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반항에 대하여 / 마광수
내가 볼 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이전에 싸움하는 동물이다. 옳은 명분을 위해 싸우
든 그릇된 명분을 위해 싸우든 인간은 한시라도 싸우지 않고서는 살아나갈 수 없다. 부부
관계를 놓고 보더라도 전혀 싸우지 않고 사는 부부는 결코 행복한 부부가 아니다. 끊임없
는 ‘사랑싸움’으로 이어지는 부부가 그래도 궁합이 맞는 부부요, 권태감을 이겨나갈 수 있
는 부부다.
인간 개인을 놓고 봐도 그렇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돈을 벌기 위해 싸우고, 승
진하기 위해 싸우고, 명예를 위해 싸울 때 인간은 그래도 행복감을 맛본다. 그러나 싸울
대상이 사라져버렸을 때, 말하자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안정된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그 사람은 일종의 ‘성공 우울증’에 사로잡혀 권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거나 돌연한
죽음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물론 정신과 육체에 해로운 것이지만, 스
트레스가 전혀 없을 때 몸과 마음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일생 동안 벌이는 싸움은 소유욕과 지배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싸움이고, 그런 싸
움의 이면에는 ‘반항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서 벌이는 싸움은 ‘상
사’에 대한 반항정신이 기초가 되고, 이성(異性)을 소유하기 위해서 벌이는 싸움은 ‘상대
방의 냉담함이나 건방짐’에 대한 반항정신이 기초가 된다. 독창적인 학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벌이는 싸움은 ‘기존 이론’에 대한 반항정신이 기초가 되고,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
어내기 위해서 벌이는 싸움은 ‘집권자’에 대한 반항정신이 기초가 된다.
낭만적 휴머니스트들은 흔히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귀한 특성 (이를테면 맹자가 ‘성선설’
에서 주장하는 것 같은) 을 찬양하고,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류의 장래엔 반드시 평화가
올 것을 기대하며, 인간은 문화생활을 함으로써 야수성(野獸性)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여전히 전쟁은 벌어지고 있고, ‘문
화생활’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갖가지 무기가 개발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선성(善性)
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갖가지 자유권의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건전한 윤리의식이 훼손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향락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개인의 독
특한 성 취향, 예컨대 동성애나 양성애 같은 것을 억압하는 짓 따위).
그러므로 낭만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긍정적 인간 인식은 성악설에 바탕을 둔 부정적 인간
인식보다 한결 더 위험하다. 차라리 ‘인간은 무조건 반항하고 싸워나갈 때 그래도 실존적
아이덴티티(Identity)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현실적 인간 인식이 실질적 효용가치가 있
다.
내가 문학을 하면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조
히즘이 사디즘의 이면이라면 (다시 말해서 사디즘의 대상이 ‘자기 자신’인 것이 마조히즘
이라면) 인간은 누구나 사디스트인 셈이고, 사디스틱한 공격욕은 인간 실존의 근거가 되
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디즘을 어떻게 ‘창조적 반항’이나 ‘창조적 공격욕구’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지, 사디즘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예수는 사디스트적인 면모를 가끔 보여주었다. 그는 자기가 목마를 때 열매가 달려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화과 나무에다 대고 신경질적 저주를 퍼부어 나무를 말라죽게 했다.
그렇지만 무화과 나무에겐 죄가 없었다. 그때는 열매가 달릴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또한 먹고 살겠다고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는 불쌍한 잡상인들을 채찍으로 내리
쳐 가며 쫓아내는 몰인정한 과단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조국이 곧바로 멸망해 버
리기를 기원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본성에 무척이나 솔직했
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교조로 받드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어 곧바로 세계의 종교 (당시는
로마가 곧 세계였으므로)로 제도화되면서, 예수의 솔직한 사디즘은 왜곡된 상태로 정치
에 이용되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로마는 정치적 사디즘을 기초로 해
서 번성한 무력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정치권력과 연대하는 사디스틱한 투쟁정신이 문제
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안고 있는 위험성 때문이다. 사디즘은 자칫하면 ‘극단적 저항’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극단적 저항이란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논리에 바탕을 두는 테러리
즘을 말한다.
예수는 반항과 투쟁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가 주장한 반항은 정치적 반항이 아니라 ‘수구
적 윤리에 대한 반항’이었다. 예수는 특히 국수주의적 애국심과 무조건적 가족단합주의,
즉 ‘충효사상’을 혐오했던 것 같다.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항해서 끝까지 싸우고 싶었을 것
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도 스스로의 어이없는 희생을 한탄하며 “주여, 어
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예수의 저항을 ‘정치적 반항’으로 잘못 알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의 돌연한 죽음에
‘정치적으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 가서는 자신들이 가졌던 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해 ‘부활’과 ‘대속(代贖)’의 교리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예수의 저항은 분명 ‘창조적 불복종’이요 ‘창조적 반항’이었다. 그는 혈연과
지연까지 무시하는 과감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수가 죽은 후 그를 따르는 많은
신도들이 순교자가 되어 희생되거나 교리다툼의 와중에서 희생된 것을 모두 창조적 반항
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교주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이나 ‘내세의 보상을 희구하는
마조히스틱한 자해의식(自害意識)’에서 나온 희생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반항에는 폭력적 반항과 비폭력적 반항이 있다. 폭력적 반항의 외형적 표출이 ‘테러리즘’
이라면, 비폭력적 반항의 외형적 표출은 ‘문화적 투쟁’이다. 테러리즘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지만, 어쨌든 거기엔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테러리즘에 무조건 찬
동할 수도 없다. 특히 나같이 문약(文弱)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으로서는 테러리즘에 공포
심마저 느끼게 된다. 옳은 명분을 위한 테러리즘보다는 그릇된 명분을 위한 테러리즘 (이
를테면 전두환 정권 때의 ‘삼청교육대’ 같은 도덕적 테러리즘이나, 스탈린의 대숙청 같은
이데올로기적 테러리즘이 좋은 예다) 이 더 많았다는 것도, 테러리즘을 회의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한 원인이 된다.
인류사회가 앞으로 보다 평화스런 행복과 복지를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폭력적 투쟁
보다 ‘문화적 투쟁’이 치열하게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예술을 예로 들
어 생각해 볼 때, 예술은 더욱 더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 되어야 하고 ‘상상력의 투쟁'
이 되어야 한다.
예술은 당대(當代)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계몽수단이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예술은 언제
나 기성도덕에 대한 도전이어야 하고,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창조적 불복종’이나 ‘창조
적 반항’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인, 나아가 모든 문화인들은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
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가슴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진정한 반항인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참된 문화적 생산물은 당세풍(當世風)의 윤리에 대한 반발에서 나오는 것이므
로, 창조적 문화인은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조적 문화인들은 구시대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해체하고 새 시대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제시한다. 문화인이 기존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에 봉사하는 자세로만 일관한다면, 그것
은 ‘문화인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현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정말 옳은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자문(自問)하는 것이 바로 문화인이 할 일이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아닌지를 집요
하게 파고들어 가는 것이 바로 문화인의 참된 임무다.
기성도덕과 가치관을 추종하며 스스로 ‘점잖은 교사’를 가장하는 것은 문화인으로서 가장
자질이 나쁜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문화적 생산물은 무식한 백성들을 훈도(訓導)하여 순
치(馴致)시키는 도덕 교과서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 문화인이 근엄하고 결벽한 교사의
역할, 또는 정치지도자의 역할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문화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질
식되고 만다. 문화의 참된 목적은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이요, 창조적 일탈(逸脫)
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화적 반항’보다는 ‘폭력적 반항’이 더 큰 역할을 했었다.
문화적 반항의 주체인 문화인들은 오히려 기회주의자로 시종하여 권력의 꼭두각시가 돼
버리는 일이 많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역사에 있어서의 혁명적 변화’는 모두 다 ‘민
중적 테러리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런 집단적 테러리즘의 결과는 인성(人
性)의 황폐와 인권 경시로 끝나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폭력적 투쟁보다는 비폭력 투쟁
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류는 점점 더 절감하게 되었다.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비폭력적 문화운동 (말하자면 종교개혁 운동) 을 일
으키면서 ‘투쟁’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런 ‘문화적 투쟁’을 가리킨 게 아닌가 한다. 그는 설
사 어버이와 자식 간이라 할지라도 문화적인 반항과 투쟁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 역
설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진의를 왜곡한 초기 기독교 조직은 예수가 폭력에 의해 희생
된 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거룩한 마조히즘’의 개념을 만들었고, 그런 마조히즘은 다시
폭력적 사디즘으로 이어져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폭력적 사디즘도 없고 폭력적 마조히즘도 없는 ‘문화적, 창조적 투
쟁’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인간은 ‘진정한 반항인’으로서의 진면
목을 보이며 보다 많은 자유와 행복을 평화적으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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