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에 처음 한문 인지 한자를 배웠다. 어느 단원에 이르러 선생님(하종인 선생님)은 인간사 새옹지마를 가르치며 삶을 살며 일희일비 하지 마라했다. 얼마전 중하교 동창 모임에서 이름이 중국이 인 친구가 옛날 얘기를 하면서 하 선생님이 나를 보면서 새옹지마를 얘기 했다며 기억을 물었다. 나는 중학교 이 후 대학에 들어 가기 까지 나의 금언으로 새옹지마로 삼았다.대학 들어가서 첫 충격은 한국적 민주주의가 박정희의 장기 집권의 수단임을 배웠고 광주의 민주 항쟁을 보며 새옹지마의 수동성에 나를 반성하며 삶의 금언을 他山之石으로 바꾸어 삶을 능동적으로 바꾸고자 노력 했다. 인생이 금언 하나의 변화로 바뀌지는 않았다. 40이 넘어서 나는 다시 금언을 바꿨다. 曲突徙薪 無恩澤 은 어느 부자가 집을 짓는데 이웃 집들의 굴뚝이 눈에 거슬려 새집에는 굴뚝을 낮추어 보이지 않게 했다.이를 본 구들장 기술자가 부자 노인에게 굴뚝을 낮추면 바람 부는 날에 불이 거꾸로 불어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화구 주위의 불쏘시개를 치워 불 조심하라 했지만 노인은 이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어느날 불이 났다. 불은 이웃의 도움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아 노인은 불 꺼느라 고생한 이웃에 샹을 내리고 잔치를 베풀었다.하지만 집을 지을때 화재의 위험성을 미리 알린 구들장 장인에게는 어떠한 감사도 표하지 않았다는 얘기에서 유래된 고사 성어가 곡돌사신 무은택이다. 삶을 살며 새옹지마 일 수 도 있고 남의 산의 돌을보며 쓸모를 찿는 타산지석에서도 삶을 배울 수있다. 그렇지만 삶의 와중에 가르침을 준 이들을 기억 하는 것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 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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