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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근 노끈(Go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1979)
지은이 더글러스 리처드 호프스태터(Hofstadter,1945~)는 미국의 인지과학자다.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인지과학과 컴퓨터공학을 가르친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기묘한 책’ 랭킹 3위에 들어가는 책이다.
퓰리처 상도 받았다하고, 워낙 이름난 책이니,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까치글방에서 나온 번역서를 예전에 들춰본 적이 있는데, 아, 이건 지적
허영심으로 읽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구나, 하고 순순히 덮었었다.
한참 뒤에 이 지적허영이 다시 고개를 들어서, 혹시나 하고, 원서를 사 봤다. 한국어 번역이 형편없다는 원성을 여기저기서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 번역서가 원서보다 해독하기 더 어렵다.
배신감까지 들더라.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내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야군, 하고 제쳐둘 뻔 했으니!
원서가 쉽다는 말이 아니라, 지은이가 결코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책을 쓰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체, 라기보다는 말투인데,
결코 어렵게 쓰지 않았다는 거다. 유시민의 책으로 비유하자면, <국가란 무엇인가> 보다는 <대한민국 개조론>의 말투로 쓴 글이었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내용이 결코 만만하진 않다만. 꼬고 비틀고 잘난 척하는 영어는 아니다.
괴델 : 불완전성 정리 (Incompleteness Theorems)
에셔 : 이상한 고리(Strange Loop)
바흐 : 무한히 상승하는 캐논(Endlessly Rising Canon)
이 세 사람, 세가지 분야 중 하나에만 흥미가 좀 있어도, 아주 흥미롭게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다. 지은이의 전공분야가 괴델 쪽이므로, 아무래도 ‘불완전성 정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나 바흐의 그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고, 끝나는 듯하면서
다시 시작되는 변주를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나는 에셔의 광팬이어서, 다행히 책이 지루하지 않았다. 지은이도 독자들이 괴델이나 바흐를,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하길 바란 건 아니리라, 내 맘대로 생각했다. 그래도 ‘불완전성 정리’라는 이름도 골치아픈 그 이론을,
어슴푸레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 에셔, 낮과 밤
네덜란드의 판화가 M.C.에셔는 어려서부터 그림과 공예에 소질이 있어서 건축가가 되려고도 했으나,
수학에 젬병이었고, 학교 공부에 그리 적성이 맞지 않았던 사람이다.
공예학교를 그럭저럭 마친 뒤, 이탈리아와 스페인 여행을 많이 했는데,
이 납작한 나라 네덜란드 젊은이는 높은 산, 깊은 계곡, 가파른 계단, 절벽에 지은 집이 어우러진 이탈리아의 수직적 풍경에 매료되었고,
스페인에서는 알함브라 궁전의 타일에 그만 꽂혀 버렸다.
여행길에 만난 처자와 결혼해서 아예 이탈리아에 자리잡고 살며 이탈리아 풍경을 판화로
담아냈고, 꽤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무어인의 타일 문양도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여차저차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와 테셀레이션(규칙적인 평면분할)이라는 쟝르를 붙들었고,
변형, 반영, 무한과 유한의 충돌,
그럴 수 없는 그러함 등을 다룬 작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동양적이고 선(zen)적인 요소가 눈에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보르헤스의 소설을 떠올렸던 사람이라면, 장자의 나비꿈을 연상했었다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어쩐지 끌린 적이 있었다면, 에셔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리라~.
실제로 에셔의 작품은 심리학, 철학, 기하학
등 여러 분야에서 다뤄진다.
에셔는 공부에는 낙제생이었으나(중등학교 졸업 못함), 나중에는 수학자들과 교류하곤 했다. 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논리를 그림으로 풀어내기도 했고.
(에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즐겨읽었다. 지은이 루이스 캐롤 역시 수학자였음. 에셔는 바흐도 즐겨 들었다고 한다.)
"나는 수학에 뛰어난 적이 없다.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학이론 속에 휘말려 있곤 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열등생이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지금 내 그림을 가지고 자신의 교과서를 장식한다. 수학자들은 마치 내가 그들의 형제라도 되는 것 처럼 나와 교제한다. 그들은
아마 내가 전혀 무식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 에셔
▲ 에셔, 상승과 하강
그런데, 이런 에셔의 작품과 논리학, 음악이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그걸 풀어논 게 이 책이다.
예를 들어 ‘무한과 유한의 충돌’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이런
식이다.
무한과 유한의 충돌이란 말 그대로 파라독스다.
‘모든 크레타인들은 거짓말쟁이다’ 같은 거짓말의 역설로 괴델을 설명하고, 무한히 상승하면서 또한 무한히 하강하는 에셔의 계단을 보여준다. 바흐의 캐논도 무한히 상승하다가
다시 제자리인 듯 다시 상승한다.
마음과 몸, 정신과 육체가
서로 어떻게 작용하느냐를 따지는 서양철학.
관념과 실재를 따로 놓고 보지 않고, 몸과 마음이 다름을 초월하며, conception에서 perception으로 접근하는 것. 논리가 아니라
깨달음을, 언어가 아니라 지각을 설명한다. 뇌가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런 게 인지과학인가보구나 하고 조금 알게 됐다.
위에서 언급한 심리학, 철학, 기하학, 수학, 논리학, 미학, 인지과학 등 여러 학문분야 가운데 한둘에만 흥미가 있어도 꽤 읽을 만하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음악에서 접근해갈 수도 있을 거다.
▲ 에셔, 상대성
이 책을 읽고 느꼈던 배신감에 추가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이 책을 먼저 접하고 난 뒤에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었다면, <미학 오디세이>에서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은 없었을 것이다. <미학 오디세이>가 인기를 끌고, 한참 뒤에 진중권은
호프스태터의 이 책을 언급했다. (이 책을 참조해서 썼다는 내용은 <미학 오디세이> 1권에는 적어도 없었다. 참고문헌에도.)
진중권이 이 책을 베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의 구성과 형식을 그대로 빌려왔고,
에셔, 마그리트, 바흐가 자주 등장하지만,
책의 내용과 주제는 다르다. 진중권이 여러 재료를 버무려 ‘자기의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미학 오디세이>에서 내가 감탄했던
많은 요소가, 호프스태터의 이 책에! 이 책에! 이미 있는 것들이었다.
조금 꼬아서 보면, 만약 호프스태터의 책이 한국에 잘 알려졌었다면, 베스트셀러가 됐다면, 그 뒤에 진중권이 <미학 오디세이>를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거해 놓은 참고문헌 목록에 감탄하는 독자들
보면서, 혼자 웃고 있었을 것 같다.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 자체가 그의 미학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창조적 패러디니 하고 넘어간다 하더라도...이 책을 접한 뒤, 진중권의 여러 지적결과물에 의심스러운 눈길이 생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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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