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혁신엔 '진짜'와 '가짜'가 있다
요즘 '혁신'이라는 말이 화두다.
집권당이든 야당이든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혁신한답시고 푸닥거리를 하는 걸 보니 '혁신'이 좋은 것이긴 한가 보다.
그런데 혁신하겠다는 사람들의 하는 양을 보면 헛다리를 짚고 있다.
심지어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제대로 혁신을 해낸 집단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언제까지나 남의 넓적다리 긁는 격이라는 것이다.
세상엔 두 가지의 '혁신'이 있다. '진짜 혁신'과 '가짜 혁신'
'진짜 혁신'은 한 번이면 된다.
이것은 사후보증수리 같은 것도 없다.
반면에 선거 때만 되면 하겠다는 '혁신'은 '가짜 혁신'이다.
'진짜 혁신'을 하지 못하는 한 무수히 많은 혁신을 한들 모두 '가짜 혁신'이다.
2. 그렇다면 '진짜 혁신'은 진짜 무엇인가?
"나는 너희에게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귀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했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주겠다." (도마복음 17절)
예수의 말씀이다. 이게 '혁신'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예수는 가장 뛰어난 혁신자였다.
그러나 그 역시 제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혁신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
그가 성공했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또 예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도마만이 그것을 이해했다.
그런데 도대체 '혁신'이 무엇이길래 예수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준다고 했을까?
'진짜 혁신'을 알기 위해 예수의 말씀을 한마디 더 인용하자.
"어찌하여 잔의 바깥을 씻는가?" (도마복음 89절)
그렇다. 사람들은 '안(안철수 말고)'을 모르고 있다.
(아, 사람들은 안철수도 모르고 있다)
바깥은 안의 투영이다.
안이 혁신되면 바깥은 자동인 것이다.
왜 그런가?
말해지거나 만들어진 것은 모두 생각에서 나왔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은 생각을 이용해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의 틀(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방정식 같은 것이다.
이것을 가치판단 혹은 판단 기준이라 불러도 좋다.
이 방정식은 학습과 경험, 가치관, 취향, 트라우마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만나 그것을 해결해야 할 때 이 방정식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방정식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방정식은 생존과 행복을 위한 지난한 여정으로 단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방정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3.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삶의 방정식을 바꾸는 것이 혁신이다.
예수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주겠다고 한 것은
이 방정식을 버렸을 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방정식을 버리는 것이 '혁신'이다.
이것을 버리지 않고는 '혁신'이 '혁신'이 아니다.
이렇게 '혁신'으로 보이지만 '혁신'이 아닌 것이 '가짜 혁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방정식을 버릴 수 있고 바꿀 수 있는가?
그것을 예수께서 알려주었다.
"어찌하여 잔의 바깥을 씻는가?"라고.
그렇다 '안(안철수 말고)'을 씻으면 된다.
'안'을 씻었으면 이제 혁신은 식은 죽 먹기다.
'안'을 씻은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모두 혁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일이든 그는 기존의 자신이 만든 방정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혁신의 대상은 언제나 자신이며
혁신의 주체 또한 자신이다.
혁신은 자신의 '안'을 닦는 것이며
바깥은 안의 결과이다.
이렇게 자신을 '혁신'한 사람이
깨어있는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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