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베히 옛시가지 바깥으로 반 시간쯤 걸었다. 이 길이 맞나 싶을 만큼 외딴 길. '고독한 산책자' 루소가 살았던 곳, 그 집까지 가는 길도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언덕길이었다.
장 자크 루소.
전제군주가 있던 시기에, 인간불평등은 어디에서 왔나를 서술했던 사람.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인민의 의지. 주권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분할할 수도 없다는 것.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는 것. 그러니 정부가 마음에 안 들면 바꾸고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으면 된다는 것.
지금 봐도 가슴 떨리는, 이런 사상을 세상에 내놓고 간 사람.
그의 개인적 삶도 사람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다.
고아나 마찬가지였던 유년시절. 플루타크 영웅전을 읽어주던 아버지가 누구와 싸움을 했다던가 하는 이유로 자식을 버리고 도망갔고. 온갖 일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던 청년시절. 귀족 부인의 후원을 받으며 지적 활동을 할 수 있었던 20대. 그리고 그 연상의 부인과 나누었을 사랑. 귀족 부인 여럿과 사귀었으나 하녀와 결혼했고...자기 아이 둘을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
음악을 좋아했으나 재능은 없었던 사람.
볼테르에게 받은 악평과 증오로 괴로워하던 천재.
고향 제네바를 사랑했으나,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그를 낳은 뒤 며칠 뒤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그가 열 살 때까지만 거두었던 모양이다. 제네바를 떠나 온갖 일을 하며 유럽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았고, 스무살 무렵에는 후원자 바랑 부인(de Warens)의 별장에서 부인과 함께 머물며, 책 읽고 글 쓰며 한 시절을 보냈다. 나중에 『고백』과 같은 책에서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곳이라고 회고했다.
바로 샹베히의 이 집이다.

▲ 장 자크 루소와 바랑 부인이 함께 지냈던 집
안내자료에 나와있는 내용을 옮겨보면,
" 장 자크 루소는 1728년 제네바를 떠나 바랑 부인과 함께, 처음에는 앙시Annecy에서, 그리고 샹베히에서 쉴 곳을 찾아냈다. 1736년 여름, 그가 '마망Maman'이라 부르던 이 숙녀 친구와 함께 샹베히 근교의 시골집에 정착했는데, 여기서 1742년까지 머물렀다....루소는 이 집에서 『고백』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주요 부분을 썼으며, 이 시기에 행복과 자연예찬을 만났다.
샹베히를 내다보는 테라스에 선 이 집은 17세기 샹베히에 지어진 간소한 주택의 완벽한 사례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이 집은 곧 문학적, 정치적 순례지가 되었는데, 조르쥬 상드, 라마르틴 같은 작가들이 이 집을 방문하고 감격에 북받쳐 글을 남겼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예순 넘어서 말년에 쓴 책인데, 이때 주요 부분을 썼다는 건 과장이고...이 집에서 지낼 때 이야기가 잠깐 나오긴 한다. 책과 맞아 떨어지는 분위기가 있다는 정도로만 보면 될 듯. 안 그런척 하면서 프랑스 사람들, 은근히 좀 구라가...)

샹베히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져있긴 하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말을 떠올릴 만큼, 깊은 숲속이라거나 울창한 자연이라거나 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물론 그때 기준으로는 도시에서 꽤 떨어진 시골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도시와 비도시의 구분이 확연했을 테니.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의 '자연'이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원시자연이나 사회를 떠나 은둔하는 자연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본성, 인간이 본래 타고난 천부적 자연권, 자유와 평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린이들 단체 견학 중
창에는 루소가 한 말들을 주제별로 골라 적어놨다.
이 창의 주제는 <음악>과 <평등>
여기는 <정치>와 <자연>
▽ 2층의 침실과 서재에는 꼬맹이들이
단체 학습 중이어서, 아래층 사진만 찍었음.
루소와 바랑 부인의 공통 취미는 음악.
사상이나 철학은 중년 즈음의 이야기이고,
젊은 시절 루소는 음악에 열중했다.
벽마다 눈속임 그림... 
스물 아홉살의 바랑 부인을 만났을 때 루소는 열 여섯의 나이였다.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루소에게 바랑 부인은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스위스와 프랑스 사이를 오가며(떠돌며) 이런 저런 생활을 하던 루소는
열아홉 즈음에 파리를 떠나 바랑 부인이 있던 샹베히에 찾아들었고,
역시 바랑 부인의 도움으로 사브와 공국에서 지적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열 세살 차이나는 이 남녀의 관계가 궁금하지?
이야기가 번지니까...이쯤 하고...
그들에겐 특별했을, 흔한 사랑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이십대를 이 집에서 바랑 부인과 함께 보낸 루소에게 이 시절은
"집중 독서"와 "지적 훈련"의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나면서 루소는 이 집을 떠나,
청춘과 결별하고, 파리로 간다.
거기서 세상을 만나고 사상가 루소 자신도 만나게 된다.
경사지에 앉은 집이라 2층 계단의 문을 열고 나오면 뒷동산으로 이어진다.루소는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정원도 가꾸고, 연구도 하고 그랬단다.

"At this moment began the short happiness of my life, those peacefuland rapid moments, which have given me a right to say, I have lived." - 『고백』에서 이 집에서 보낸 시절을 회상하며.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도 샹베히 시절을 언급한 부분이 나오는데, 젊은 시절 최고의 나날들을 도시 사교계의 위선이 아니라 이런 시골의 고독함에서 보냈던 것, 좋은 책을 읽었던 것, 자연과 가까이 지냈던 것이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했던지 회고한다. 평생 세상에 시달린 천재가 어떤 상처를 받았고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었나하는 회한의 회고록이라고나 할까, 지루하면서도 재밌다. (특히 게시판에서 폭풍 토론할 때 뒤적여보면 마음에 고요함이 좀 찾아든다 ㅎㅎ.)
이 집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네덜란드라면 이 집은 이랬을 것이다.
- 입장료는 당연히 유료. 그러나 직원들은 자원봉사자.
- 불어뿐만 아니라 영어,독어,스페인어,일본어로도 루소에 관한 자료를 갖춰놓는다. 그 자료들은 물론 유료다.
- 건물 한쪽에 아무리 작아도 '반드시' 기념품 가게가 있다.
루소의 저서, 관련자료, 엽서, 열쇠고리 등을 팔 것이다.
- 테라스에는 '장 자크 루소 카페'가 커피향을풍기며 손님들을 맞는다.
- 카페 메뉴에는 '장 자크 루소 케잌'이 있다.
(함께 살았던 부인 이름 '바랑'을 딴 메뉴도 있을 걸.)
- 샹베히 시내에서부터 전문 길라잡이와 함께 하는 '장 자크 루소 코스'프로그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