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서두는 성악과 교수 영선(이병준.실제로도 성악과 교수겸 탤런트)과 그의 학생 인정(차예련)이 엄연히 사제지간 관계 그이상이하도 아닌 성격으로 한적한 드라이브를 나오며 시작된다. 8기통벤츠,버터임금 같은 얼굴,기름진 목소리. 누가봐도 이영화의 베스트 캐스팅은 이병준이다. 이어 인적이 드문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기승전결의 '기' 가 발동되는데 교수영선은 인정을 때리지만 않았지 사실상 준강간에 해당할 성추행을 범하고 인정은 벤츠를 도망쳐 나온다.
강제로 벗겨진 팬티까지 벤츠에 남겨진채 얇은 치맛바람으로 뛰쳐나온 인정은 지나가는 순박해보이는 아저씨 봉연(이문식)의 오토바이를 빌려 서울행을 부탁하지만, 그는 자신의 패거리가있는 강어귀로 데려가 서울행을 약속하며 잠시동안의 삼겹살 섭취를 권한다. 이미 그전에 빠질수없는 내용은 지나갔다. 성추행이 벌어지기전 마을 초입에서 과속으로 단속된 교수영선은 지구대 순경 한석규에게 적발되어 부릴수있는 온갖허세와 교만은 다부리며 그를 농락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도망친 여제자로인해 홀로 차에남겨진 교수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보여지는 양아치일꺼라 추정될 이상한 발걸음을 감지하고 기절한척한다. 호기심어린 그들은 교수를 가만 내버려 두지않고 문을 두드리고 대화를 시도하며 접촉하려한다. 이어 도망쳤던 인정을 싣고있는 이문식의 오토바이가 그들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양아치들은 이문식의 말그대로의 꼬봉들이었으며 민망하게 지나간 찰나의 과거를 가지고있는 교수와 인정은 서로를 모른채한다. 삼겹살을 앞에둔채.
이 영화를 본 친구들이 많을테고, 어쩌면 평을읽고 영화를 찾아볼 봉팔친구도 혹시나 있을수 있기때문에 과도하게 스포일러를 작성하는것은 매너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줄거리 요약은 이정도로 하고, 영화의 출연진중 하나인 한석규를 잠시 거론해보고싶다.
한석규는 90년대중반부터 밀레니엄 문턱까지의 기간동안 그야말로 충무로의 황제로 군림했다하여도 과언이 아닌 배우다. 한석규는<아들과 딸>로 브라운관을 보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얼굴명함을 조금이나마 알린뒤, 히트작<서울의 달>로 방점을 찍고 과감히 필드를 옮겼다. 이윽고<닥터봉><은행나무 침대><초록물고기><넘버3><접속><8월의 크리스마스><쉬리>로 이어진 7연타석 홈런은 그를 흥행배우 정도가 아닌 '원톱체제' 시장구도를 이끌어내며 최고의 톱스타로 행복에겨운 눈부신기간을 보냈다. 서민들이 길거리에 내려않던 IMF시절, 여론의 비난을 우려해 자진해서 개런티를 삭감하던 타 주연급배우들과는 틀리 한석규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내려않을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한국 영화사상 최초 비공식 10억개런티를 지불받은 이도 한석규였으며 삼성을 비롯한 모든 고가CF의 주인공역시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급히먹으면 체한다 했던가. 마치 대한민국이 트름한번 없는 압축성장을 달려오다 IMF 라는 급성장염에 걸렸듯이, 한석규역시 <텔미썸씽> 이라는 구제금융을 맞으며 순식간에 폭락하기 시작했다.
미국배우 존 트라볼타는 과거 70년대 미전역에 디스코 열풍이 불었을때 <그리스><토요일밤의 열기> 단 두작품을 통해 신도 부럽지않을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었다. 장르는 틀리지만 제2의 엘비스 프레슬리로까지 추앙받으며 모든젊은이들의 우상처럼 떠받들여졌다. 그는 사실 배우라기 보다 춤꾼이었다. 잘 예상되다시피 이를 기점으로 영화,드라마 각종 미디어에서 디스코는 셀수없이 쏟아져나왔고 그 열기의 식어버림역시 하룻밤의 토요일처럼 순식간이었다. 춤이 들어가지않은 정극연기를 감당할수없었던 존 트라볼타는 사실상 B급배우로 전락한채 연명하다, 94년 다수의 주인공이 출연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펄프픽션>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이를 기점으로 '댄서'에서 '배우'로 서서히 공인받았다.
한석규를 직접적으로 존 트라볼타와 비견할순없겠지만 순식간에 물거품이된 각자의 영향력을 기초로할때<구타유발자들>을 선택한 배우정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수없다. 그는 <텔미썸싱>을 시작으로 배우인생 고비를 맞은후. 이후의 모든작품들에서도 남녀2인의 주연작이나 단독주연작을 고집했다. 그리고 쉽게말해 전부망했다. 존 트라볼타역시 과거의 자존심을 버리지못하고 1인최다비중 역할만 고집하다가 '여러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펄프픽션>으로 부활했다. 한석규가 늪에 가까운 고역의 필모그라피를 쌓아가던중 그나마 작품적으로 이슈가 된 경우역시 단독주연이 아닌형태<백야행><그때 그사람들>정도다. 그리고 정통 부분배역으로 인식될수있는<구타유발자들>에서 그의 자존심을 버린선택은 흥행여부를 떠나 영화인들에게 굉장히 많은 회자가 되고있는 부분이다.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한석규 나자신이 아닌 대여섯명의 연결고리를 통해 진행되는 작품을, 과거 떵떵거리던 황제 시절의 한석규에게 이 시나리오를 제시했다면 아마 읽어보지도 않고 문전박대 했을것이다. 그가 존 트라볼타처럼 긴 시간을 낭비하지않고 팬들에게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다가와준점에 적잖은 응원을 보내고싶다. 이바닥,특히 충무로판에서(이제는 뭐 충무로개념은 없어졌지만)최고를 유지하다 몰락을 겪고 재기한다는것은 정말로 힘든일이다. 배우자신의 마인드도 문제겠지만 주위의 시선이 더더욱 생존욕구에 발목잡이가 된다.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도 지금처럼 편하게 연기할수있어서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다고 밝혔다. 한석규는 원래부터 수준급으로 정극을 소화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진짜 배우다운 배우가 된것이다. 그 변화된 한석규 캐릭터의 정신이<구타유발자들>속에 가장 잘 내포되어있다.
조금 길어진듯하다. 특히 밥풀에게 미안하다. 다시 본평으로 돌아와보자면<구타유발자들>은 생각보다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꼬인 우리 현대인들에 내재된 폭력성을 극단적으로 표출하는것을 목적에 둔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문식과 그패거리가 교수의 성추행사실을 눈치채고 흥분하는 옆집아저씨와같은 영웅심리는 급속도로 제외시킨채 폭력의 되물림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어릴적 자신을 괴롭힌 한석규의 동생에게 가하는 폭력. 더이상 맞고있을순없기에 그들에게 폭력으로 맞서는 동생. 이 현장에 나타난 한석규가 또다시 이문식에게 가하는 폭력. 사실 영화를 다보고나면<구타유발자들>이란 제목보다 <구타되물림자들>이 더 매치가 잘됨을 대다수가 눈치챌수있다. 이는 비단 낮선 사람들과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사소한 오해에의한 폭력이아니라, 가슴한구석에 두세명은 응어리져있을 증오의 대상을 향해 현대인이면 누구나 내뿜을수있는 위험한 되물림임을 말해주고있다.
현역감독으로는 흔치않은 스턴트맨 출신 원신연 감독의 2번째장편<구타유발자들>은 런닝타임 내내 나름의 볼거리를 꾸준히 제공하며 끝을 맺는다. 사회적 인텔리인 대학교수와 그 여제자는, 서로간에 오고간 성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원색적 관계는 조용히 묵인한채 찌그러진채로 견인되는 벤츠안에서 그렇게 갈망하던 서울행에 성공한다. 평시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구석기 시대의 원시성을 목격한듯한 두사람의 위험했던 드라이브는 레커차에 끌려가며 그렇게 막을 내린다.
본작품<구타유발자들>은 임팩트강한 제목과 풍자하기 좋은 어감답게 현정부를 빗댄 수많은 캡쳐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는 사실상 B급인생,하부류집단으로 연상될 이영화의 주인공들 정도로 국민들을 우매하게 조작하고 규정해왔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시위대, 가방끈이 짧거나 평균치 지능에 못미칠것이 분명한사람들. 그러나 실상 이명박정부에 대항하는 이들은 하이힐을 신고 넥타이를 메고 유모차를 끌고 노트북을 든 사회최일선 납세구성원들이다. 현정권이 생각할 구타유발자들의 실루엣은 전부 목없는 마네킹의 뒷모습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우리가 규정하고있는 현시대 구타유발자들의 실루엣은 명백한 실존 생명체가 살아숨쉬며 비춰지는 리얼리티 그 자체다.
이 영화를 통해 가장 극심하게 느낀 대목은 출연진들처럼 어딘가 어리숙해보이고 지저분한 구타자가 될지언정, 세상의 골격자체를 풍지박산으로 인도하는 구타유발자가 되는것은 내스스로 경계하며 살아야겠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그런것을 좌지우지할 감투를 쓰게될일도 없겠지만, 내가정. 내일터에서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구타유발을 일으킬수있는 소규모 권력악용 징후를 가졌음을 자연스레 상기해본다. 누런 이 와 검게 때가낀 손톱으로 불결하게 삼겹살을 물어뜯는<구타유발자들>은 나에게있어 그 어떤영화보다 청결하고 먼지낀 가슴속을 환기시켜주었던 매력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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