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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함경도 어느 시골 동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곳 역시 그 동네 어귀였다. 동네 입구엔 작은 산 봉우리 하나 봉긋했고, 그녀는 그 옆에 서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 준하야, 살아서 와야 돼. 꼭 살아서 와야 돼." 아버지와 형들은 그 날 집에 없었다.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나와서도 난 고향으로 가지 않았다. 음악대학을 보내 주마고 양아들 하자던, 생면부지 귀인도 거절한 걸 보면 참 앞뒤는 안 맞았다. 고향에서 가장 큰 피아노를 치던 손가락이라 그랬던지 사회생활 할 주변머리도 없었다. 군대를 자원했지만 장교는 애초부터 못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난 그 말이 무슨 뜻인 줄은 대충 알고 있었다. 인제로 고성으로 양구로 포천으로 철원으로 파주로...그리고 원주에서 근무할 때,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기역 니은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멋쟁이였다. 미장원에 종종 놀러 갔었는데 그녀의 하얀 목양말이 참 예뻤다. 어머니가 생각 났다. 첫 딸이 태어 났다. 그 때 담배맛은 참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라는 걸 처음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난 어머니를 여자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나보다. 얼마 있다가 난 월남에 갔다.
월남에서 내린 비는 고향의 비와는 뭔가 달랐다. 기억 저편 고향비의 모습은 딱 두 가지였다. 가뭄 아니면 장마. 세상사의 별리도 두 가지였다. 사별 아니면 생이별. 하지만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딸과의 생이별은 돌아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월남이 통일되는 날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았다. 그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실향민들 모임도 몇 번 나가다가 관뒀다. 큰 형이 당간부라는 소문도 있었다. 학교선생이었던 둘째 형은? 그 후 이산가족 신청들도 하는 모양들이었지만 난 왠지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내내 어머니가 눈에 밟혔다. 동네에 3갑 반 형님이 있었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했다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3갑 반 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월남해서 재혼을 한 그 형님은, 북한에 이미 딸 셋과 아내를 두고 있었다. 나이가 꽤 지났기 때문에 이번엔 꼭 될 것이라고 위로해 드렸다. 그리고 혹시 몰라 난 어머니께 보낼 편지를 부탁해 뒀다.
그 형님의 꿈은 이번에도 깨졌다. 나이 순서에서 밀렸다. 헉! 그 나이인데도. 하물며 나 같은 건 어차피 안되는 거였다. 그 형님은 다시 담배를 피웠다. 3갑 반. 딸 한 명당 한 갑. 아내 몫 반 갑. 동네에선 왜 아내는 반 갑이냐고 차마 묻지는 못하였다. 어느 비 오는 날 선술집에서 우린 울었다. 난 이 땅에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고 악을 썼다. 부모님과 형들을 이승에서라도 다시 만나야지 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던 형님. 난 지금 어렸을 때나 오르내리던 작은 봉우리 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대전현충원에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어머니와 다녔던 하얀 목화밭에도 그 날 비가 왔었다. 촌스런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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