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0일 방영될 SBS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 Y]의 사전예고성 기사가 어제 하루 포털 네이트 연예 카테고리 탑에 올라 댓글 828개가 달렸다. 어제 나온 네이트 모든 뉴스 중 최다댓글.
기사를 요약하믄
3년 전 전북 익산 한 동네에 지적장애 모녀가 이사왔다. 모녀가 온 지 얼마 안돼 딸이 임신했는데 소녀의 나이가 12살에 불과해 동네가 시끄러워졌다.
단칸방에 모녀와 함께 살던 의붓아버지가 늠이라는 소문은 돌았지만 사태를 해결하려고 나선 이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소녀는 또 임신해서 둘째 아들을 낳았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지 불과 18개월 만의 일이다.
현재 15살 나이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소녀 얘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그제서야 경찰이 친부찾기에 나섰다. 의붓아버지를 불렀고, 처음에 부인하던 늠은 DNA를 채취하려하자, 첫째는 그래 내 애 맞는데, 둘째는 나 아니다고 진술했다. 소녀의 엄마는 “이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항의했다. 소녀의 엄마는 용의자로 지적장애 3급인 소녀의 옛 남친을 지목했는데, 동네 사람들은 또 “요즘 소녀 옆에 자주 출몰하는 동네 오빠가 한 마리 있었다”고 말하는 등 당황스런 상황이다.
경찰이 국과수에 의뢰한 유전자검사가 두 달 넘게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8월 10일 내일 방송을 보세요! - SBS 올림)
뭔가 엔터테인함이 환타스틱하게 느껴지지? 2년이 머야 3년 넘게 이 꼴을 두고 본 동네 잡것들과 언론보도로 논란이 커지자 움직이기 시작한 굼뜬 경찰, 의붓그거, 동네그거 등에 대한 쌍욕은 각자 알아서 하고.
곰팡이가 살짝 꼈을 때는 락스 쏟아 닦을 수 있다. 그러나 내장똥끝까지 곰팡이가 잠식했으면 방법이 없다. 그냥 공존해야지. 지금 한국 사회를 덮쳐버린 위선이 바로 그렇다.
계급이 확실했던 시대에는 절름발이, 소경, 말더듬이, 난쟁이, 뚱땡이 등을 소재로 코메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를 가진 모욕행위랑 풍자를 구분하는 경계가 대가리 쳐구린 층들에 의해 초토화 되고나니 이젠 금기가 너무 많아졌다. 간호사를 풍자해도 명예훼손, 여자 아나운서한테 한 마디 해도 명예훼손에 모욕죄, 연예방에서 국내 늬우스를 아예 제껴놓는 이유는 뭔 실명 갖다 쓰면 당장 팔목에 은팔찌가 들이닥칠까 무서우니까 드러버서 관심을 끊어버린 것. 엔터테인먼트업계에 조성된 살얼음판 같은 요딴 분위기 땜에 이제는 풍자의 대상을 '기' 제작된 것들에서 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들 중에서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진짜 강한 애들로 범위는 한정된다. 왜냐믄 대충 '강하다 만' 애들을 골랐다간 명예훼손의 치도곤을 맞게 될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오바마, 명바긔, 개구리 노무현 류가 다지만, 개구리, 쥐색히, 깜둥이 원숭이를 아무리 놀려봤자, 놀리는 우리보다 그들이 더 강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러나 희극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코메디의 본질은 강한 자를 놀려서 일시적으로 얻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진짜 약자를 골라 때리고 난 후 느끼는 우월감이다. 그렇게 찾아진 대안이 요즘 전 세계 쑈타임을 장식하고 있는 리얼리티 쑈들이다. 노래자랑에 나와서, 인간극장에 나와서 비극적, 때론 감동적(?), 신파와 꾀재재함을 연출하는 애들이 현대 코메디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된 셈.
제도와 안전망이 방어하지 못한 도태된 애덜을 리얼리티 신파 감동 쑈의 주인공으로 밀어 올려 이제는 곰팡이(위선)가 싹 다 덮어버린 너랑 내 양심을 적당히 주물러준 후, “지적장애 모녀” 앞에선 나의 우월감을 자극하는 것, 희극의 본질이 이렇게 구현되고 있다. 누가 강제로 끌고 나오지 않거든. 그저 자신의 못난 모습, 후진 모습을 드러내겠다고 대기 중인 애덜이 일렬종대로 광화문에서 신의주까지잖아. 부부 관계를 해결해주세요, 철없는 10대 부부가 나와서 카메라 앞에서 치고박고, TV에서 하는 공개 상담프로에 나와 불륜을 떠벌이고, 그걸 보며 느끼는 변태적 우월감이 걍 막 범람하는 거시다.
위 모든 얘기를 나에게 전해준, 내가 마~니 좋아하는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소품의 마지막 구절은 (원형으로) 옮겨놓을께.
(....) 이제 우리는 이론적 틀의 놀라운 전도(顚倒)를 목격하게 된다. 즉 얼간이를 조롱하던 인물들은 퇴장하고 자신의 박약함을 스스로 드러내며 행복해하는 정신박약아들을 직접 등장시켜 스타로 만든다. 누구도 불만이 없다. 바보는 자기를 드러내서 좋고, 방송사는 쇼프로를 만들어서 좋고,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가학증을 충족시키면서 타인의 취약함을 즐겁게 조롱할 수 있어 좋다.
50이 넘어서 도화살을 자랑하는 여자, 되도않는 음치지만 즐겁게 노래하는 가수, [인간 잠재의식의 순환 회귀적 소멸] 따위의 현학적 주장을 늘어놓으며 유식한 티를 내는 여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천재, 자비로 책을 내는 작가, 그 다음날 그 일이 항간의 화제가 되리라는 생각에 즐겁게 따귀를 때리고 맞는 기자와 사회자 등이다. 동네의 백치가 매우 즐거워하면서 스스로를 드러내면 우린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웃을 수 있다. 이제 바보를 비웃는 것은((=동정하는 것은=함께 분노해주는 것)은 다시금 정의로운(?) 일이 되었다. 여기에 진짜 바보와 바보를 희망한 자의 차이는 없다. 선택은 이들이 하는 게 아니고, 대중이, 그리고 대중의 욕구를 캐치한 테리비 제작자들이 한 것이다) 다시금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 이른바 [politically correct 정치적으로 반듯한] 태도가 되었다.(스펙타클 사회에 살기 1992년)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11-27 02:36:43 연예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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