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라는 이 책 서점의 외국소설 코너에 가면 늘 보게 되지. 제목이 너무 익숙해서 사보지 않게 되던 책이었는데 동네 참고서류를 주로 파는 서점에 갔다가 정말 살만한 책이 없어서 이 책을 집어들고 왔다. 읽다보니 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더군.
지은이는 하퍼 리(Harper Lee). 성이 이씨야. 그래서 혹시 한국계인가하고 작가정보를 찾아봤는데 그런 내용은 없더군. 이 작품이 하퍼 리의 유일한 작품이래. 1960년에 출간했는데 출간된지 2년만에 500만부가 팔렸고, 100주에 걸쳐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는군. 왜 두번째 작품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히트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아래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대. 맘에 들지 않아. 지가 진정한 작가라면 쓰고 싶은 게 많아야 진짜 작가 아냐? 먹고 살만하니 쓰기가 싫어졌겠지. 배경은 1930년대 세계경제공황을 겪던 시기.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처음엔 톰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과 같은 류의 책인 줄 알았어. 애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노는 모습들이 톰소여 같은 애들을 떠올리게 하더라고. 근데 백인과 흑인의 관계가 달라졌더군. 톰소여에서는 흑인들이 노예의 신분이었는데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독립적인 노동자의 신분이야. 경제공황의 시대, 같은 일자리를 놓고 하층의 백인과 흑인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종차별과 적대감은 더욱더 극심해졌던 것 같아. 그러한 시대적 상황이 일곱살에서 아홉살까지 성장해가는 한 여자 아이의 시각으로 묘사되고 있어.
변호사인 주인공의 아빠는 주위의 멸시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흑인을 변호하는 역할을 맡아. 집에서 아이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밖에서 하는 일이 달라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진 양심적인 백인이야.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흑인을 보호하고 변호를 해줘. 그렇지만 백인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은 흑인에게 유죄평결을 내리지.
강준만의 강남좌파 책이랑 이 책을 같이 읽었더니 두 책이 서로 오버랩되네. 변호사인 주인공의 아빠는 강남좌파고, 백인 배심원단은 유권자들... 강준만은 정말 맘에 안들더라.
암튼 다시 이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극심한 인종차별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이 흑인인 걸 생각하면 오랜 세월동안 미국도 참 많이 변했다. 아직도 차별은 많이 남아있지만 ...
책을 읽으며 번역상 좀 눈에 거슬리는 게 있더라. 내가 읽은 건 김욱동이 번역하고 문예출판사에서 출판한 건데 백인들의 말은 표준어로 번역하고 흑인들의 말을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했더라구. 이게 타당한 거냐? 원작에서 진짜 백인영어와 흑인영어가 달라서 이렇게 번역한 걸까? 아는 사람 있으면 좀 가르쳐주라.
왜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인가. 주인공의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애들에게 공기총을 선물하며 "xx새는 농작물에도 피해를 많이 입히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니까 쏘아도 되지만 앵무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새이므로 쏘아선 안돼."라고 말해. 흑인들은 백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 그러므로 흑인을 못살게 하거나 죽여서는 안되는 거지. 그런데 백인들은 백인의 죄가 명백한데도 흑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그를 죽게 만들어. 집단적인 지독한 편견과 적대감이 죄없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거지.
내 스스로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성과 상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편견과 적대감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고 상처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내가 강준만의 책을 읽으며 상처받은 것처럼. 강준만 나빠.
실은 이틀 전에 쓰다가 날려먹었어. 그 때는 막 읽어서 더 재밌게 썼었는데... 다시 쓰면 처음에 썼던 맛이 안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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