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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 "대통령의 그늘"
글머리에
지금부터 나는 이곳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본인의 창작소설 ‘대통령의 그늘’을 연재하고자한다. 내 글을 알릴 곳으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가 내 이야기에 공감해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라는 생각에서이다.
연재될 글들은 '참여정부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대통령을 도와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나의 바람을 소설로 쓴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한 사람으로서 2007년 대선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 그분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너무나 가혹하고 불공평한데 대한 울분을 참을 수 없어서였다.
이야기의 절반쯤을 글로 옮겼을 때 노대통령이 서거하는 일이 생기자 나는 글쓰기를 중단했었다. 그분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고 없는 마당에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이 없는 세상은 점점 더 잿빛으로 변해갔고 내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 절실해져서 나는 컴퓨터 한 구석에 처박아놓았던 원고를 다시 꺼내었다. 정말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세상이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이런 글이라도 쓰면서 산 사람들은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내 글을 연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박봉팔 닷컴에 감사드린다.
1. 프롤로그 (1주년) -1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한 무명의 변호사출신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지 꼭 1년째 되는 12월의 어느 날 밤, 여의도 공원에는 꽤나 많은 수의 군중들이 모여 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가설무대 위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고, 가끔 구호도 따라 외치면서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불빛이 닿는 곳마다 노란 색의 깃발과 플래카드, 모자와 목도리가 얼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한강물 대신 물결이 되어 출렁거렸다. 부모의 움직임을 열심히 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강의 차가운 얼음장에 날을 잔뜩 세우고 공원 광장을 휘저어대는 바람의 기세도 군중들의 뜨거운 열기 앞에서는 무력해 보였다. 어둠이 군중들이 내뿜는 허연 입김들마저 흔적 없이 삼킬 만큼 짙어졌을 때 한순간 무대 뒤쪽이 술렁거리는가싶더니 곧이어 사회자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우리가 기다리던 분, 대통령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따뜻한 박수로 맞이합시다.”
군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대통령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박수가 멈춘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던 연호소리는 잠시 후 무대의 조명 속으로 나선 대통령이 손을 들어 제지를 하고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연호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려 대통령은 언제나 지지자들을 매료시키는 연설을 특유의 유머로 시작했다.
“여러분, 춥죠?”
“예!”, “아니요!” 하는 군중의 대답을 기다려 준 다음 계속한다.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날 골라서 사서 고생들을 합니까? 나까지 고생시키면서........주인이 불러내는데 머슴이 안 나올 수가 있나?”
군중 속에서 웃음소리가 났지만 대통령의 다음 말을 재촉하느라 이내 조용해졌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지금 우리가 모인 이유는 뭡니까?”
이어진 대통령의 시비조 질문은 듣는 군중이 반드시 설복을 당하고야 마는 그의 전매특허 문답형식 연설의 시작을 의미했다. 대통령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했다.
“생일잔치 입니까? 내가 당선되고 첫 번째 생일을 맞아 자축하는 자리입니까 이 자리가?”
대통령이 대답을 기다리는 듯 군중을 둘러보자 한 사람이 큰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그럼 뭡니까?”
그 사람이 처음보다 훨씬 큰 소리로 대답했다.
“결의를 다지는 자리입니다.”
대통령은 과장되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사람 대통령 만들어 놨으면 여러분들 할 일 끝난 것 아닙니까? 이렇게 추운날 밤에 굳이 모여야 될 만큼 절박하고 중요한 일이 아직도 남았다는 말인가요?”
곧 “감시!”, “감시!” 하는 연호가 나온다.
대통령은 깨달은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을 잇는다.
“감시? 감시 해야죠. 그런데 누구를 감시 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대통령 권력 잘못 써먹는지 감시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국민이 저에게 맡긴 대통령질 못하라고, 그래서 나라 망쳐먹으라고, 사사건건 발목 잡는 사람들 감시 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감시해야할 상대는 어느 쪽입니까?”
여기서 잠시 뜸을 들인 후 이어지는 대통령의 말투는 이미 투사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염치없는 말이지만 저는 여러분의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날 여러분은 이 나라를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대선에서 특권과 기득권, 반칙으로 세상을 주무르던 사람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대가 없는 봉사와 노력은 경쟁세력의 거미줄 같은 조직과 차떼기로 동원된 불법 자금의 힘을 무력화시켰고, 온라인 세상에서의 자유분방한 글쓰기는 막강한 힘을 가진 기성언론의 필봉을 수숫대 꺾듯 꺾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나 나나 그것으로 세상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 년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제가 깨달은 바는 우리의 갈 길이 아직도 너무나 멀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 길을 가기위한 첫걸음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저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선택에 승복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를 흔들어대는 사람들, 국회를 장악하고는 불법자금을 모으는데 앞장섰던 사람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고 만세를 부르며 희희낙락하던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 공기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그들을 편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민혁명은 아직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와 우리나라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여러분이 다시 한 번 떨쳐 일어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 후략 - ”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후 거추장스러운 경호 행렬을 달고 청와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추운데서 모두들 고생하는데 늦게 와서 연설하나 달랑 마치고 먼저 떠나는 것이 미안하기 짝이 없군. 거리낌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 밤도 새고,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하던 예전이 좋았어. 인권변호사라는 간판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지. 그땐 지금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채의식 같은 것도 없었어. 오히려 남에게 무엇인가 베풀고 있다는 기쁨으로 항상 가슴이 벅차있는 상태였지. 감옥에 앉아있어도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고.........., 경호 문제 등으로 이런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내 사정을 사람들이 이해할까? 내 이름으로 모인 집단인데, 섭섭해 하는 사람도 많겠지. 아무 대가 없이 시간과 돈을 써가며, 남의 손가락질 까지 받아가며 활동하는 사람들........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군. 저런 사람들의 상징과 우상으로서 걸맞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저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아무 것도 손에서 내려놓지도 못하게 하고 걸음을 멈추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그래 까짓것,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5년 인데........, 이제 4년 남았군. 4년 동안만 죽도록 일해서 국민들 잘 살게 만들어놓고 그러다보면 저 사람들도 만족할 테고 그런 다음에 실컷 쉬고 즐기고 하지 뭐, 설마 너무 열심히 일했다고 죽기야 하겠나?’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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