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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같지않은 실사에 가까운 패턴을 통해'안티무비'의 기린아라 불리우는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 헐리웃 최고 메이저 스타 니콜 키드먼의 만남은 그 라인업이 발표된 순간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굵직한 대안을 제시하는 주류계 감독으로 여기기는 힘들지만 워낙 개성 넘치는 자기기반을 가진 폰 트리에 감독의 색채에 그녀가 자연스레 녹아들지에 대한 우려도 쏟아지는 기대 만큼이나 풍성했다.
영화는 성공이었다. 디 아워스로 오스카를 석권했음에도 미주의 한계를 넘어보지 못한 니콜 키드만을 향해 까다롭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유럽관객들이 열광했으며 작품 자체가 발산한 폰 트리에 감독의 자극적인 이슈에도 평단과 업계의 호평이 이어졌다. 폰 트리에가 앞세운 승부수 니콜 키드만은 도그빌속의 배타적이고 인공적인 여백에 정확히 끼워 맞추어졌다. 그녀가 단순한 스타이기보다 월드 클래스급의 슈퍼스타였기에 일반인과 경계가 있는 그 무언가의 거리감도 본 작품의 낯선 내용성과 적절한 흐름을 이룬것이라 여겨진다.
도그빌은 9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인륜적이지 못한 혼란을 집중적으로 담아내지만, 마지막 에피소드를 제외하곤 극적 구성을 보인다거나 변칙적 시점이 담겨있지도 않아 오히려 노멀하게 감상할만한 여유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3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러닝타임도 위 생각을 뒷받침할 항목에 포함 될 것같다.
마피아에 쫒겨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숨어 들어온 그레이스(니콜 키드만). 사실 그레이스는 목적앞에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마피아 보스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를 찾던 중이다. 보스는 그녀의 친부이다. 그녀가 다다른 도그빌이란 마을은 주택이라 규정할법한 정식의 건축물조차 찾을 수 없고 각자구역을 주차선 처럼 그어놓은 채 서로의 모든것을 살피는 듯한 피상적 느낌이다. 마땅히 오갈곳이 없는 그녀에게 별다른 선택은 없다. 도그빌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이자 불청객일지도 모를 그레이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지만, 그녀에게 남다른 호감을 보이던 톰(폴 베타니)이 주민들에게 행한 설득과 투표와 같은 나름의 절차를 통하여 그레이스는 마을의 일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도그빌의 삶을 익힌다. 한발 먼저 움직여 일하고 드러내기 힘든 각자의 고충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 사람들은 그녀의 진실된 노력에 감명을 받고 원주민에 비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이웃으로 폭넓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어느날 범죄에 연루된 그레이스의 현상수배 전단이 마을 어귀에 걸려지고 주민들은 일정기간 도그빌에만 위치했던 그녀가 사건과는 전혀 무관함을 확신하고 비호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의 알리바이를 믿는것은 아니었다. 아니 믿었지만 그 믿음에 대한 대가를 바라기 시작했다. 몸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녀에게 일종의 오고가는 상도의 경우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간을 거친 후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상상키도 힘든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 남자들은 너나없이 욕정을 풀고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시기한고 능멸한다. 일인에게 집중된 가혹한 육체노동역시 두말이 필요없는 그레이스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녀를 다루는 사람들의 표정은 시일이 지날수록 무감각해져 갔으며 그레이스가 감당해야 할 학대도 마을의 당연한 관습처럼 자리매김 한다.
영화를 보며 도그빌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드러낸 악랄함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한사람의 행동이 아니기에 쉽게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그레이스라는 객체가 조건없이 마을에 편승될때 도그빌이 간직해온 유무형의 방식은 이미 심각한 균열을 보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을 수용해본적이 없는 폐쇄된 마을. 소박함을 떠나 우둔한 느낌마저 비추던 이들이 행한 그릇된 집단성은 단순히 인간내면에 도사린 추악한 욕망이 폭발한 것 정도로 고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격발시에 어긋난 탄환의 오차가 과녁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큰폭으로 벌어지듯 영화는 인면수심으로 탈바꿈한 도그빌 주민들의 속내엔 '그레이스' 라는 오차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물론 폰 트리에 감독은 얌전하고 조용했던 마을에 단순히 그레이스가 등장한 연유로 그들의 품성이 바뀌었다라 말했던게 전부가 아닐것이다. 그는 도그빌의 습성을 파고들어 특정집단의 형태보다 살아오며 누구나 가담해볼법한 전형적 현대집단의 폐해를 표현했다. 이방인을 대하는 자세가 노련하지 못했던 도그빌 전체의 서투름이외에 '돈' 이 연계된 현상수배사건 이후 빠르게 변절한 그들의 과정을 주목하며 그레이스가 견뎌야했던 조소나 노동착취.성폭력등은 수위의 차이일뿐 현실에 속한 조직개념의 단점과 특별한 차이가 없는 성격이었음을 그려낸다. 이런 부분은 도그빌의 외양을 의가 돈독한 변방 속 시골마을 정도로 여긴 관객들에게 약간의 허탈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연출상 그레이스는 도그빌 역사의 첫 손님으로 기록될 것 같다. 한점의 미동조차 없을 잔잔한 호수위에 던져진 그레이스라는 파장은 전적으로 도그빌이 감당할 몫이었다. 인도의 성인 까비르가 남긴 경전 글귀 중 '처음 본 이를 맞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누구보다 반가워 하되 절대로 나의 집을 그에게 알리지 않는 것' 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말에 가설을 전제한 신빙성이 주입된다면 도그빌은 스스로 두가지 모두를 어긴 것이다. 처음 마주했던 그레이스를 그리 달가워 하지도 않았고 본인들의 거처는 쉽사리 노출했다. 폰 트리에가 구성한 나홀로 섬과 같은 주민들의 생소한 삶의 형태 역시 외부인을 맞겨두기엔 아직은 역부족일지도 모를 불안감을 관객시점에 꾸준히 얹혀놓는다.
시간이 흘러 챕터6정도를 넘기게 되면, 관객들은 그동안 축척해온 도그빌에 대한 분노는 뒤로하고 한가지 커다란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대체 왜 그레이스는 사람들의 악행을 한없이 허락했는지, 도대체 왜 도그빌의 소유물임을 스스로 인정하는양 숨죽이며 지낸것인지, 너무나 거친 폭력이 가미된 그들의 역설적인 환영에도 언제나 아낌없는 미소로서 응대했던 이유가 무었인지. 잠을자며 영화를 본 관객을 제외하곤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 대목에 대한 짙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그 미궁의 해결고리를 찾기위한 실마리는 영화내내 그레이스를 옹호했던 유일한 그녀편 '톰' 의 심리를 통해 유추해보고 싶다. 그는 그레이스에 대한 순결한 사랑을 다짐하면서 타오르는 욕정을 억지로 꾹꾹 눌러 삼킨다. 내 시각에서 톰은 아마도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육체적 행위를 갈구한 것으로 비춰지며 그는 한시도 멈추지않고 주민 전체를 포용하거나 혹은 그들안으로 그레이스가 동화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그 두가지가 일종의 사회적 능력이라면 톰은 이미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라 점찍어놓은 그레이스에게 정서적으로 길들여지는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톰의 주관적 성향은 감독의 연출에 의해 그녀를 둘러싼 모두의 감정으로 덧씌워진다. 그늘진 어귀에 숨어 교묘히 훔쳐보는 듯한 관찰자 시점은 변함이 없지만 그레이스를 길들이려 했던 주민들의 본색은 오히려 그녀가 베푼 천사의 채찍에 사육된 '도그 마을' 의 미물정도로 평가절하 시키기에 역부족이지 않다. 그 만큼 일사분란하게 단 한사람을 린치했던 집단의 만행과 이에 별다른 항변없이 악마성을 성장시켜준 피해자의 윤리의식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윤리 자체에서 약간은 동 떨어진, 쉽사리 공감하기 힘든 현실적이지 못한 선택이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더구나 완력의 상징격인 마피아의 힘을 언제고 빌릴수도 있던 그레이스의 위치는, 그녀에게 향했던 대다수의 절대적 동정심리를 일정부분 중립향으로 이동시키는 충분한 요인이 된다.
범상치 않게 진행되었던 '도그빌' 은 결국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이어 분노에 찬 그레이스와 폰 트리에 감독은 관객을 향한 세가지 질문을 던진다. 너라면 과연 이들과 함께 나를 겁탈하고 학대할 것인지? 아니면 유일하게 나를 지켜줄 것인지? 혹은 남자주인공 톰처럼 자신은 도그빌 무리들과 남다른 척 행동하다 끝내는 너 역시도 나를 탐하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 할 것인지?. 다수의 관객은 두번째 질문에 환호하며 도그빌 사람들의 죄악에 아낌없는 단죄를 요구하겠지만 영화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이미 예견될법한 대중의 선택을 음흉히 조롱이라도 하듯 제시된 질문의 선택권 자체를 없애버리며 첫번째 예시속에 당신들 모두가 해당 된다는 결말로서 영화의 막바지를 채운다.
결국 그레이스가 동원한 마피아의 무력적인 힘과 그녀를 억류했던 추악한 본성들의 한판대결은 전자의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 되어진다. 동네에 사는 모세Mose라는 강아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뼛가루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 마을을 송두리채 쑥대밭으로 만드는 그레이스의 결정은 영화내내 그녀를 남몰래 방관했던 우리모두에 대한 복수이며 마피아 아비와의 의절을 위해 도그빌로 향했던 그녀 자신에게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남겨질 것이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개처럼 변해버린 '도그빌' 의 결정적 모티브 '개' 에 대한 트라우마를 오랬동안 가지고 있었다. 아주 어릴적 시골에서 충격적으로 개 도살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생긴 일종의 강박증이다. 마을 어른들이 아무곳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개 주위에 원을 그려 서 있고, 주인쯤 되보이던 사람이 둔탁한 몽둥이를 들어 개의 얼굴을 내리친다. 아마 빚맞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턱이 빠져버린 개는 땅에 질질 끌리는 턱을 치켜세우고 소름끼치는 신음을 내며 주위 어른들의 눈을 살기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우쭈쭈쭈하고 혀를차며 개를 부르자 이 순진한놈은 꼬리까지 치면서 그의 발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주인은 다시 몽둥이로 개머리를 후려쳤고 머리통이 갈라지고 한쪽눈이 튀어나오면서 신음은 멈췄다. 그 개는 자기를 때려죽인 주인의 다리사이에 끝까지 얼굴을 파뭍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채 인간들의 눈을 돌려보던 개의 시선엔 멀찌감치 서있던 나의 눈동자도 들어있었다. 아직도 나는 명확하게 마주친 그 개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이후 단 한번도 애완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어렸던 나이에 그 상황을 말릴수도 없었겠지만 그럴 의지조차 없이 멍하니 방관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내 입장은 오히려 지나가다 신기한 광경을 맞은듯한 구경꾼의 모습 그대로 였다. 나는 도그빌이 개봉된 후 영화의 전개 과정을 접하는 순간 돌이키고 싶지않던 과거를 들춰내며 편치않은 세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도그빌'의 관객을 깊숙한 영화속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오만한 방관자로 설정한다. 작품의 결말을 통해 속시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와같은 불쾌한 감정이나 마치 그레이스로부터 단죄당한 느낌을 얻은 이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연출해온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아주 나쁘거나 아주 좋은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뉜 경우를 수시로 목격한다는 점이다. 폰 트리에의 영화에서 어중간한 캐릭터는 쉽게 만나볼 수 없다. 감독 자신이 자라오면서 체득한 경험담을 필름속에 담아내는 것이라면 그는 아마도 인간들에게서 상처받고 환멸을 느껴본 경우가 매우 많거나 주윗흐름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성향일지도 모르겠다.
2003년 칸 영화제에 공식출품된 자리에서 '도그빌' 은 현지 기자들을 통해 미국이 전형적으로 약소국을 다루는 방식과, 세계각지에 흩어진 체류 노동자들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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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