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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노근이가 들려주는 서양철학이야기 10
글쓴이 :  노근                   날짜 : 2011-06-14 (화) 17:28 조회 : 11797 추천 : 11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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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0회를 돌파. >_ <
자축 중 ㅋㅋㅋ
연재한 횟수에 걸맞게 우리들의 서양 철학사 여행도 그 백미라 할 수 있는 칸트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는 보았는데 막상 설명하려 하거나 떠올려보면 많이 헤메게 되는 철학자, 칸트.
원래 철학은 어려운거니까 겁먹지 말고. 이 정도 이해하면 나도 칸트 쫌 안다는 소리 할 수 있으니까 용기를 가지고. 찬찬히 따라오시라.

꼬꼬!



구성주의 인식론



칸트는 공리주의자들과 함께 근대 철학의 종결자 되시겠다.
그만큼 유명한 사상가이고, 훌륭한 윤리설을 남겨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사람이지.
우선 큰 틀에서 칸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팁 두 가지.
하나는 그가 합리주의 인식론과 경험주의 인식론을 종합하여 구성주의 인식론을 시도하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는 엄격한 절대주의자라는거. 절대주의자는 기억나지? 이 세상에 보편 타당한 절대적인 어떤 진리나 법칙이 존재한다고 보는 사람. 칸트는 그 법칙을 구체적 내용으로 일러주지는 않어. 대신에 상당히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정언명법 개념을 제시하지.

뭐 암튼 여기서 우선 얘기할 것은 구성주의 인식론이니까 그것만 먼저 얘기해볼께.

칸트는 의욕적으로 철학 전반에 대한 이론 정립을 시도했는데,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인식론을, [실천이성비판]과 [도덕형이상학의 정초]를 통해서는 윤리설을 다루고 있어. 그의 구성주의 인식론이 담긴 책은 당연히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이야.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어. 기존 근대 철학에서는 정신이냐 물질이냐의 지리한 이분법적 인식론(합리론과 경험론)만이 존재했었는데, 그 둘을 종합해서 완전한 인식을 시도한게 되니까.

얼토당토않은 시도였다면 그대로 사장되거나 관심 밖으로 갔을 터인데, 우리의 칸트 형님은 현대 사회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세련된 종합을 보여주셨던거야. 구성주의는 실제 오늘 날 더욱 심화-발전되어 피아제의 인지 구성주의나 비고츠키의 사회 구성주의 등으로 나아갔지. 정말 대단한 형이야.
(실제로 칸트가 더욱 심혈을 기울여 출간한 [실천이성비판]의 경우 전작인 [순수이성비판]이 극찬을 받았던 것과 비교할 때에 공리주의 등에게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고 하네)

그럼 구성주의 인식론이 무엇이냐? 근데 이걸 알아보려면 일단 합리론과 경험론에서 말하는 인식을 알아야 종합을 하던 짬뽕을 하던 할 거 아녀. 그래서 앞에도 얘기했지만 대략 썰을 풀고 넘어가도록 할게.

합리론이 쉽게 말해 이성을 통한 인식만이 진리를 알도록 해 준다는 입장이라면, 경험론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입장이야. 
대충 합리론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인식하는 이 세상에는 물질보다 정신적인 것이 더 우월하다. 감각적 경험으로 얻은 지식은 껍데기이며 불완전한 지식이지 진리가 아니다. 정신적 실체인 진리를 파악하는 방법은 이성을 통해서 가능하다" 요런 주장이고, 경험론은 "눈에도 안 보이는 정신 타령일랑 그만하고 손으로 만져보든 눈으로 보든 감각적 경험을 해서 인상을 받아야 뭔가를 인식할 수 있고 그걸 통해 진리를 알게 된다"는 주장이지.

대륙의 합리론, 영국의 경험론. 얘기 했지?
독일 출신의 칸트 역시 합리론을 신봉하던 이성론자였어. 그런데 흄의 저서를 읽고 독단에 깨게 되었대. 그 유명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하게 된 거지.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은 칸트는 쿨하게 둘을 합치는 인식론을 제의하고 '구성주의'라 이름붙여.

구성주의에서 인식의 과정은 대충 이래. 사람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어떤 지각을 하게 돼. 눈으로 보든 코로 냄새를 맡든 손으로 만지든 말이지. (경험론적 요소) 그것을 통해 얻은 지식은 내 이성의 선천적 형식인 '범주'라는 곳으로 들어가. 그 곳에서 이 감각적 지식들을 개념화하고 조직하지. (이성의 역할. 합리론적 요소) 뇌가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해. 단지 경험만으로 모든 걸 안다고 하면 상대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으니까 인간이 선험적으로 지닌 12범주와 직관의 형식 개념을 끌어들여서 이성적 요소를 보완하고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인식론을 주장하는거야.

뭔 소린가 싶지? 다음 내용을 어렵게 적은거라 생각하면 어떨까.
내가 얼음을 만졌어. 순간 차갑다는 생각이 1초도 안 되서 들지? 너무 차가우면 손을 떼게 될 것이고. 이 메카니즘을 현대 뇌과학에선 대충 이렇게 설명하잖아. 손이 얼음을 만짐(감각적 경험) -> 차가운 감각이 내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 -> 뇌에서 손을 뗄지 말지를 결정(이성이 이 감각적 지식을 조직화) -> 손을 떼라고 명령내림 ->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손을 뗌.

물론 당시 칸트가 설명한 용어와 개념들은 현대 과학의 진리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야. 하지만 경험론과 합리론의 인식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구성주의 인식론은 저 메카니즘을 완벽하게 꿰뚫어 본 통찰인거지. 그래서 [순수이성비판]이 나왔을 때 유럽이 들썩인거고.

오성의 12범주니 뭐니 이런 개념 우리가 달달 외워서 뭐 하겠어? 걍 저렇게 이해하면 되는거지. 아. 칸트가 구성주의 인식론으로 서양을 깜놀하게 했는데 대충 뇌과학적 논리와 비슷하구나. 우리 이렇게 쉽게 가자. 철학은 어렵게 공부하면 흥미가 떨어지니까.

굉장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기까지 한 칸트의 구성주의 인식론은 후학들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과학과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서도 당당히 살아남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 실제로 이제 획일적 인식과 사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형편이야.
맥락을 중시하고, 이성이 아니라 감성 혹은 비논리적인 것들에 주의가 집중되지. 경험과 이성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이루어낸 칸트의 업적이 이러한 사조에 큰 영향을 준거라 할 수 있어. 나는 그의 윤리설도 매우 높게 평가하는데, 혹자는 칸트의 윤리설에는 매우 박하면서도 인식론 만큼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나 뭐래나.



엄격한 형식주의 윤리설 - 의무론



인식론을 살펴봤으니 윤리설이 따라 나와야 제 맛이제. 칸트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중적 존재로 설정해. 육체는 경험과 연관이 되는 부분이고 정신은 이성과 연관이 되는 부분이야. 인간은 이 양자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거지.
이것과 관련해서 예지계와 현상계라는 두 가지 세계가 설정되는데, 이성의 영역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의 세계로 예지계라 명명되어지고, 육체의 세계는 현실세계인 형이하학적인 것들의 세계로 현상계라 명명되어져. 칸트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의 이중적 존재이기에 두 세계의 지배를 동시에 받는다고 본 거야.

자. 그런데 경험과 욕구는 인간을 움직이게끔 하는 힘을 가졌지만 시비선악의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 보편성을 가져다주지는 못해. 이성과 사유는 시비선악의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 보편성을 가져다주지만(칸트는 절대론자이므로 이성을 통해 절대적인 옳음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 인간을 행동하게끔 만들진 못하구. 여기서 칸트가 끌어오는게 의지의 개념이야.

그에 의하면 의지는 이성과 육체의 중간적인 것으로 행동의 동기로도 작용할 수 있고 보편적 판단의 근거로도 기능할 수 있다네. 그럼 인간은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지닌 존재, 즉 예지계와 현상계 양 쪽의 지배를 받는 존재잖아? 근데 이걸 이분법적으로 분리시키면 답이 없으니까, 인식론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의 종합을 통한 구성주의를 채택했듯이, 인간의 특징도 정신이나 육체 어느 한 쪽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뭐겠어?
그렇지! 바로 인간을 의지적 존재로 파악하자고 얘기해.

그래서 칸트 윤리설에서는 의지 개념과 자유-자율의 구분이 무척이나 중요해.

우선 의지의 경우, 칸트가 말하길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선의지 밖에 없대.
선의지가 뭘까? 걍 말 그대로 '선한 의지'야. -_-
윤리설은 선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문이잖아. 칸트 윤리설은 선의지의 실현을 이야기하는 학문이야.
그럼 선한 의지란 어떤 것이냐?

바로 스스로 설정한 격률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면 그것이 온전히 의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야.

골치가 지끈거릴 시기가 되었네... 내 책임 아님. ㅋㅋㅋ

완전한 선의지가 되려면, 의심의 여지 없이 선한 의지가 되려면, 칸트가 볼 때는 결과를 고려하거나 어떤 의도가 섞여서는 아니 된대.

오직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행한다면 그것이 가장 선한게 된다네.
나한테 어떤 손해가 와도 의무는 수행해야 하니까 눈물을 머금고 수행하면 그게 가장 윤리적으로 선하대.
내 생각이 아니라 칸트 주장이야. 그리고 철학 공부할 때는 그 사상가의 말을 100프로 맞다고 생각해줘야 이해도 빠르고 머리도 안 아퍼.

이런 주장을 하기에 칸트가 의무론적 윤리설이라 분류되는거야.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의지는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수행할 때에만 인정하겠다는거지. 한 마디로 인간들아. 선의지에 따라 살아라. 의무를 수행하며 살아라.

근데 의무의 내용을 말해주야 할 것 아닌가벼?
근데 그는 그 내용을 말해주지 않아... 자네들 알아서 자율적으로 정해라고 답해.
그저 그 내용을 찾을 수 있는 형식만을 알려주며 도덕적 행위자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설정해서 의무감에 그것을 수행하라고 얘기해.

그래서 그를 형식주의라 분류할 수 있는거야.
그리고 형식을 통과했다면 그것이 곧 인간에게 의무가되며 그 의무를 반드시 수행해라고 얘기했기에 '엄격한' 윤리학자가 되는거구.



정언명법1



어떤 형식을 제시했느냐. 알아보면 이 사람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을거야.
칸트는 정언명법에 비추어 행동할 것을 권해. 오직 정언명법에 비추어 형식이 통과되었을 때에만 행동해야 하며 그 행동은 틀림없이 선한 행동이 되는거지.

어떤 것이냐.
바로
네 의지의 격률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

이것에 비추어 의무인지 아닌지를 가려라고 칸트는 얘기해.

뭔 소리냐. 앞에서 얘기했듯이 인간은 선의지에 따른 행위를 할 때에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있어.
선의지란 선한의지야. 의무가 의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행동할때에 진정으로 선하게 된대. 그럼 내가 살면서 지킬 의무들을 설정해야겠지?
칸트는 의무들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정언명법1이 얘기하는 보편화 가능성 검사를 해 보라는 거야. 격률은 스스로 정하는 규칙 같은거야. 뭐 살면서 다들 룰이 하나씩 있잖아?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절대로 이혼을 하지 않겠다. 등등. 무엇이든 저 격률의 내용이 될 수 있어.
그런데 다 통과하는 것은 아니지. 보편화가 가능하냐를 검사해봐야 되거든. 내가 세우고자 하는 격률이 타인에게도 기꺼이 받아들여 지겠느냐를 생각해보라는 거야. 만약 통과한다면 그 격률은 살면서 내가 무조건 지켜야하는 의무가 되는거지. 통과한 그 격률은 오직 의무라는 이유 하나로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 되고.
남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격률이라면 그것은 내 삶의 무조건적 의무로써 기능하지는 않게 될꺼야. 예를 들어 '나는 효성이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어'라는 격률을 세웠는데 생각해보니 효성이는 나만 사랑하는 사람이라 보편화가 안 될 수 있잖아? 그럼 그건 당위의 압박을 불러오지 못하는 거지.

칸트는 왜 사람들 스스로 격률을 세우라 한 것일까. 지가 정해주던데, 다른 놈들은. 그지?

여기서 칸트의 위대함 - 자유와 자율 개념의 구분을 도입한 것.

한국사람들은 대충 넘어가게 돼. 자유와 자율의 차이를.
어원이 한국어에선 비슷하거등? 근데 자유(free)와 자율(autonomy)은 완전히 다른거야.

자유는 방해가 없는 상태. 물론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그 개념을 분화시켜 논의를 전개할 수야 있지. 근데 일반적으로 자유롭다하면 멜 깁슨이 "프리덤~"하고 외치듯 방해 없이 뭔가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소리야.

근데 자율은 그 뜻이 아니잖아? 규율을 스스로 설정하는 것. 칸트는 자율적인 도덕적 입법자로 살아갈 것을 말하는거야. 지가 천재라고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내 말대로 살아라고 강요하는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도덕법칙을 설정할 수 있는 입법자로서 살아가라는 말이지.

지금까지의 철학자들과는 완전 달라. 우리에게 스스로 의무를 설정하고 지키며 살라는거야. 참으로 고차원적인 경지의 윤리설이야. 

살면서 스스로 몇 가지 격률을 세워라. 그 격률이 보편화 가능하다면 그것은 나에게 자율적 도덕적 입법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가 된다. 의무는 당위의 압박을 수반하는 것인데, 어떤 결과도 고려치 아니하고 그것이 내 의무라는 이유 하나에서 수행한다면 그것은 아주 선한 행위가 된다. 선의지에 따른 행위가 된다. 선의지에서 의지는 예지계와 현상계 양 쪽의 지배를 받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의지가 육체와 이성의 중간적인 것이니까.

이렇게 정리될 수 있는 칸트의 윤리설은 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그의 대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어. "그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내 마음 속에 감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 것이 있으니 바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이다."

캬~ 죽인다. 그지? 어둠 속에 총총히 반짝이는 별빛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욕망과 현실적 제약에 괴로워하는 인간을 윤리적인 길로 인도하는 도덕법칙이었던거야...!

윤동주 시인께서 죽는날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랬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셨다는 '서시'가 오버랩되는 구절이야...



목적의 왕국



정언명법2는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어.
너 자신에게 있어서나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수단으로서 삼지 말라.

이렇게 스스로 격률을 자율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준수할 수 있는 도덕적 입법자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수준 높고 교양 있는 인격체가 되는거야. 그런 인간은 언제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접받으며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지. 저런 고결한 윤리적 행위자가 아니라도 존엄하게 대접받아야 하는게 사람인데, 칸트적 인간의 경우엔 그 수준이 몇 단계는 더 우위에 놓인 듯 하다. 그치?

그리고 그는 목적으로 대접받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목적의 왕국이라 명명하고 그러한 목적의 왕국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 세계 평화주의가 도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전개해.

현대 시민사회에 시사점을 주는 점이 아닐까 싶은게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형들이 많을꺼란 말이지. 나한테 손해가 되는데 의무감에 어떻게 윤리적 행위를 실천해! 존엄한 인간들이 모였다곤 하지만 지구 전체에 평화적 체제가 어떻게 구축돼!

그렇게 비관적 생각만 견지하다가 언제 행복하고 언제 웃을 수 있을까. 칸트의 이상적인 의무의 윤리학은 실제로 그 실천이 너무나 어려운 경지라는 비판을 받지만 칸트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어. 가능하다고 본거야. 그 스스로가 엄격하게 본인의 윤리설을 본인의 삶에 잣대로써 들이댔거든. 칸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시계가 고장난 이웃 노인이 외출을 했다는 일화는 들어봤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안하는 경지보다, 이상적인 꿈을 꾸면서 우공이산의 노력을 경주하는 자세가 훨씬 더 건설적이라 생각하는데, 어때?

우리 현대인들도 명심해야 할 지점이야. 투표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 착하게 살면 언제나 그 놈만 손해봐! 착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보는게 정상적인 상황인가? 투표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인 민주주의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각자의 몫이야. 칸트가 인간들 스스로 격률을 설정해서 보편화검사만을 해 보라고 권했듯이, 나도 철학이야기를 통해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볼 것을 그대들에게 권하는 것이니까.



신앙을 위해 예지계의 인식을 단념하다.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 하지만 칸트의 위대함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께.

인식론에서 예지계와 현상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니까 정신은 예지계에 속하고 육체는 현상계에 속한다고 한 거 기억나지?

칸트의 구성주의 인식론은 오캄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데, 형이하학적인 현상계의 것들은 감각적 지각이 가능한 영역이니까 인식이 가능해. 그런데 예지계의 것들은 구체적 실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을 단념한다고 선언해.

쉬운 말로 사랑, 자유, 윤리, 우정, 신 등의 것들은 구성주의 인식론으로써는 도저히 인식할 도리가 없는 개념들이야.

이러한 입장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의 인식을 단념한다는 것이고, 현대 과학적 사고가 취하는 인식과 동일한 방법이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잖아?

하지만 여기에서 저질스러운 작태와 고급스러운 격식이 나뉘는 지점이 발생해.

과학 지상주의에 매몰된 인간들은 경험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한의학의 기나 혈 같은 것들은 서양의학의 관점에서는 개소리나 마찬가지란 것이지.

동양의 한국에서 살아온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좀 거북스러운 견해이지만 서양인들은 (노근이가 주장하는 이해를 돕는 수준의 이분법으로 들이대볼때) 근대를 거치며 과학적 사고에 상당히 친숙해지거등? 해서 동양은 정신, 자연보호 - 서양은 과학, 환경파괴로 나뉘어진 것이고.

칸트도 서양사람. 독일인이야.

그런데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해.
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예지계의 인식을 단념한 것은 그의 독실한 신앙이었던 '하나님'의 권위와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정말로 탁월한 통찰이야. 어디에도 과학적 접근으로 신앙의 자리를 마련할 방도 같은 것은 없어. 단지 자신이 신앙을 영위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고, 누구도 그의 신앙을 문제삼거나 비판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비과학적 신앙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안식을 얻거나, 신앙이 없는 이들보다 윤리적으로 훌륭한 삶의 경지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물론 사이비라 분류되는 종교들은 제외.

칸트는 신앙에 대한 그러한 논의가 무의미함을 알고, 합리론과 경험론의 비판적 종합을 구성주의 인식론으로 얘기하면서 근대 과학의 눈부신 성장에 발맞춰 나갔어. 예지계의 인식을 과감하게 단념한거야.
물론 꼼수는 좀 부렸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단념했던 예지계에 대한 인식을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증명해보여.
대충 예기하면 이런 식이야. 인간이 스스로 격률을 설정하는 도덕적 입법자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잖아. 그 격률이 정언명법의 보편화 정식을 통과하면 그것은 의무가 되고. 그런데 의무란 당위잖아. 당위는 해야하는 것이거든. 여기에서 칸트는 '당위에서 자유를' 도출해내. 해야 한다는 것은 가능을 함축하잖아.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떼 부릴 순 없으니까 가능한 것이 윤리학적으로 표현된다고 본 것이지. 정언명법의 당위에서 예지계에 속하는 '자유' 개념이 분명하게 증명된다고 칸트는 여긴거야.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천이성의 사실'로써 정언명법이 주어져 있다고 예기해. 선험적이라는거고 그래서 보편적이라는거야. 근데 이것은 미안하지만 순전히 지 생각의 유희에 불과해. 직관적으로 자신의 도덕감에 근거해서 전개한 논지이기에 파급력이 약하지.

아마 그의 인간성에 기인한 주장이었던 듯 한데, 칸트가 앞에서 [순수이성비판]보다 [실천이성비판]을 더 중요한 저작이라 생각했다는 얘기 했지? 칸트는 직관적으로 양심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의무론적 윤리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착한 바보'였던 것 같아. 순수이성(인식론)에서 불가했던 예지계에 대한 인식이, 실천이성(윤리학)의 영역에서 가능해지니까 더 회심의 역작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과학적 인식론인 구성주의에 더 많은 찬사를 보내준거지.

아무튼 그런 꼼수에도 불구하고 예지계의 인식을 과감하게 단념한 칸트의 입장은 완벽하게 옳다고 여겨져. 정신적인 영역과 물질적인 영역은 엄연히 다르니까. 개인적으로는 물질적인 추구 속에 정신적인 절대적 가치가 관통되어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오캄이 그랬고 칸트가 그랬듯이, 그리고 후에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형이상학의 영역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읇조렸듯이. 서양에서도 저러한 중용적 태도를 견지한 철학자가 제법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역시 진리의 세계는 어디서나 다 통할 수 있음이 실감이 나.

칸트는 윤리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영혼의 불멸과 신의 존재를 '요청'해. 그의 엄격한 의무론적 윤리설은 실제 실천을 담보하기가 무척 어려운 고차원적인 것이야. 매 순간 어느 인간이 내 격률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는지 검사해보고 행위하겠어? 그러니 그도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으려면 양심상 그것이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혼의 불멸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야. 현 생애에서 달성하기란 무척 어렵다는 것 쿨하게 인정하고, 다음 세상에 태어난다면 전생에 노력했던 그것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지.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종교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그리고 의무가 의무이기때문에 수행하는 칸트주의자들을 위해 신의 존재도 요청하는데, 솔직히 결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의무감에만 행위하게 되면 현실적 실익을 챙기기가 너무 힘들어지잖아.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거야. 신이 결과만 고려하는 악한 행위자들을 벌하고 의무감에 대한 존중으로 말미암아 행위하는 칸트주의자들에게는 복을 주신다는 종교인의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신 존재의 요청과 당위에서 자유 개념을 증명하고자 시도했던 모습으로 볼 때에 정신과 물질의 영역을 탁월하게 분리시켰다는 점에서 칸트는 위대한 철학자임에 틀림이 없어. 신 개념이 포함된 예지계에 대한 인식을 구성주의 인식론에서는 깨끗이 단념하니까. 하지만 이것은 무척이나 깊은 통찰에 기인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
실천이성(윤리학)의 영역에서는 인식론에서 불가했던 신의 존재를 구복관념에 기대어 요청해서 자신의 신앙과 위배되지 않는 영리함을 보여주었고, 당위에서 자유 개념을 도출해내면서 은근슬쩍 예지계에 속하는 개념들이 증명가능함을 끼워넣음으로써 신에 대한 결례도 피해가게 되니까 말이야.

실제 근대의 이분법적 자연관이 서양만 망쳐놓은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식민지의 확대를 통해 동양에도 그 마수를 뻗치게 되었고 전 세계가 과학 지상주의와 황금 만능주의에 매몰되어 간 것을 볼때에, 칸트 같은 사고와 인식, 윤리설을 주장한 서양 철학자가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야. 그의 위대함이 그가 놓인 시대에 배반적이라는데에서 더 값어치있어 진다는 것이 슬프기까지 해. 지리적-시대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서양의 철학사에 조금만 더 유연한 흐름이 존재했다면, 혹은 칸트와 같은 통찰을 몇 명만 더 보여줬다면 인류의 역사가 어쩌면 지금과 많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어쨌든 그는 인식론에서도, 윤리설에서도, 정신과 물질의 영역을 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대단히 유의미한 시사점을 주는 철학자로 오래도록 기억될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오늘 칸트에 관한 얘기는 이 쯤에서 마무리를 짓고, 다음 시간에는 공리주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 그 때까지 건강들 하시고.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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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노근                   날짜 : 2011-06-14 (화) 17:28 조회 : 11797 추천 : 11 비추천 : 0

 
 
[1/4]   노근 2011-06-14 (화) 17:31
이게 글이 완결되게 보여? 내 컴에서는 중간에 짤리는 거로 나오고 스마트폰에서는 다 올라간거로 나오는데 무슨 현상인지 모르것네 ㅡ ㅡ;;;
 
 
[2/4]   야카모즈 2011-06-14 (화) 19:28
뭣가 짤린 것처럼 보이는데, 확인하여 주면 좋겠다.
그리로 '격률'에 대하여 부연 설명하여 주면 고맙겠다.
유시민 대표의 '국가란 무엇인가'의 말미에도 칸트의 '윤리론'이 나오는데, 오늘
여기서 좀 더 배우게 되어 기분이 짱이다. 다시 한번 고맙다.
 
 
[3/4]   노근 2011-06-14 (화) 20:15
야카모즈/ 집에가서 확인할게 나도 고마워
 
 
[4/4]   노근 2011-06-14 (화) 22:01
헉헉, 건의사항 갔더니 12억기자 질문에 답글이 있어 겨우 해결했네. 이제 다 나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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