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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광개토호태왕릉 비문의 왜, 백잔_2 390년 백잔의 정체
글쓴이 :  길벗                   날짜 : 2021-01-21 (목) 13:22 조회 : 153 추천 : 0 비추천 : 0
길벗 기자 (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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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호태왕 비문의 왜倭와 백잔百殘 (2)



B. 390년 당시 백잔(百殘)의 정체  

 길벗은 백잔(百殘)을 백제를 낮춰 부르는 호칭이라고 했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 광개토호태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죽였기 때문에 원한이 있고, 경쟁 관계라 낮춰 불렀다고 길벗은 주장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이유는 3가지다.

1. 경계비라면 몰라도 비문에 욕지거리를 쓰지 않는다. 
2. 백제왕이 고국원왕을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면 비열하다고 욕을 먹을 것이다. 당시에 패자의 목을 베는 것은 大人(대인)이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국원왕을 전투 중에 화살(유탄)을 맞아 죽었다. 원한을 살 일이 아니다. 
3. 396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토벌하였으나 멸망시키지 않았다. 대인의 아량을 베푼 것이다.

 그러므로 광개토호태왕이 백제를 원수로 여기고 낮춰 부르거나 비하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백잔(百殘)에 卑下(비하)의 의미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백잔(百殘)은 무슨 말인가? 잔(殘)은 잔인하다는 뜻도 있지만, ‘무너지다, 허물어지다’는 뜻도 있다. 殘類(잔류)는 ‘남은 일족’이라는 뜻이다. 殘溜(잔류)는 뒤쳐져 남아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백잔(百殘)은 ‘ 百濟(백제)의 남은 부스러기’라고 봐야 한다. 대륙에 있던 백제 땅을 다 빼앗기고, 한반도에 남은 “殘溜(잔류) 百濟(백제)”를 말하는 것이다. 390년 당시 백제는 敗家亡身(패가망신)한 가문 신세였던 것이다.

 왕가를 일으켜보려고 애쓰던 백제는 396년 고구려을 건드렸다가 쓰라린 패배를 맛본다. 결국 왜와 동맹을 맺고 원병을 얻기 위해 태자(전지 腆支)를 볼모로 일본열도로 보낸다. 397년 일이다. 백제와 동맹을 맺은 왜가 신라를 공격하지만 고구려의 5만 보병과 기병에게 완패한 것이 400년에 일어난 일이다. 
 404년에는 백제의 식민지(담로擔魯)였던 대방인근을 지나던 왜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괘멸 당한다. 고구려 지역을 침입했다고 했으니 왜가 고구려를 공격한 것은 아니고 대방인근으로 가다가 궤멸 당한 것이다. 추측컨데 원병의 대가로 대륙의 옛 백제땅에 대한 관할권을 넘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407년의 고구려 승리는 문맥으로 볼 때 404년에 왜가 당한 복수를 위해 왜·백제 연합군이 고구려에 덤볐다가 또 당한 것으로 보인다.

 390년 당시 백제는 거의 망했다고 봐야 한다. 호흡기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로 보인다. 근초고왕 재위시절만(346~375년) 해도 강성했던 나라가 한순간에 몰락한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백제 아신왕 재위기간의 ,삼국사기> 기사를 보면 전쟁하면 깨진다. 백전백패다. 이런 나라에 백성이 살 수 없어 도망간다. 결국 태자를 볼모로 왜군을 끌어들인다. 백제 신세가 참 처량하다.


강성한 倭(왜) 
 광개토호태왕릉 비석이 발견되기 전까지 일본(倭)은 문헌사료에서 266년~413년까지 147년간 공백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비문이 발견되면서 공백은 125년으로 22년 단축되었다. 그런데 비문에 등장하는 倭는 강력한 모습이다. 비문에 기록된 백제와 왜에 대한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391년 : 왜가 건너와 百殘을 파(破)하고 **新羅 …… 하여 臣民으로 삼았다. 
396년 : 百殘國 토벌. 百殘主(아신왕)의 아우와 대신 10명 포로로 잡음.
399년 : 百殘이 맹세를 어기고 倭와 화통.
400년 : 5만 군사를 보내 倭로부터 신라를 구원
404년 : 倭가 法度를 지키지 않고 帶方 지역에 침입. 왜 궤멸.
407년 : 5만 군사 파견하여 (왜·백제) 분쇄


 391년(신묘년) 백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파(破)했다고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없는 내용이다. <삼국사기>보다는 비문의 내용이 신빙성이 높다. 비문은 광개토호태왕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고, 왜가 백제를 공격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거짓을 쓸 이유가 없다. 당대에 있었던 일이므로 거짓으로 작성하면 웃음거리다. 
 그러나 12세기에 작성된 <삼국사기>는 고의로 누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396년에 아신왕의 동생과 신하들이 고구려로 잡혀간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400년에 왜의 공격을 고구려가 구원해준 기사 역시 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400년 기사는 “8월, 살별이 동쪽에 나타났다. 10월, 왕이 타던 내구마(內廐馬)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만 있다. ‘왕의 말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는 왕이 그렇게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라가 당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史書 편찬자가 당시에 일어난 중요한 많은 사건들은 생략하고, 말(馬)의 동태를 뭐하러 기록했겠는가? 작은 것 하나라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혜성이 나타났다고 하는 천문기록들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진짜로 천문현상을 기록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늘에 변고가 일어날 조짐이 있었다. 그리고 변고가 일어났다. 다 하늘 뜻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 그러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비문에 기록된 사건들을 종합해보자. 390~407년의 사건들이다.(삼국사기, 광개토호태왕 비문)

390년 : 진사왕 10월, 구원(狗原)에서 사냥하다.
391년 : 7월, 서쪽의 큰섬(國西大島)에서 사냥. 왕이 사슴을 맞혔다.
391년 : 8월, 횡악(橫岳) 서쪽에서 사냥하였다.
391년 : 왜가 건너와 百殘을 破하고 **新羅 …하여 臣民으로 삼았다
392년 : 5월, 일식이 있었다.
392년 : 11월, 구원(狗原)에서 사냥. 구원(狗原) 행궁에서 진사왕 사망.
        백제 진사왕(아신왕의 숙부) 사망
392년 : 11월. 백제 아신왕(근구수왕의 손자) 즉위. 
394년 : 고구려와 싸워 패배
395년 : 8월, 고구려와 싸워 패배
395년 : 8월 패배를 보복하기 위해 한수(漢水) 이북에 집결
396년 : 百殘國 토벌. 百殘主(아신왕)의 아우와 대신 10명 포로로 잡음.
397년 : 5월, 왜와 우호관계 맺음. 태자 전지(腆支)를 倭로 보냄. 
397년 : 7월, 군대를 사열. 
398년 :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한산 북쪽에 집결. 
399년 : 8월, 고구려 공격 위해 군사와 말 징발. 백성들 신라로 도망. 인구감소. 
399년 : 百殘이 맹세를 어기고 倭와 화통.
400년 : 고구려 5만 군사를 보내 倭로부터 신라를 구원
402년 : 5월, 왜에 사신을 보내 큰구슬(大珠)을 청(求)했다. 
403년 : 2월, 왜의 사신을 환대.
        7월, 백제, 신라의 변경을 공격.
404년 : 倭가 法度를 지키지 않고 帶方 지역에 침입. 왜 궤멸.
405년 : 9월, 백제 아신왕 사망. 
405년 : 아신왕의 막내동생 설례(碟禮)가 둘째 형 훈해(訓解)를 죽이고 왕이 됨.
        전지태자, 왜왕의 군사 100명 호위를 받아 귀국. 
       국인(國人)들이 전지태자의 숙부 설례를 죽이고, 
       섬에서 기다리던 전지를 맞이함 (國人殺碟禮, 迎腆支即位. )
407년 : 5만 군사 파견하여 (왜) 분쇄

*<삼국사기>와 광개토호태왕비문은 1년의 시차가 있다. 예를 들어 비문에는 ‘永樂 5年 乙未’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乙未는 395年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는 乙未年을 ‘광개토왕 4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삼국사기> 편찬자의 오류일수도 있고, 고구려의 연호표기 방법에 따른 차이일 수 있다.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390년부터 407년까지 일어난 사건을 보면 백제는 지리멸렬이다. 망조가 든 왕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분까지 일어난다. 391~392년에 백제 진사왕이 사냥을 간 기록이 있다. 사냥 갔다가 결국 죽는다. 진짜 사냥기록인가? 

 진사왕은 ‘385년 침류왕이 죽자 어진 조카 아신왕을 대신해서 왕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사왕 말년에 뜬금없이 사냥한 기사가 나오고, 사냥 갔다가 밖에서 횡사한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다른 내용이 있다. “ 진사왕이 무례하여 꾸짖고 아화(阿花, 아신왕)를 왕으로 세웠다.”고 되어 있다. 뭔가 석연치 않다. 

 진사왕과 아신왕 사이에 뭔가 있다. 아신왕이 죽고 장자 전지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또 숙부가 왕권을 차지한다. 國人(귀족들)들이 제거하고 전지를 왕으로 옹립한다. 완전 개판이다.
 
 신라는 최약체다.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할 만큼 약소국이다. 이랬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는 것이 불가사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왜는 어떤가? 
 391년 백제를 공격하여 파(破)한다. 진사왕과 아신왕 교체기에 일어난 일이다.(이 숙제는 나중에 풀자) 397년에는 백제 태자를 볼모로 잡고 파병을 한다. 400년에는 신라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몬다. 404년에는 대방(帶方)으로 진출한다. 407년에는 당시 아시아 최강 고구려와 싸워 대패 한다. 
 

 일본의 청동기는 250년경에 끝이 난다고 유물학자들은 평가한다. 앞글에서 238년에 비미호가 중국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을 살펴봤다. 연오랑·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삼국유사>이야기도 살펴봤다. 이들이 신라 철기집단이라면 일본의 청동기 종료-철기시작의 단서가 된다.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를 철기집단의 집단이주로 본 길벗의 시각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도 철을 대량 생산할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무기를 생산하여 철병을 갖출만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중반까지 일본 열도에 등장하는 철기유물은 도끼 같은 농기구들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철제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갖출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굳이 야만스러운 남쪽 나라에 목숨을 걸고 험한 뱃길에 부족의 명운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신라를 접수하는 것이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한 것으로 보이는 3~4세기 큐슈(九州)에 철 제련 흔적이 없다. 철기유물은 큐슈와 지금의 시모노세키 주변에서 발견되지만 제련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철제무기로 무장한 대군을 갖추려면 기본적으로 대규모의 좋은 철(鐵)광산이 있어야 하고, 엄청난 양의 숯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련하면서 생기는 불순물인 철재(鐵滓, 슬래그-쇠똥) 등도 함께 발견된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런 흔적이 없다. 그래서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중반까지는 철정(鐵鋌)을 가야에서 수입해서 농기구만 만들었고, 철제무기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4세기 후반인 391년에 倭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파(破)했다. **新羅 ...하여 臣民으로 삼았다.”고 한다. 외계인이 나타나 신무기를 갑자기 전달한 걸까? 무슨 일이 일본열도에 벌어졌기에 3세기 중후반에 청동기를 겨우 면한 일본열도가 1세기만에 당시 초강대국인 고구려와 전쟁을 벌인단 말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4세기 후반에 백제가 수직으로 추락하고, 왜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4세기 중반인근초고왕시절에 잘나가던 백제가 삽시간에 추락하고, 인접국 왜가 수직 상승한 것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
 유물사학계에서는 가야에서 열도로 철정(덩이 쇠) 수출은 5세기 후반부터 중단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열도에서 가야로부터 철정을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고, 열도에서 철을 제련하는 모든 기술이 갖춰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급격한 변화가 있을 수 있었을까? 


*
다음 회차에는 일본의 선사시대와 고분시대에 대한 일반 상식글을 올린다. 
일본의 역사는 학자들이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선사시대> : 죠몽시대-아요이시대-
<고대> : 고분(고훈)시대-아스카시대-나라시대-헤이안시대 
<중세>
<근세>
<근현대>

우리는 수수께끼가 많은 고대사 중 아스카시대까지만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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