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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
"1년하고도 1개월."
"와~ 말 빨리 배우셨네요."
"내 아들, 15살, 학교에서 열심."
"네덜란드말 어렵죠?"
"어려워. 너무 어려워."
아르메니아에서 온 아베트.
우리집 정원일을 봐주시는 정원사 할아부지가 조수로 데려오신 분이다.
정원사 할아부지는, 동네의 '교회 네트워크'에 있는 분인데, 요즘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란 어르신들 위주여서 70대 후반인데도 그 안에서는 ‘젊은이’ 축에 든다. 90대 고령자도 많으니,
60대가 커피 타고 뒷치닥거리한다고 함.
이렇게 여전히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어르신들에게는, 가능한 자기가 살던 집(정원있는
단독주택)에 살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사는 것이 소박한 소망인데, 정말 힘들다 싶을 때는 요양시설이나 아파트로 옮긴다. 그래서 이들 주변에는 늘 잔일이 많다. 정원일도 그 중의 하나. (정원일을 정식으로 업체에 주문하면 시간당 임금이 최소 20유로에서 40유로씩 된다. 거기에 출장비 따로,
운송비 따로 등등...그래서 알음알음 노인들 일을 봐주는 공동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따지고 들면 '불법'노동이라고 할 수 있음.)
우리집은 그 어르신들 공동체 소속은 아니지만, 살짝 걸치고
있어서, 오신 김에 우리 집도 좀...하고 안면을 트게 되었다. 잡초와 잡초 아닌 풀도 잘 구분 못하는 나로써는, 나무마다 가지치기를 해야하는 시기,
흙갈이 시기 등을 챙기는 일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일찌감치 판단하고 있다. 이런
분들은 평생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오신 지라, 손이 덜 간 우리 집 정원을 일단 보기만
하면, 그 다음은 부탁할 필요도 없다. 이 전문가 할아부지를 마당에 들여놓는 순간,
옆집까지 다 들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식물학 강의가 이어진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대청소하듯, 가지치기 같은 큰 정원일을 해 주시면, 그 사이에는
내가 알아서 잡초도 뽑고, 잔일하며 겨우 유지한다. 지나가다가 우리집 앞마당 아카시아 나무를 보고는 전화가 온다.
그 아카시아 나무 말이야. 5월 가기 전에 가지 자르라구. 어쩌구 저쩌구 강의 이어짐...
올 봄에는 잔디를 새로 까는데, 잔디인지 수풀인지
모르게 되어버린 옛 잔디를 걷어내고, 땅을 갈아엎어야 하는, 제법 대공사여서 아베트가 조수로 따라왔다.
중간에 커피 마시며 아베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말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다 전달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했다. 중간 중간 연결이
좀 불완전하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
아르메니아에서 포도농장을 갖고 있던 아베트. (정원사 할아부지 말로는 2 헥타르) 대통령의
동생에게 농장을 강제로 빼앗겼다.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남동생 하나, 여동생 셋의 가족과 함께 대농장을 이루고 살았는데, 집안의 남자들을 총으로 쏴죽였다. 아버지와 남동생이 죽었고, 자신과 아들만 살아남았다. 온 가족이 조지아(그루지야)로 탈출. 아베트와 아들은 우크라이나로 가서 네덜란드행 비행기를 탔고, 난민 신청을 했다. 나머지 가족들은 조지아에 있는데, 서로 연락이 안된다고 한다.
열 다섯 살된 아들은, 네덜란드의 정규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학교에 다닌다. 아들과 함께 난민자 공동 주거지에서 산다. 현재 난민자격 심사가 당국에서 진행 중. 본인이
탈출할 수 밖에 없었던 정황 증거를 모두 수집하여 서류를 제출했으나 ...
내가 보기엔...10년 전의 네덜란드 같으면 몰라도, 요즘 기준으로는 어렵지 않나 싶다. 아베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말이다. 아베트도 그런 말을
했다. 난민 캠프에 있던 체첸 출신 가족들이 며칠 전 체첸으로 돌아갔다고. 반면, 소말리아, 시리아 같은, 전쟁과 안전 문제가 심각한
지역은 난민 자격 부여에 문제가 없다는 것. 이란과 이라크에서 종교문제로 오는 경우도 마찬가지.
"코레아, 아름다워? "
"아르메니아도 아름다워."
"문제만 없다면 돌아가고 싶어."
그러나 아베트는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니 아르메니아에서 살 희망은 없다. 네덜란드에서 난민 자격 부여 받아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장의 목표인 셈. 그리고 생이별한 가족들은...연락이 닿는다면...아베트가 네덜란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 받는다면, 직계 가족은 가족 결합이 가능할 것이다. 열두 살짜리 딸이 엄마와 함께 있단다. 그리고 여동생 가족을 위해 이들은 열심히 일해서...송금하고...그렇게 이민자로 살아가겠지.
만약 난민 자격을 받지 못한다면, 그렇다해도 열 다섯 먹은 아들이 곧 네덜란드 교육과정에 다니게 되면, 그 아이가 교육과정을 마치기 전까지는 추방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난민자 거주지에서 생활하며, 직업없이(이 경우, 노동허가가 안 나옴) 기초생활지원을 받으며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된다.
아베트에게 들은 아르메니아 이야기.
인구 3백만. 종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 차 보다는 커피. 해외에
7백만. 모두 천만.러시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과는 문제없는데, 터키와 좀 글타.
네덜란드 알메이로라는 도시에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는데 다녀온 적 있다...
나보고 '피앙'에서 왔냐고 묻더라.
"아니, 평양은 북한, 남한은 서울."
"코레아는 종교가 무슬림이야, 기독교야?"
이들에게 종교란 무슬림이냐 기독교냐의 문제.
아르메니아는 본토 거주자보다 국외거주민, 즉 디아스포라
인구가 많다.
그리고 지금도 국외이주는 계속되는데, 그 중에는
범죄의 이주도 있다.
범죄조직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조직원을 국외 이주자로 만드는 경우가 가끔 외신에 나온다. 아르메니아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라 아베트의 난민자격 심사는 까다롭고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베트가 돌아가고 난 다음에, 아르메니아 정치 상황에 대해 찾아봤다.
대통령 동생이 민간인을 죽이다니? (직접 죽인
게 아니라 그 무리들이 죽인 것이라 짐작함.) 아베트의 말로는 마피아라고 하던데. 아마 설명하기
복잡해서 그리 말했을 것이다. 보기엔 평온하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은 사회라고.
“아르메니아 대통령의 동생”으로 구글링을 해보니
불쾌감을 주는 면상과 함께 여러 정보가 뜬다. 아르메니아 대통령 세르즈 사르그샨(Serzh
Sarkisian)은 친러시아, 친개방, 친기업을
표방하는데, 이 나라가, 보니까 국회의사당에서 총도 쏘고, 족벌정치로 악명 높고 그런가 보다. 검색에 나온 기사들 중에는 대통령 일가가 미국과 러시아에 범죄조직망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정부 관료들, 국회의원들, 기업가 집단이 연루되어 있다고도 하는군. 인신매매, 마약
운반, 돈 세탁 같은 일인데, 대통령 동생도 건설회사도 갖고 있고...그런가보네.(모양새가 어느 나라랑 좀 비슷) 마당 구석의 잡풀을 쳐내다가 웅크린 고슴도치 발견.
평소에 슬금슬금 다니던 놈이었는데, 이번에 완전히 들켰다.
땅을 파서 몸을 반쯤 묻고 있더라. 나 고슴도치 아니에요~
제 보금자리가 완전 노출되어서...이젠 어디가서 사는지...  잔디 반, 잡초 반이었던 잔디를 걷어내는 데 하루, 다음 날 와서 삽으로 땅을 갈아엎음. 며칠 뒤에 다시 와서 잡초 뿌리들을 하나하나 솎아냄. 저 상태로 시간이 좀 지나야 된다네. 잔디 심기에는 봄과 가을이 좋은데, 올봄은 시기를 놓쳤고 가을에 씨를 뿌리거나 깔기로 함. Coffee break
★ 코피 파우제(koffiepauze : 쉬는 시간)
집에 일손을 부른 경우, 집 주인은 보통 이 ‘코피 파우제’에 커피와 쿠키를 대접한다. 우리가 보통 '커피 타임'이라고 하는 건데, 이게 법으로 정해져있기도 하고, 문화이기도 하고 그렇다.
네덜란드 노동시간법에는 근로자의 쉬는 시간을 정해놨는데,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이 규정이 일반화되어 있다. 하루
5.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최소 30분의 쉬는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다. 10시간 넘어가면 45분, 이런 식으로. 보통 오전 15분, 오후 15분씩 쉰다.
오전 9시부터 일 시작하면, 오전
10시반, 오후 2시 반 정도가 보통 쉬는 시간. 이때는 아무리 눈앞에 고객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도, ‘코피 파우제야’하면서 일 놓고 간다. (달리 말하면, 이 쉬는 시간 외에는 커피 마시거나 담배 피우러 들락거리면 안되겠지.)
근로자가 아니라도, 보통 커피 마시러 오라고 집에
초대할 때, 오전이라면 10시 반, 오후라면 3시쯤이다. 전국민이 똑같은 시각에 커피나 차를
마신다는 사실에 우워~했더랬음.
가사 도우미나 정원사 같이 집안일을 하러 오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주인이 친히...커피나 차를 쿠키나 케잌과 함께 내고, 함께 앉아 커피 마심...(점심은 도시락 문화의 발달로 인하여^^, 각자 싸 옴. 이때 역시 음료 대접.)
*정원사 할아부지 얘기를 좀 더 해야되는데...
이 칠순 넘은 장정이 정원일 하시는 모습...굉장하거든.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데, 한국도 가봤다며 아는 체를 하시는데
근데 아는 체가 아니고...보통 서울 정도 가잖아?
부산에도 갔고, 울산도 가셨다네. 그것도 30년 전에.
이 사람들은 정말 여행이 교양이구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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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혼 집에는 정원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