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특강]전시장을 찾았더니 마침 현대회화특별전을 하고 있네 진짜루 있었던 전시는 아니구...
내가 몇 사람 불러서 여긋따 그림을 걸으라구 했어. 순순히 안내놓길래 강제로 업어온 그림들임. 윗 그림은 김지원작가의 작업인데. 어때? 어디에. 무엇에 먼저 시선이 갔어? 뭬얏?? 순식간에 화면을 훑었다구. 그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버무려서 그것들이 마치 입자가속기에서 충돌한 후 생기는 입자의 궤적처럼 머리속에서 어떤 궤적으로 읽히더라구??? 으흠... 되얏네. 그렇게 그림을 보는 거. 맞아. 그 다음에 차분히 벽인지 바닥인지를 나누는 선들과 그 면들에 채워진 가로의 굵은 터치들... 세로의 변화있는 날렵한 텃치들이 눈에 들어왔다구? 그러다 보니 화면 중앙쯤에 이상한 도형과 그 안에 들어있는 두 물체에 눈이 꽂혔는데... 들여다 보니 뭔 식물들이라구? 그 식물들 조차도 '그 식물'들을 그리기 위해서 그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구... 다른 데 흩뿌려져 있는 터치들 처럼 어떤 동작들로 읽힌다구? 그래, 자네. 현대회화를 감상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네 그랴. 차규선 작가가 캔버스에 까맣게 밑칠을 하고 두둑한 흰색을 큰 붓으로 시원하게 칠한 위에 여러가지 재료로(붓을 거꾸로 잡았을 수도 있고, 옆에 적당히 굴러다니는 도구로) 살짝 긁어내니 나무가지도 되고 이파리도 되고 관목도 되고... 좋네... 그러니까 요것은 형태는 물감을 긁어내기 위한 길 내지는 방편이 되고 있는 거고. 저 붓질과 긁어내는 행위들이 집중과 분산을 통해 시원서글한 쾌감을 주고 있구만 글치. 글케 보이지?
정태경 작가의 작품 두 점.
아! 한 가지 일러둘 것은... 나두 이 전시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작가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작업도 본 적이 없어. 나두 다 초면이라는 거. 그러니까... 지금 뒷짐을 지고 그림을 보는 자네들이나 나나 처음대하는 이것들에 대해 같은 입장에서 자기의 느낌을 말 할 수 있다는 거지. 옇든. 밑에 것은 붓질이 참 좋다. 참 다양한 붓질이 적당한 꾸밈새(그닝깐 그린다는 행위가 이런 거야. 물감이 붓질에 의해 올려진 상태 그 자체)로 시원하다. 머리속에 시원한 바람이 훅 불어오는 거 같아. 실제 잘 그린 풍경화보다 훨 풍경스러워. 위에 것은.... 연잎같은 거야...? 옇든. 뭐든 간에. 나도 붓질이라면 쫌 해봐서 아는데...(뭬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 기시감은...) 참 아기자기하게. 정말 재미나게. 참... 잘 그렸네...라고 밖에 할 말이 엄썽. 
잠깐 피카소로. 대개 그림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첫주자인 피카소. 그런데 실은 그 냥반으로부터 멀리도 흘러왔어. 떠돌이가 물었었지. 그림 자체만으로 좋은 게 판단이 되는 거냐구. 그러닝깐... 이 피카소그림은 졸라 비싸겠지만. 나는 이 그림은 그닥 가지고 싶지 않아. 그림 자체의 질로만 따지자면... 윗 그림들에 한참 못미쳐. (그래서 얼마나 좋은 지 몰라. 안 그럼 대천재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못하게? 그러면 안되잖아. 끝없이. 끝없는 혁신이 가능한 현실을 살고 있다는 거. 참 좋은 일이야.) 다시 현대로 돌아와서. 
마이클 래데커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구석구석 잘 그려서 참 좋은데. 한 가지 싫은 데가 있는데.(물론 나의 관점이지만 말야.) 하단에 블럭 틈사이를 뚫고 풀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거이 처참한 실패가 아닌가 싶어.(형태는 집요하게 작가를 강요한다) 저거이 없으면 모두가 구성될 자리에 구성의 요소로서 자리잡고 있는데 말야. 마를렌뒤마의 작업.
뒤늦은 댓글을 여기다 달게 되네. 문학은 사실주의 음악은 낭만주의 미술은 표현주의가 지배적이라고 한 말. 다른 분야에 대해 자신이 없었지만 미술에 대해서는 맞다는 생각이었어.
두 점 더 감상해 보자. 정말 강렬하군. 할 말 엄씀.

필립파스쿠아라는 작가. 이것도 뭔가 강렬하지? 그런데... 이런 그림은 실은 별로야. 기법(여기서는 뿌리기와 번지기. 튀기기 정도의)을 쓰는 그림들은 일단 이류. 그런데다 그 기법들이 우와~!할 정도의 형태묘사와 만나다니... 별로야... 무조건 닮게 그리면 나쁜 거냐믄. 그게 아니라서 지금 이 예제를 들고 있는데. 가령.
강강훈 작가의 작업 두 점인데...
이렇게 극사실로 접근을 하더라도 화면자체에 대한 평면성을 잃지 않는 경우(얼굴뿐만아니라 방독면의 숫자며 끈의 질감. 머리카락의 엉킴등이 입술이나 눈 또는 피부의 구성입자들과 전혀 차별없이 다뤄지고 있음)가 고전적리얼리즘과의 결정적 차이.즉 과거의 사물표현은 단촛점렌즈로 들여다본 세상이라면 이런 극사실주의 작품은 세밀한 다촛점 렌즈를 채택하고 있다는 차이. 그 다촛점렌즈는 마치 다리미 처럼 화면을 평평하게 펴내서 위에 예제로 정태경작가의 추상적 풍경들과 다르지 않은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현대적 관점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훌륭한 회화. 중국작가 김산의의 그림인데...
이렇게 구성으로 가는 경우도 훌륭한 회화. 논외로...중국의 미술이 현대세계의 미술시장에서 강세인데... 그것은 현대미술이 '그린다'라는 교의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를 해야 함. 중국의 미술이 미술사적인 일정한 헌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아. 입자가속기에서 입자들을 충돌시키면 충돌한 입자(미술)들이 깨지면서 그것을 구성하던 더 작은 요소(그림을 구성하는 최소요소)들이 선명하게 보이듯이 현대회화는 그런 작은 요소들이 독립적 경향을 띠고 재조립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어서 어디까지 그런 실험이 이어질 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런 과제를 안고 작업할 수 있다는 거. 멋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벤 샨이라는 미국의 화가가 있음. 포스트모던의 시대까지 살지 못했지만 회화성이라는 측면에서 선구적인 데다 그림의 사회적책무까지 생각했던 양반인데. 그림 몇 점 보면서 전시회장을 나가서 쏘주나 한 잔 걸치자구~(안주는 뭘로 할까낭...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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