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영화가 히트하면 사회지도층은 낭만을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낭만을 회복하려면 소설이 많이 읽혀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소설보다 천배의 제작비용이 드는 영화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관심을 두는 세태이다.
영화는 한사람의 낭만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타산적 동의가 있는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만큼 낭만의 다양성은 없어지고 특정목적의 캠페인이 득세하게 된다.
참고로 다음은 여배우의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 <꽃잎처럼 떨어지다>의 도입부
1. 화면 속 여인
오늘밤 창문에 때리는 빗줄기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있다.
시간도 꽤 늦었다. 잠들락 할 만큼 피곤하기도 하지만 막상 쓰러져 자기엔 아까운 시간이다.
주말의 밤은 한정 없는 자유의 밤이다. 원하고 즐기는 것을 중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아마추어 시인 김인호(金仁浩)는 컴퓨터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자작시를 영상과 음악을 곁들여 블로그에 올리는 일은 근래 들어 그의 가장 재미있는 취미생활이었다.
“젠장, 이젠 저작권법 때문에 음악도 맘대로 못 고르겠군…”
전에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쉽게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찾아 링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원하는 음악을 막상 찾아보면 이미 없어져버린 것이 많았다.
“썼던 음악을 다시 쓰자.”
먼저 썼던 이름 모를 피아노 연주곡은 어느 글과 화면에도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음질은 썩 좋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저작권과는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인호는 음악의 제목을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예술작품의 제목은 식별을 위한 것 말고는 부질없는 것이다. 특히 음악 더구나 기악곡은 그렇다. ‘당신의 소중한 사랑’이니 하는 제목을 붙인다고 해서 감상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 듣고 느끼면 된다.
인호는 특히 음악방송 홈페이지에서 시그널 음악의 제목을 알려달라고 보채는 자들이 한심했다. 방송을 시작할 때 그 자체로 느끼면 그만이지 제목을 알아서 뭘 하나. 그 음반을 구해본다해도 막상 전곡을 들어보면 별 대단한 감흥은 받지 못한다.
평소에 좋은 음악을 좋아하면 될 것이지 단지 기회를 타서 알려진 것에 그리들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속물근성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어떤 일로 갑자기 알려지면 많은 사람들이 열렬한 관심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그렇게 정해졌고… 배경화면은 무엇으로 할까.
인호는 아는 사람의 홈페이지에서 갈무리하여 사용했던 한 영상을 다시 쓰기로 했다.
비가 쏟아 내리는 날에 두 남녀가 우산 아래 있다. 남자는 한쪽어깨가 흠뻑 젖어있다. 남자는 비 젖는 것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우산은 남자가 들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여자가 들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남자는 풀이 죽어있는 듯했다. 뭔가를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비 맞는 남자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여자의 눈은 선해 보인다. 입술을 앞으로 모아 벌린 여자는 곧바로 무슨 말을 할 것 같다. 그녀의 입에서는 빗속의 냉기를 덥히는 더운 김이 나오는 것 같다.
‘그렇게 낙심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여자는 말하는 것 같았다.
저 여자를 만나고 싶다. 저 사진에 찍힌 여자의 이름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사진에서 느껴지는 저런 인간미를 가진 여자를 만나고 싶다.
사진 속의 이 여자처럼 남자를 염려(念慮)해주고 격려(激勵)해주려는 그런 여자… 상상과 기대는 쉽게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여자를 만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호는 잘 알고 있었다.
‘죄다 남자한테 무한책임을 씌우고 도피하려는 여자들뿐이지 뭐…’
정말 사진 속의 이 여자 같은 여자가 동화처럼 현실에 나타난다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으리라.
따져보면 이 영상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인 듯했다. 아니 확실했다. 그러나 인호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영상을 가져올 때 씌어있던 제목도 봤지만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동화 속 신비의 여인으로 남게 하자.
사진 속의 배우가 현실사회의 누구인지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되도록 모르는 채로 신비감을 간직하며 이 영상이 주는 느낌을 음미하고 싶다.
인호는 이 사진을 또다시, 블로그에 올리는 자작시의 배경화면으로 사용했다. 특히 사랑의 이야기를 시로 쓸 때 이 배경은 웬만하면 어울리는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위로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 있다. 배우인 만큼 어느 정도는 객관적 미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자의 혼을 빼는 강한 매력은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전형적인 현대 한국여인으로 보였다. 흔히들 말하는 최모니 황모니 하는 여자 톱스타의 개성 있는 미모와는 달라 보였다. 비오는 장면에서 화장이 지워져서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은 물기와 기름기가 빠진 부석한 느낌을 주었다.
여자는 광택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만큼 남에게 빛나지는 않고 남에게로부터 흡수당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이 여자의 사진으로 나는 덕을 보니 이 여자를 위해 뭘 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인호는 영화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몇 달에 한번 호기심 가는 화제작 한두 편 보는 것 말고는 극장가는 일이 없었다. 비디오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작은 화면에 집중하기가 지루했다. 화면보다는 글을 좋아했다. 예술은 작자의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하는데, 창작하는 사람은 매우 힘들지만 감상하는 사람은 편한 영화보다는, 창작하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노력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소설이 더 좋은 전달수단으로 생각되었다.
‘그래도 이 여자의 영화 한두 편은 봐줘야 할 텐데…’
생각한 그는 지갑을 열어보았다. 한숨이 나왔다.
“휴, 그래봐야 나보다는 나은 사람일 테니…”
인호는 잠자리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영화야 다 그게 그거지. 뭐.”
인호는 영화는 자기가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다.
끝끝내 그 사진은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상상 속 이미지로 간직하려 했다.
밤 시간을 인터넷서핑으로 보낸 인호는 휴일아침 늦잠을 깨 다시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뉴스에는 매일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띄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쇼킹한 뉴스가 있었다.
여배우 박혜영(朴惠英)이 죽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 영화팬이 아닌 인호가 평소 암기하던 이름은 아니지만 아무튼 한창 잘나가는 젊은 여성의 죽음은 그에게도 충격으로 와 닿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특집코너에는 그녀의 유작영화의 장면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아니! 이건…”
영상사진들을 본 인호는 한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너무나 눈에 익은 사진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에서의 남녀!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배우 박혜영이란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동시에 그녀가 오늘 죽었다는 걸 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사진 속 그녀는 신비에 머물 수 없었다. 그녀는 알려진 여배우이다. 그녀는 더 이상 미지의 환상적 여인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가 생전에 어떤 부나 명성을 가졌다 해도 이제 이승에서는, 매일같이 밥값 걱정하고 매달 전화세, 가스비, 관리비를 걱정하는 인호의 신세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이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고 그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인호의 형편이 아무리 보잘것없다 해도, 세상에서 공수거(空手去)한 그녀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살다간 것에 의미를 더해주자.”
인터넷에서 박혜영을 검색하여 자료를 찾았다. 그녀의 프로필과 뒷얘기들을 있는 대로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비디오를 빌려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