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先史時代(선사시대)~아스카(飛鳥)시대 1
선사시대는 역사이전(先史)의 시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일류는 석기(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거친다. 일본의 선사시대는 청동기시대까지를 말하며, 선사시대는 다시 둘로 나눠 신석기 시대를 ‘죠몽시대’, 청동기 시대를 ‘야요이시대’라고 한다.
1. 선사시대(先史時代)
죠몽(繩文)時代 : 기원전 1만 4000년~기원전 300년 일본의 석기시대를 죠몽(繩文)시대라고 한다. 기원전 1만 4000년부터 기원전 300년까지에 해당한다. 繩文(승문)은 ‘새끼줄(繩) 무늬(文)’를 말한다. 새끼줄 같은 무늬가 새겨진 토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이들을 죠몽인(繩文人)이라 부른다.
기원전 8천년에 일본열도는 한반도와 분리된다. 그 이전에는 지금의 대륙붕으로 연결돼 있었다는 말이다. 이때 분리·고립된 사람들이 일본열도의 原住民(원주민)이다. 이때부터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렵과 채집을 위주로 생활했다. 수렵과 채집만으로는 정착생활을 할 수 없다. 식량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죠몽시대 후기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들이 야요이시대를 열고 정착생활을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건너온...’이라고 하며 애써 중국을 집어넣고 있지만, 전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다. 죠몽시대 후반에서 야요이시대에 중국대륙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갈 수단이 없다.
앞서 3세기 중반에 위나라에서 사신이 큐슈로 갈 때 항로를 생각해보자.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물수제비 띄우듯 각 해안 포구를 거쳐 겨우 가야에 도착한다. 가야에 도착하고서도 바로 일본으로 가지 못하고 대마도-이키섬을 거쳐 큐슈북부 해안에 도착했다. 나침반이 있어도 지도가 없으면 당시의 작은 배로 긴 시간 항해를 할 수 없다. 뱃길(항로) 개척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다. 지금의 잣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야요이(彌生)時代 : 기원전 300년~기원후 3세기 중반 3세기중반까지를 야요이(弥生/彌生)時代시대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들이 일본의 청동기 시대를 연 것이다. 선사시대의 시간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짧은 청동기시기를 거치는 것이 일본열도다.
청동기시대는 청동유물이 등장한다는 것을 말하며, 주된 생활도구는 정교해진 석기다. 논농사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쌀 경작법은 밭벼에서 논벼로 농사법이 서서히 바뀌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본 열도는 논농사로 곧장 이행한다.(죠몽시대 후기에 밭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매우 미미하다.) 쌀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한반도에서 열도로 내려 온 것이다. 청동기가 보급되면서 제사장을 중심으로 小國(소국)이 등장했다고 보고 있다.
죠몽시대 후기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을 야요이(彌生)인이라 부른다. 이들은 논농사뿐만 아니라 농기구, 토기, 주거, 마을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본격적인 정착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열도의 선주민(先住民)이다. 원주민과 선주민으로 구분하는 것은 길벗과 협의하여 붙인 명칭이다.
주로 한반도 남부 해안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육지로 이어졌던 시절부터 한반도 남쪽에 일본열도가 있다는 것을 조상 대대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동했을 것이다. 야요이시대 한반도 남부는 마한의 땅이었다. 그러므로 굳이 나라를 따지자면 마한 사람들이 많이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야요이시대를 기원후 3세기 중반으로 학계가 보고 있는데, 이 시기는 문헌사료에 따르면 비미호의 시기다. 비미호는 청동기시대=야요이시대와 고분시대 양쪽을 연결하는 인물인 것이다. 청동거울·청동방울·청동검·동종 등 제사장과 제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이 시기에 출토된다. 가야에서 수입한 철덩어리(철정)로 농기구를 만들어 큐슈-시코쿠-관서지역 해안으로 팔았던 것으로 보인다. 야요이시대 다음을 고분시대라고 한다. 야요이 후기와 전기 고분시대가 겹친다는 말이다. 고분시대(古墳時代, こふんじだい)의 古墳(고분, 일본어로 ‘고훈’)은 ‘오래된 무덤’을 말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등장하는 시기를 말한다. 일본의 역사 명칭이므로 길벗과 나는 '고분'을 [고훈]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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