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단스크의 베스테르플라테
유로 2012에서 독일 축구단이 캠프를 차린 곳은 폴란드의 그단스크(Gdansk)라는 곳이다. 오늘(22일) 독일-그리스전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그단스크를 놓고 네덜란드와 독일이 경쟁 아닌 경쟁을 했던 모양이다. 숙소, 시내 상황, 공항편 등이 훈련과 이동에 최적이라고 판단한 오란여팀이 지난해에 훈련캠프 장소를 물색하면서 일찌감치 그단스크를 찍었는데,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단스크는 결국 독일의 훈련캠프지로 정해졌다. 오란여팀의 관계자에 따르면, 그단스크의 시당국이 독일을 선호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단스크 시에서 독일팀을 선택한 것은 의외라면 의외다. 이 도시가 역사적으로 아주 민감한 곳이기 때문. 독일이 이 도시를 고른 것도
마찬가지이고.
그단스크는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도시
1939년 9월 1일 나찌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는데,이때 나찌 군대가 선전포고없이 발포한 곳이 그단스크에 있던 폴란드 군대 수송창이었다. 당시 자유시였던
단치히(그단스크의 옛이름)에는 독일계, 폴란드계가 섞여 살았는데(독일계가 90퍼센트 가량이었다고) 히틀러는 단치히 반환을 폴란드 침공의 구실로 삼았다. 단치히 자유시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가장 먼저 합병되었고, 전후 폴란드
땅 그단스크가 됐다.
그단스크(폴란드어: Gdańsk, 카슈브어: Gduńsk, 독일어: Danzig 단치히, 라틴어:Gedanum)는 발트 해에 면한 포모르스키에 주의 항구 도시이다. 1919년까지는 독일 제국의 서프로이센에 속해 있다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단치히 자유시(독일어: Freie Stadt Danzig, 폴란드어: Wolne Miasto Gdańsk)가 되었다. 1939년 다시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폴란드 령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레흐 바웬사는 이 곳에서 자유노조 운동을 일으켰다. 그디니아, 소포트와 합체(合體)하여 활기를 띠고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 그단스크는 귄터 그라스의 고향이며 <양철북>의 배경이다. 귄터 그라스는 단치히 자유시의 독일인으로, 나찌 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
베스테르플라테(폴란드어: Westerplatte)는 폴란드 그단스크에 위치한 반도이다. 비스와 강의 삼각주에 위치해있으며 발트 해와 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으로 1939년 9월 1일에 독일의 홀슈타인호가 발포를 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 발트 해 연안에는 전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기념비에는 ‘더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폴란드어: Nigdy Więcej Wojny)’라는 글귀가 흰색으로 씌어져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 제2차 세계대전 발발지, 베스테르플라테
물론 독일 축구팀이 특별히 그단스크를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서로 역사의 상처가 그만큼 아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캠프장소로 그단스크를 골랐고, 그단스크도
독일을 선택했으니.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을 보면서 감회에
젖는 모양이다.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을 거라고들 한다. 특히 폴란드 정치에서 꽤 민감한 사항이었다.
카친스키 형제와 도날드 터스크
도날드 터스크(Donald Tusk) : 폴란드 총리(2007년부터, 현재 연임). 중도우파노선의 시민정강당 소속
정치인. 고향 그단스크에서 정치활동을 시작. 단치히 자유시에서 폴란드
사람인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 나찌 군대인 베어마흐트에 강제징집되었고, 수개월 뒤 탈영하여 폴란드 군대에 입대했다. 많은 폴란드인들이 그렇듯, 독일 나찌에 억압받은 가족사를 지녔다.
전임 총리인 카친스키(비행기 사고사로
사망한 전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의 쌍동이 형제)는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를 언급하며 양국간에 긴장이 지속되었던
반면, 터스크는 유럽통합을 강력 지지하는 정치인이다.
폴란드에서 반독일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바르샤바 여기저기에는 ‘잊지 말라!
나찌즘,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독일인들이 저지른’ 이런 문구들이 보인다고 한다. 독일이 결승전에 진출한다면 바르샤바에서 이런 문구에 맞닥뜨리게 되겠지. 오늘
그리스전이 열리는 그단스크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 축구팀도 독일의 역사를 비껴갈 순 없다.
우려도 있는 반면, 현재 그단스크는 독일 나찌의 역사보다는 독일 축구팬들을 맞는 데에 더 신경쓰고 있으며,
개방적 분위기라고 한다. 독일 축구팬 5만명이 오늘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바르샤바에서 러시아 축구팬들과의 충돌이 있었던 것과 달리, 문제없을 것이라고. 독일 축구팀의 포돌스키(폴란드 출신)가 생일이었을 때 생일축하도 해주고, 요하임
뢰브 코치도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라고.
각국 축구단 아우슈비츠 방문
독일
축구단은 유로 2012 개막 직전에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 언론은 이 방문에 의미를 두고 보도하던데...(일본과 은근 비교하면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축구팀은 독일만이 아니고,
이탈리아, 네덜란드, 잉글랜드팀도 다녀갔다.
물론, 독일팀이라 의미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두고 현지에서는 마뜩찮은 반응도 있었다.
다른 나라는 선수단 전원이 방문했는데,
독일은 포돌스키와 클로제(둘 다 폴란드 출신)를 선수대표로, 그외 코치 등 일부만 다녀갔기 때문. 선수단
전원이 가지 않았다고 독일 유대인 단체에서 뭐라 그러고, 이때문에 스포츠와 정치와 역사에 대한 논쟁이
있고 그랬다. (근데 선수단 전원이 간 나라들은 훈련지가 아우슈비츠에서 60km,
70km...이랬는데, 독일팀이 있던 곳은 570km 거리였음. 바로 그당스크...)
네덜란드팀 다녀온 기사 보면, 감독이 직접 “그냥 가고 싶었다. 교육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없을 기회이므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라든가, 주장 판 봄멜도 “다녀와서 선수들과 방문에 대해 얘기했는데, 아주 감정적이었고 인상적이었다.” 같은 멘트를 날리고 그랬거든. 옷도 좀 점잖게 입고 사진도 많이 나와서 어떤 ‘효과’를 잘 살렸다 싶던데,,,,,독일은 멘트부터
좀 구설에 오르고 그랬다. (이탈리아 선수단에서는 눈물도 나왔고, 잉글랜드는 아예 교육용으로 작정하고 촬영해갔다고 함.)
독일 선수단은 20일 그단스크의 베스테르플라테에 헌화했고, 선수단 대변인은 “우리는(독일 축구대표단) 대사들이다. 독일의 과거 잘못을 우리는 바로잡아야 한다. “ 고 언급했다.
▲ 베스테르플라테에 있는 기념물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6-22 21:53:22 문예·과학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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