다.
그리고 길을 걸었다.
을씨년스러워야할 겨울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길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끝나는가?
많은 이들이 길을 가지만
오늘따라 노무현의 길이 자꾸 눈에 밟힌다.
으째쓰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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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마복음 읽기는 왜 깨어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깨어있을 것인지에 대한 아픈 성찰들이다.
제목에 덧댄 '비극에서 마법으로'는 깨어있을 수만 있다면
이 비극같은 현실 속에 마법이 펼쳐질 거라는 주문같은 거다.
책값이 조금 비싸게 책정되었다. 많이들 사주면 세상이 그만큼 깨어날 거라는 거 보장한다. 그리고 좋은 일들이 넘쳐날 거다.
고맙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3-27 20:09:36 문예·과학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5-02 05:05:15 월간박봉팔닷컴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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