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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e Saison en Enfer, by Hubert Pauget 1.
제주도라든가 풍광 좋고 쉬었다 가기 좋은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또는 쉼 없이 시달려 봤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또는 사회관계의 압력으로 관광가이드가 되어 본
적 말이다.
나라 밖 어딘가에 사는 경우도 그렇다. 게다가 사람들의
선망이 쉽게 얹혀지는 ‘유럽’이라는 곳이어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들은, 한번 놀러 갈께, 라거나,
출장 갈 일 있을지도 몰라, 하는 인사를 한다.
그러나 구라파에서 산다는 것. 고풍스런 거리,
그림 같은 집, 멋지구리한 유러피언들에 둘러싸인 낭만적 삶만은 아니요,
한국 여행자들의 관광코스나 출장길에 있는 것도 아닌데 ‘유럽’은 쉽게 하나가 되어, 한번 들릴 수 있는 곳이 된다. 물론 인사치레라는 것 알고, 멀리 있어서 반짝거린다는 것도 인정한다만, 거기엔 은근한 기대감이 실려 있는 것도 안다.
내가 한국 어딘가에 처박혀 살며 가끔 연락이 닿을 때에도, 너 사는 도시까지 너 보러 한 번 갈께, 이런 말을 건넸다거나 출장길을 에돌아 찾아온 일이
있다거나 했던 사람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사람이 찾아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나 사는 곳까지 그 먼 길을, 나 보러 온다는 데 마다할 까닭이 없다. 허름한 한 쪽 방바닥에 매트리스 하나 깔고, 베갯잇
새로 입혀서 옹색한 잠자리를 만든다. 평소엔 몇십 센트 차이 나는 가격표에도 뭘 집어올까 망설이는 슈퍼마켓에서도
선뜻, 제법 좋은 식재료를 사고, 할인으로 나와있는 싸구려 와인 대신,
그래도 좀 괜찮은 술도 골라 지하실에 쟁여놓는다.
물론 인사치레로, 한 번 놀러 갈게,
하는 사람에게는, 놀러 와라, 출장 오면 연락해라,
이런 빈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나를 ‘네덜란드에 사는 인간’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지인들과, ‘네덜란드에서 삶의 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 친구’로 보는 사람들과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이가 사는 나라가 어떤 모양인지,
어떤 동네를 종종거리며 날마다 오가고, 어떤 얼굴을 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지,
뭘 먹으며 사는지, 무슨 술을 홀짝거리며 잠 안 오는 밤을 달래는지 등에 그나마
관심이 있는 지인들과 그들의 바쁜 출장길 한쪽이나, 어렵게 낸 휴가의 한토막을 함께 보내는 일은 참 즐겁고
행복하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삶의 활력으로 뭉근하게 남는다.
이런 지인들은 대체로 한국에서 우리 집까지 잘들 찾아온다.
나는,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공항까지 마중
나가는 일로 표현하지는 않기 때문에, 공항에서 내가 사는 도시까지 오는 기차 편을 알려주면,
다들 별 말 없이 잘 찾아오고, 나는 기차역까지 마중 나가서 픽업한다.
(친구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내가 그리해달라 말한다.)
친구가 오기 전에 미리, 우리 동네 물가나 여러
형편을 알려주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기차로 암스테르담이나 볼 만한 도시 나들이를 간다면 기찻삯은 몇만 원쯤 들 것이고, 저녁밥 한 끼를 밖에서 사 먹는다면
삼사만 원은 족히 들며, 미술관 한 군데 보려면 입장료는 2만 원 가량
한다는 것. 그러니, 숙소를 우리 집으로 하더라도 하루 나들이에
10만 원은 훌쩍 넘어간다는 것(1인당).
그러니, 적어도 니가 놀러다니며 쓰는 비용은 니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손님환대비용에 묻어가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10만 원이면 우리 집 일주일 식비보다 많은 돈이라는 것 등등.
내가 관광가이드까지 해주길 바란다면, 그 모든 비용을
니가 부담하지 않으면 내가 감당할 수 없으며, 더불어 나는, 너와 같은
휴가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덧붙여야 한다.
너무 삭막하다고? 나도 백만장자가 아니라서 어쩔
수가 없다. 한국에서처럼, 기분 좋은 사람들에게 기분 내며 살다가는
한 달도 안 돼서 파산이다. 그리고 대체로 놀러 오는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부자다.
전기, 수도, 난방 같은 에너지 사용요금이 한 달에 40만 원쯤 나오는데, 손님이 일주일만 왔다가도 그달은 50퍼센트가량이 훌쩍 추가된다. 이런 이야기를 정색하고 할 정도로 야박하지는 않지만 속사정은 이렇다. 그러다 보니, 이런 속사정을 나눌 수 있을 만한
사이나 몇 달 살림이 거덜 나더라도 초대하고 싶은 이들에게만 놀러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다.
2. 아홉 명의 인간들이 우리 집을 쓸고 갔다. 그 중
넷은 6세 이하 어린이. 이들이 쓸고 간 것은 고장 난 세탁기(건조기까지 쉴
새 없이 돌려댔더니 망가지더라.) 망가진
샤워커튼, 망가진 화장실 전등...이런 자질구레한 것부터 여기저기
황폐하게 만들어놨다.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할 것 같은 거실 벽, 뭔가로 범벅이 된 소파...내 몸과 마음도 그만큼 얼룩지고 뭉개졌다 ㅜㅜ.
일주일이었지만, 에너지 사용요금은 세 배 넘게 나올
것 같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식기세척기를 돌렸고, 심야전기 쓰려고
밤에만 돌리던 세탁기는 온종일 돌아갔으며, 욕실은 늘 누군가가 쓰고 있었고, 나는 늘 부엌에 서 있거나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손님들과 오랜만에 나누는 정 같은 건 느낄
틈도 없이...
절대 빈말이라도 ‘함 놀러 와라’는 말을 건네지 않을 부류의 사람들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사는 게 뭐 맘먹은 대로만 되던가.
이 손님들, 일본사람들인데, 내가 제발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일들을 해서 기대에 저버리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일들.
-제발, 음식 선물 좀 안 가져왔으면.
(센베부터 해서... 일본 음식을 바리바리 싸 옴. 일본에 살면 어쩔 수 없다지만, 일본산 음식을 이 와중에 일부러 먹을 필요는 없잖은가.) -손도 까딱 안 하는 일본 아저씨들. 정말 보기
역겨웠다. 여행 와서까지 지 마누라들 불러서 시켜먹기에, 우리 집에선
다 셀프서비스니까 로마법을 따르라고, 훈장질도 했다.
-어딜 가나 앉아서 맥주 처마시는 것들. (지 입으로
주문도 못하믄서 마시기는 어찌나 마시는지...가는 데 마다, 그 동네
특산품 맥주 시켜달라고 요구. 운전하느라 술 못 마시는 내 염장을 질렀따.)
-확실한 손님 행동. 지갑을 안 열어요 안 열어.
-말을 못해서 그렇겠지 이해할까도 했지만, ‘오미야게’는 어찌나 많이 잘들 사시는지. 선물 사러 외국여행 온 사람들 같았다.
-많은 입 먹일 만한 요리는 엄두도 안 나고, 큰
솥단지도 없고 해서, 아침은 빵 주고, 저녁은 데워먹는 음식으로 냈다.
(‘시키면 배달해주는’ 이런 음식 따위는 없다.) 근데 이노무 애새끼들은 눈치없이 ‘고항’ 먹고 싶다고
외쳤다. 결국 나중엔, 하루 한끼는 밥 했다.ㅜㅜ
아직, 이 쓰나미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복구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에휴.
평소 잘 안하던 마음고운짓을 했더니,
마음이 고와지기는커녕 더 까칠해지기만 한다. 
▲ Une Saison en Enfer, by Hubert Pau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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