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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알프스 여행] 스탕달의 고향, 그르노블
글쓴이 : 밀혼                   날짜 : 2012-05-19 (토) 05:52 조회 : 7348 추천 : 16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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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앙드레 광장(Place St-andre). 아침이면 딸기 난전과 치즈 난전이 벌어지는 그 광장이다. 프랑스 혁명의 전야가 된 그 도피네 고등법원이 있던 건물을 배경으로 동상이 하나 섰다.

▲ 기사 바야르 동상

기사 바야르(Pierre Terrail, Seigneur de Bayard, 1473~1524)는 중세 기사의 귀감으로 기억되는 인물인데, ‘두려움 없고 나무랄 데 없는 기사’(chevalier sans peur et sans reproche)라는 문구가 그를 따라다닌다. 낭만적 기사도, 관대함, 용맹심 등에서 완전무결한 기사의 전형이었다는 바야르는 그르노블이 있는 이제르 지방 사람이다. 15세기말,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이탈리아의 나폴리 왕국으로 쳐들어갈 때 수훈을 떨친 장군이었다고. 이 광장의 성 앙드르 교회에 바야르의 묘지가 있다.

미셸린 여행안내서에는 이제르 지방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기사 바야르를 따로 할애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을 일부 옮겨보면,

‘두려움 없고 나무랄 데 없는 기사’(chevalier sans peur et sans reproche)’라는 이 유명한 문구가 바로 이제르 강 유역에서 온 말임을 아는가? Le Gresivaudan이라는 이름의 이 산줄기는 그르노블에서 이제르 강을 따라 북쪽의 바야르 성(샤또 바야르)까지 이어지는데, 19세기에 공업용 수력발전을 했던 곳이다.

바야르는 1476년 그르노블의 근교 Pontcharra에 있는 바야르 성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군인 집안이었다. 어린 시절 바야르는 승마와 군사놀이에만 관심있었고, 곧 스승을 능가했다.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그를 궁정으로 발탁했을 때 바야르는 16살. 기사로 이름을 떨친다....

기사 바야르 이야기를 한 것은, 이 동상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있는 카페 때문.
1739년 문을 연, 원탁의 카페(Cafe de la Table Ronde)



유서깊은 카페에는 훗날 사람들이 흠모하게 되는 옛 단골고객의 이름이 그 명성을 더한다. 이 <원탁의 카페>는 그냥 카페가 아니라 장 자크 루소와 스탕달이 드나들었던 카페이기 때문이다. 음...루소와 스탕달이 여기 앉아서 술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그랬단 말이지하고...
사실 나도 괜히 들락거려보긴 했지만, 썩 정이 간다거나 하는 곳은 아니었고, 늘 학생들로 붐비고 떠들썩했다. (그르노블 인구 15만 중 6만 명이 학생이라우.) 도피네 음식 전문점이라할 수 있는데, 음식은 최고.


스탕달이야, 그르노블이 제 고향이고 또 이 카페는 제 집에서 한발짝인 곳이고. 루소는 사실 그르노블과 그리 인연이 깊은 것은 아니다.

1762년 루소는 프랑스를 떠나 떠돌아다녔다. 그 해에 출판된 『에밀』과 『사회계약론』때문이었다. 당국이 그를 체포하러 오기 몇 시간 전에 급히 프랑스를 떠나며 시작된 망명길은 1770년까지 이어졌다. 영국을 떠나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한 해를 보낸 루소는 그르노블로 와서 한 달을 머무른다. (1768년 7월 11일~8월 12일)  쉰 여섯의 나이. 『고백』을 집필 중일 때였다. 그 뒤 그르노블과 리용 근처의 시골 마을 몇 군데에서  지내다가  1770년에 파리로 가게 된다.
그러니까 그르노블은 불온한 사상을 퍼뜨리던 루소가 숨어 지내던 곳이었는데, 도피네 고등법원의 변호사인 보비에르(Gaspard Bovier)라는 지인이 루소가 숨어 지낼 수 있도록 돌봐주었다.

루소는『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일곱번째 산책」에 보비에르와의 일화 한 가지를 썼는데, 그르노블의 이제르 강가 산책을 나갔을 때 일이다.

나름 식물 연구가였던 루소는 종종 ‘식물 탐험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날도 루소는 보비에르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잘 익은 야생딸기를 보고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맛을 본다. 맛이 괜찮았던 터라 목도 축일 겸 딸기를 따먹는데, 보비에르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지켜보고만 있더라는 것이다.
그때 보비에르의 친구 하나가 오더니, 루소에게, 지금 뭐하는 거냐? 그 딸기에 독있는 거 모르느냐고 말한다.
독이라고?
그래. 그거 모르는 사람 없다고. 아무도 입에 댈 생각조차 안한다고.
루소가 보비에르에게 왜 아무 말 안했냐고 묻자 보비에르는, “네 자유를 감히 뺏을 수가 없어서.” 라고 말한다. 루소는 이 “도피네식 겸양”에 폭소했다는 이야기.

진심과 애정을 갖고 대했던 사람들이 그에게 되돌려준 증오와 경멸과 모욕을 잊게 해주며, 어린 시절 느꼈던 천진한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고, 선량하고 단순한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교감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하는 말로 에피소드를 끝맺는다.



장-자크 루소 길(Rue Jean-Jacques Rousseau)

지금은 좀 후줄근해 보이기도 하는데, 루소와 스탕달의 시절에는 지체 높은 양반들이 살던 골목이었다. 루소는 이 골목 2번지에 르노(Renou)라는 가명을 쓰며 묵었고, 그 옆집 4번지는 프랑스 혁명에 앞장섰던 정치인 바르나브 (Barnave)의 집.

※바르나브(Antoine Barnave,1761-1793)  
도피네 고등법원의 변호사. 그르노블 기와의 날(1788)과 프랑스 혁명 초기에,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삼부회의 도피네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국민의회에서 미라보의 맞수로 논쟁을 이끌었던 삼두파 가운데 한 명. 그르노블의 바스티유에 갇혔다가 파리에서 길로틴 처형됨.


장 자크 루소 길

스탕달은 1783년 이 골목 14번지에서 태어났다. 당시 길 이름은 비외제주이트(Rue des Vieux-Jesuites)였는데, 한때 주민이었던 루소를 기념하여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르노블 사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기와를 던지며 왕의 군대를 몰아냈던 기와의 날 항거는 스탕달이 다섯 살 때 일. 그 이듬해에 파리 군중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스탕달 생가

이 골목에 스탕달의 집이 있는 걸 보면, 어떤 집안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스탕달의 아버지는 도피네 고등법원의 변호사였다. 스탕달이 일곱 살 때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아내의 방을 걸어잠궜고, 스탕달만이 열쇠로 방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톨릭 집안 사람으로, 예수회 신부를 가정교사로 들이고, 아들을 권위적으로 대하며 엄격한 교육을 시키려했다. 아버지는 당시 정치적으로는 가톨릭 왕당파라고 할 수 있는데, 스탕달이 열 살 때 반혁명 용의자로 투옥되기도 했다. 스탕달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이로 자라났고, 불화가 심해서 외할아버지네에서 살다시피 했다. 

스탕달 생가 건물에 붙어있는 기념 표지.

 

외할아버지 앙리 가뇽(Henri Gagnon)은 계몽주의 사상에 눈 뜬 의사로, 보수적인 사위와 불화를 빚는 외손주를 품에 거뒀다.
외할아버지 집은 그르네뜨 광장(Place Grenette)에 있는데, 앞쪽은 그르네뜨 광장에, 집 뒷쪽은 공원에 면해있다. 두 집 사이가 한 이십미터 되려나? 바로 앞집이라도 해도 될 거리.


▲ 그르네뜨 광장(Place Grenette)

스탕달은 유년시절이 행복하지 않아서인지 고향 그르노블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억압적인 아버지, 자유주의에 물든 낭만적 청년, 스탕달은 열 여섯에 파리로 떠난다. 대학 진학은 핑계였던지, 곧 나폴레옹의 군인이 되었고.

▲ 13세기에 지은 성 앙드르(Saint Andre) 교회. 스탕달이 앙리 브륄라르였던 시절, 이 교회 종소리가 처음 느낀 음악적 센세이션이었다고.

교회 뒷길을 따라 나오면 작은 광장을 지나 시 공원(Jardin de Ville).
스탕달의 외할아버지 집 뒤뜰이라고 할 수도.










공원 한쪽에 스탕달 기념물이 있다.





그 밖에 그르노블에서 찾을 수 있는, 스탕달의 자취.

▲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렀던 성모교회

▲ 스탕달은 그르노블 극장의 한 여배우의 팬이었다고.
늘 사랑에 빠져있던 남자.

사실 그르노블이라는 도시가 그 겉모습이 그리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대로나 골목이나 어쩐지 공업도시의 기운이 돌고, 섬세함보다는 거친 인상이다. 게다가 투박한 건물들 사이로는 어느 방향이든지 눈 덮인 알프스 산이 보인다.
스탕달은 이런 풍경이 그르노블 사람들의 기질과 관련된다고 썼는데, 이 고장 사람들은 ‘오리지널’을 추구하며 특히 위선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건조함, 강력함, 냉철함 등이 도피네의 기질이라고 한다. 도피네의 역사, 프랑스 혁명, 그리고 나중에는 파르티잔의 고향이 된 것을 보면, 그럴 듯하게 들린다.

스탕달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더.
스탕달은 법정신문에서, 『적과 흑』의 소재가 된 두 사건을 읽게 된다. 그 중 하나가 1826년 그르노블에서 있었던 베르떼(Berthet) 사건이다.
그르노블 근교의 시골마을에서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난 베르떼는 그의 영리함을 알아본 신부의 도움으로 그르노블에서 성직자가 되는 교육을 받게 된다. 4년이 지나, 스무 한 살이 되던 해, 건강이 나빠져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고, 미슈 집안의 가정교사가 된다. 이때 아마도 미슈 부인과 연인 사이였을 거라고.

다시 성직자 공부를 하다가 가정교사로 들어간 꼬르동 가문에서는 이 집안 딸과 염문이 나서 해고된다.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베르떼는, 미슈 부인이 편지를 썼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미사 중이던 미슈 부인을 찾아가 교회 안에서 부인에게 총을 쏘고, 자기에게도 총을 쐈다. 살아난 베르떼는 사형판결을 받고 스물 다섯의 나이로 처형되었다.
사실 미슈 부인은 베르떼를 도우려고 했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주려고 했으며, 베르떼는 여전히 미슈 부인을 사랑했으리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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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밀혼                   날짜 : 2012-05-19 (토) 05:52 조회 : 7348 추천 : 16 비추천 : 0

 
 
[1/2]   워싱턴불나방 2012-05-19 (토) 10:38
잘~~~봣슴...
덕분에 프랑스, 스탕달(봉회장 멘토?),루소 등등 잘 배웟슴.
 
 
[2/2]   순수 2012-05-19 (토) 11:52
잘 봤네~~~
고전틱한 마을이네..

언제 다 가보나~~
ㅎㅎㅎ
밀혼이 좋은 구경 다 시켜 주고 잇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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