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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했을 당시 흥행참패와 동시에 악평의 굴욕을 당한 이유는 어찌보면 지극히 단순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80년대 초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스필버그의 'E.T' 나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투더 퓨쳐' 류의 영화들뿐만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공상과학물은 밝고 희망찬 미래를 표현하는 작업이 메이저 시장의 도배를 이루고 있었다. 그 환상의 꿈에 도취되었던 동시대 헐리웃 트렌드를 뒤로하고 유일하게 암울한 공상과학으로 어필했던 이가 리들리 스콧이며 그 제작진들이다.
그렇다고 하여 리들리 스콧이 환타지 컬트의 거장 '쟝 피에르 주네' 처럼 주류에서 이탈한 가학적 실험영상만을 담았던 것은 아니다. 리들리 스콧은 현재까지도 스필버그 못지않은 대표적인 상업 감독이며 그 역시도 블레이드 러너의 흥행을 위해 많은 부분 공을 들였다. 특히 미니어처로 손수 제작하여 배치한 미래건축 양식들과 쟂빛도시의 어두운 풍광,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협찬을 받아 선보였던 여주인공 레이첼의 패션등은 후에 이 작품이 재평가 수준을 떠나 관객과 영화인들이 두서없이 꼽는 '어두웠지만 아름다웠던' SF로 회자하는 주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실 영화가 제작된 1982년 당시의 LA는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외쳤던 장미빛 미래와는 별개로 33%비율의 공공조합원을 13%로 대폭축소하며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던 해였으며 무분별한 공업화로 인한 산성비가 유난히 많이 쏟아졌던 해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보유한 항만 시설과 눈부신 경제성장의 아이콘, 소위 천사의 도시로 불려온 로스앤젤레스의 가면을 스필버그가 E.T로서 덧씌워 표현했다면 진실에 가까운 이면을 상당히 현실적인 직설화법으로 영화에 담은 이가 리들리 스콧이라 봐도 무리는 아닐것 같다.
어찌보면 음지의 관념으로서 제작된 양상이 진한 블레이드 러너를 더욱 습하게 만드는 요인엔 눈에띄는 '일색' 도 자리하고 있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80년대 초반 디트로이트 자동차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하고 마치 전자기술로서 세계와 미국시장을 통치할것만 같은 기세로 떠오르던 일본에 대한 두려움도 빼놓지 않고 있다. 번화가부터 시작하여 변두리 내부까지 온통 가타가나와 히라가나로 도배된 불규칙한 네온사인과 일성이 혼합되어 섞여나오는 거리의 소음들. 내용속 고위관료에 까지 일본의 영향력이 깊숙히 베인 색채로 그렇게 블레이드 러너는 흔지않게 출발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일반인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뱀파이어를 추적하여 사냥했던 영화 '블레이드' 처럼, 인간들에 섞여있는 인조인간 '리플리 컨트' 를 찾아 제거하는 사립경찰의 내용을 담고있다. 그러나 처단자로 등장하는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흡혈귀들을 섬멸했던 '블레이드'의 주인공과 같은 어떠한 사명감이나 뚜렸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역시도 상부의 지시에 반자동적으로 움질일 사냥꾼으로 비춰질 뿐이다.
인조인간을 쫒는 데커드는 유난히 무표정하고 차갑다. 그에 반해 영화속 '악' 으로 등장하는 인조인간 로이(룻거 하우어)를 비롯한 그 잔당들은 사람인 데커드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고 활동적인 제스쳐를 보인다. 관객들은 인조인간들의 구역으로 제한되있는 식민지 행성을 탈출한 장면과 그들을 제압할 데커드가 고용되는 과정까지를 지켜보며 인간미가 제고된 명백한 인간이 진짜 인간과 비견하여도 전혀 인간으로서 손색이 없어보일 인조인간을 사살하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과거 청송 교도소에 수감된 중범죄자들이나 삼청교육대에 억류되있던 정치범,범단(조폭)사범등이 강제동원된 국토건설단 사업처럼, '블레이드 러너'속의 인조인간들 역시 인간의 역량으로 모두다 채워지지 않는 노동력의 공백을 메꾸기위해 생산된 산업기계로서의 임무를 부여받아 세상에 등장하며 일견 생각보다 발전적인 외양을 가진다. 한편 이들을 만든 '타이렐' 이란 첨단기술회사의 초기목적은 실제인간의 지능에 범접할 수준으로 인조인간을 제작하여 작업효율의 극대화를 꾀하였지만, 오히려 타이렐은 본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주입시킨 그 만만치 않은 '지능' 덕택에 항명의 위기를 맞는다.
이렇듯 LA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며 인간노동력 한계를 대체할 목적으로 보충된 인조인간의 존재를 그린 시나리오는, 영화가 만들어진 82년의 LA상황과 교묘하게 맞물린다. 제작 완료시점 자체가 다르기에 위에 언급한 LA공공조합원 대폭감축사태를 영화속에서 비난했다고 여길수는 없다. 그러나 감독 리들리 스콧의 황혼기라 할수있는 80년대의 예리한 감각을 들추어 보았을때 충분히 자랑할법한 선구안을 내재한 영화도 블레이드 러너라 할 수 있다.
일단 리들리 스콧은 영화 초반부의 '로이'를 악의 상징으로서 묘사하기에 주저가 없는 것 같다. 그는 때론 교활하며 선혈이 낭자한 순간에도 어떠한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조인간을 창조한 업체 '타이렐'사가 이기적인 행태로서 그들에게 대응하는 장면을 보며 관객들은 합리화 될 수 없는 로이의 폭력을 일정부분 공감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타이렐사는 인조인간들이 반란을 일으켜 구역이탈을 감행한 공격성의 부작용보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고자하는 그들의 항변앞에 더욱 크게 분노한다.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가장 최소한의 대우를 요구했던 것 인지도 모를 로이일당의 주장은 인간의 신성함에 도전한다는 금기론을 내세운 타이렐사 앞에 철저하게 묵살되버린다.
이런 대목에선 타이렐사가 인조인간을 만든 과학의 우를 범했을지라도 실제 인간들과의 동승을 엄격히 금지시키는 기본적 의무를 수행한점으로 비춰질 공산이 있다. 애초부터 술 한잔 걸친뒤 어깨동무하는 동반자로 만든게 아니라 인력의 한계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허나 2019년 LA를 바삐움직이는 실제 인간들의 삶은 인조인간에 비해 행복하거나 우월감을 가지고 사는것도 아니며 인조인간의 출현 역시 바란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통제권을 지닌 극소수가 모여 만든 질서와 룰에 도전한 기계'로이'는 물론, 그를 처단하기 위해 뛰어든 인간'데커드'역시 혼탁한 미래시대의 비극적 희생양이자 어느순간 우리 모두에게 닥칠지모를 불길한 자화상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쯤되면 블레이드 러너는 중반부에 치닫을수록 단순한SF를 넘어 선과악의 모호함이 극에달하는 대표적인 장르 '네오 느와르' 영화중 하나 였음을 발빠르게 입증하려던 것으로 각인된다. 이는 매력있고 복합적이라는 자평아래 영화소재의 뚜렸한 대안장르로 오랬동안 자리잡았는데, 우리는 느와르의 대표격인 '대부'를 보며 내부의 배신자로 인해 꼴레오네 패밀리가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가문의 부활을 기원했다. 하지만 돈 꼴레오네 조직의 실상은 서민의 등을 후려치고 지역인사들을 거침없이 매수하여 이룬 청탁과 탈세등으로 성장한 깡패집단일 뿐이다. 상당수의 관객은 이들이 명백한 악당임에도 영화의 주연인 말론 브란도나 알 파치노를 악으로 규정 해본적이 없다.
그런면에서 리들리 스콧은 '네오 느와르'를 바탕으로 선과악을 뛰어넘은 뒤, 관점을 달리하여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세계질서의 공통된 힘 '구별' 을 비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블레이드 러너가 표방한 핵심은 이것에 가깝다. 실상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들임에도 부와 교육수준으로 인해 나뉘어지는 구별,인종의 구별,국력의 구별로서 언제나 사람의 운명은 결정되어 왔다. 더구나 블레이드 러너 속 구별의 도구는 '눈' 이다. 위에 말했던 것처럼 영화에 비추는 너무나도 모호해 보이는 인간과 인조인간의 차이를 분간할 유일한 방식으로 눈동자속 홍체 상태를 구별지어 인조인간으로 판명한다. 그 과정을 거쳐 명백한 인간의 권리로서 보잘것없는 하등으로 낙인시킨 인조인간을 제거 하려드는 모습은 영화 후반부를 달리며 '악'의 비중이 로이에서 타이렐사로, 그리고 살아있는 인간 모두의 몫으로 전이되감을 알게된다.
잠시 영화가 시작되었던 오프닝 시퀀스 이후로 거슬러가 본다. 한명의 이름모를 기계가 자신의 눈을 매섭게 관찰하는 인간으로 부터 심문을 받고있다. 그리고 영화의 막바지로 다시 되돌아와 본다. 기계들의 대장인 로이와 권력자들의 하수인이며 기계 사냥꾼인 데커드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한채 각자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 둘의 입장은 영화초반의 강자였던 인간과 약자였던 기계의 양상에서 난간에 매달려 생사가 위태로운 사냥꾼과 어쩌면 손을 내밀어 그를 구원해줄수도 있는 신의 입장으로 바뀌어 있다.
룻거 하우어가 연기했던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 '로이'는 자신을 사살하려던 데커드를 죽음에서 구원해준다. 그리고 4년이라는 기계수명을 이기지 못한채 빗속에서 멈춰 버렸다. 그는 자신을 창조했던 조물주 '타이렐' 에게 구원받지 못한 피조물 이었지만 나름대로 간직했던 생명의 이치를 세상에 뿌리고 소멸한다. 영화는 막바지 장면을 통해 과학이란 존재가 미래를 위한 개척보다 가장 토속적인 생명의 근원을 지키는 도구로서 활용됨이 정당에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사회 전반적으로 노출 빈도가 높은 문제요인들을 하나하나 두루 섭렵한 매우 철학적인 작품으로 기억될만 하다. 이 영화는 무기와 종교에 의존하던 시대부터 살아 움직이는 자동제어 시스템에 존속되버린 작금의 현실을 정석으로 통찰한 작품이다. 현재의 리들리 스콧이 위와 필적할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음에 아쉬움이 큰것도 사실이다. 엄밀히 따져볼때 '블레이드 러너'역시도 수익과 평론 양측 모든 구도에서 실패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가려져있던 부분을 한꺼풀씩 펼쳐보면 새롭게 발견되는 유산이 너무도 많기에 '블라인드 러너' 로 개칭해도 될 만큼 가치력높은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딱 7년뒤인 2019년이었다. 양말을 걸어놓고 제3세계를 꿈꾼 80년도 관객들에게 '산타는 없다'라고 말한죄로 온갖 박해를 당했던 이 영화는 30년이 지난 현재 역사상 가장 현실에 가까운 공상과학 영화로 재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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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