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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앞서, 나는 니콜 키드먼을 본 적이있다. 몇해 전 도쿄에서 개최된 시계 런칭쇼로 기억하는데(그때 시계팔이 사업했었다. 요새는 쵸코건빵에 관심) 여성으로선 매우 큰 신장이라 할 수 있는 180cm가량의 그녀가 킬힐까지 착용하여 거의195cm에 달하는 모습으로 등장해 주윗사람들 모두 니콜을 올려다 본 기억이 난다. 특히 헐리웃 스타들을 실제로 접하면 필름속의 자태에 비해 실물이 굉장히 뒤쳐진다는 정설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애초부터 외모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높아도 너무 높아서 제대로 얼굴한번 못 본 아쉬움도 진하게 남는다. 물론 순식간에 나타나 번개처럼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겠지만..
개인적으로 '투 다이 포' 까지 니콜 키드먼 특유의 섹시미가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골드 다이아몬드' 라는 별칭과 '걸어다니는 바비인형' 이란 애칭, 이를 벗삼아 살아있는 미의 여신으로 20세기의 막바지와 21세기 첫단막을 군림한 키드먼은 어느덧 50에 가까운 중년이 되었으며 이미 예전의 빛나던 외모는 과거형이 된 지 오래다. 이제 키드만은 연기로서만 제2의 배우 인생을 찾아야 하는 쉽지않은 기로에 놓였다. 결국 그녀는 빼어난 외모에 연기력이 묻혀버리는 한계를 '디 아워스' 를 통해 극복하였다. 디 아워스는 니콜 키드먼이 메부리 코와 흑회색 가발을 통해 대놓고 못생긴 여성으로 분했던 의미심장한 작품으로, 그녀가 연기로서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선언작 일지도 모르겠다.
<디 아워스>는 앞서 말한 니콜 키드먼과 연기 폭에서 만큼은 헐리웃의 고전 기성 모두를 도합하여도 그 퀄리티에서 뒤지지 않을 메릴 스트립, 그리고 위 두 여성처럼 자타공인의 범주에 마땅히 속해질 줄리앤 무어가 공연했다. 감독은 여성적 심리묘사에 능숙한 '스티븐 달드리' 인데 그는 52주간 지속되었던 영국의 대처 총리와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갈등이란 기본 베이스에 발레리나를 꿈꾸는 꼬마소년의 플롯을 얹은 데뷔작<빌리 엘리엇>으로 감독인생의 첫단막을 성황리에 마친 사람이다.
그의 차기작이자 본 작품인<디 아워스>같은 경우는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델러웨이 부인' 을 재해석하여 울프를 세명의 여주인공 중 하나로 등장시킨 마이클 커밍햄의 소설<The Hours>를 원작으로 삼고있으며 '델러웨이 부인' 은 네덜란드 여감독인 '마를렌 고리스' 의 손으로 극화되어 96년에 동명개봉 되었던 사례도 존재한다. 단순히 접근하자면 버지니아 울프가 쓴 소설과 배경, 그 인물을 차용하여 커밍햄이란 작가가 '디 아워스'라는 책을 출고 하였고, 그 두번째 책을 또다시 달드리의 손을거쳐 동일제목'디 아워스'로 영화화시킨 작품이라 이해하면 간단하겠다.
감독 스티븐 달드리의 가장 최근작은 독일 전후세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였는데, 이 역시도 여배우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며 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겼지만 본래는<디 아워스>를 통해 아카데미를 거머쥐었던 니콜 키드만이<더 리더>의 주인공으로 내정 된 상태였다. 그러나 니콜은 임신을 이유로 막판에 출연을 고사하였고 긴급수혈된 케이트 윈슬렛이<더 리더>라는 그야말로 대박중의 대박작품을 쟁취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남겨져 있다.
이렇게 데뷔작을 위시하여 단 세작품만으로 명장반열에 올라선 스티븐 달드리와 그 파트너쉽을 이뤄간 여배우들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원작들에 버금가는 각본을 수하려게 재탄생 시켜온 '달드리' 라인의 실세이자 각색가 '데이비드 헤어' 가 끼친 지대한 공로도 묵인할 수 없다. 그는 대표작으로 <데미지><디 아워스><더 리더>등의 원작들을 손 보아 왔다.
영화 제목'The Hours'의 뜻은 '세월' 이다. 궁극적으로 세월이란 단어가 줄 무게감에 작품의 외양이 거창하게 여겨질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투박한 모양새를 지닌영화가 디 아워스다. 1923년을 살고있고 글을 썼던여자(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만), 1951년을 살고있는(원작The Hours는 1949년)글을 읽었던 여자(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2001년을 살고있는(원작The Hours는 2001년이 아닌 '현재'로 지정)두 여자의 자취를 밟아가는 마지막 여자(클라리사 본-메릴 스트립)까지, 이렇게 세 여성의 하루와 그날의 언행들을 번갈아 가며 기록해낸 영화다.
영화의 개봉당시 주인공이자 실존작가인 '버지니아 울프' 라는 존재를 서정성이 짙게담긴 영미문학가 정도로 여겨오며<디 아워스>를 접하였는데, 전반적으로 서정을 뒤엎는 음침에 가까운 영상들이 주 를 이루는듯한 약간의 반전을 느꼈다. 이는 당연히 커밍햄의 원작 'The Hours' 를 영화보다 늦게 읽어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자살로부터 출발하는 첫 장면이야 영화요소의 필연적 가미로 치부 할지라도, 일관되게 포착시킨 세 여성의 건조하고 우울한 텍스트는 유명 스타 3인이 출연함으로서 기대할법한 '재미' 라는 단어완 일치감치 거리를 두고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디 아워스>의 내용인 세가지 시간, 세가지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들을 뚜렸한 정체성으로 균형있게 나열시킨 점은 의외로 속도감있고 세련되있다. 복합적 시점을 다루는 영화들이 주로 교차편집 기술을(예를들어 '펄프 픽션' 이나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스' 같은 영화들)쉼 없이 난사하며 지루함을 해소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에 반하여 디 아워스는 최소한의 기교만으로 안정적인 흐름과 조화를 이뤄간다. 이는 런닝타임을 채워가야 할 필수적 요소인 배우의 연기력이 잘 담보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구나 각 인물들의 빈틈없는 컨셉 배치가 아주 중요한 쓰리톱 주연작인 디 아워스에 대한 제작진의 노력과 베테랑 배우들의 눈에띄는 절제력은, 단순히 소설을 영화화 하기위해 뭉친 사업상의 행위를 넘어 시대를 초월한 원작의 구도를 기품있게 복원시키려는 문화적 사명감도 엿보인다.
'델러웨이 부인'을 집필한 버지니아 울프는 우울보다 조울에 가까운 모습으로 환청에 헤메이며 자살욕망에 중독 되어있다. 후에 그 책을 읽고 있는 로라 브라운은 뭔지모를 감정기복을 겪으며 심적인 방황에 부딪친다. 이들보다 조금은 평온해 보이는 '현재' 의 클라리사 본 역시 그 깊이를 알수없는 허무함에 빠져 하루를 견뎌간다. 과정을 다 말할 순 없겠지만 이들은 결과적으로 각자가 원하던 자유를 자살과,현실도피,사랑하던 이의 죽음과 같은 비극적 상황들을 통해 쟁취한다. 물론 디 아워스를 본 봉팔러들 중 그런 결말이 어떻게 자유를 얻은 모습인지를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만, 이것은 각기 해석에 따른 결론이기에 위험할 정도의 미화는 아닐것으로 본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주인공3인을 중산층으로 추정하게 될 것 같다. 온종일 책을 읽고,차를 마시며,꽃을 바라보는 이들의 삶이 생계형 고민에서 이탈한 별개의 심적고통을 감당하는 시간일거라 여겨진다. 말 그대로 '배부른 고뇌' 처럼 느껴지는 그녀들의 모습이 생업의 전쟁터에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우리사회의 시각에선 적잖게 친밀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의 호쾌한 액션영화가 한국관객의 고단한 마음을 속시원히 쓸어내려주기엔 디 아워스 류의 영화보다 훨씬 적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루 반나절 동안 자살을 결심하고,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며,반복되어 늘어지는 일상 속 탈출을 한없이 꿈꾸는 이들의 애환은 단순히 한마디로 폄훼 할법한 일시적 고민거리는 아니어 보인다. 세 여인이 '델러웨이 부인' 이란 모티브를 통해 겪을 치유없이 반복되는 불분명한 고통의 양은 삶의 질적 수준을 넘어 누구나 직면하게 될 인생에 대한 회의나 자아에 대한 혼란으로 표현되고 충분히 신빙성있게 설득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목은 오히려 큰 거부감없이 관객모두에게 다가설 상당히 현실적인 메시지로 흡수되는 느낌이다.
또한<디 아워스>는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꽃'과 같은 여성적이고 은유적인 연결고리를 자주 등장 시키며 남성의 힘으로 자전되는 시대적 오류를 짚어내는 면도 발견된다. 덧붙여 판단의 주체가 되기보단 시종일관 주윗흐름에 편승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사회적 한계를 짙게 명시한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세여인 모두 실의의 순간에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손길로 위로를 받는 연출구도엔 레즈비언,즉 여성들의 동성애와 같은 자극적인 요소도 보편적인 삶의 일부로 우아하게 희석시킨 장면들로서 여성성을 강조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원작을 원작화하여 또 다시 영상화시킨 '디 아워스'가 상당히 난해한 느낌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원작인 'The Hours'를 먼저 읽어보고 영화를 보는것이 좋을듯하며 가능하다면 원작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과 마이클 커밍햄의 'The Hours' 그리고 영화 디 아워스를 순서대로 감상한다면 색다른 문학적 윤회와 나도 모를 감수성의 확장을 느낄 수 있다.
본 작품의 총체적인 느낌을 조심스레 한 문단으로 표현해 보자면 '성인여성이 중년에 겪는 제2의 성장통 영화' 정도로 소개해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동일내용으로 간주하기엔 어려움이 따르지만 웨인 왕 감독의 '조이럭 클럽'과 레슬리 글래터 의'나우 앤 덴' 같은 영화도 봉팔러들에게 추천해보고자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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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잘 읽어줘서 다행이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