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동>의 밤
경성에서 나남(羅南)까지는 약10리의 거리였으나 나는 나남을 문앞같이 자주 다니게 되었다. 경성의 마을을 사랑하는 한편 나남의 거리도 마음에 든 까닭이었다. 기차로 다니고 버스로도 다니고 때로는 고개를 걸어 넘기도 하였다. 그곳에 간 지 달포도 못되어 나는 거리의 생활의 지도를 역력히 머릿속에 넣어 버렸다. 빵은 카네코가 제일이요 책사는 북관광이 수수하고 찻거리는 팔질옥에 구비되었고 커피는 <동>의 것이 진짬이라는 것을 환하게 익혀 버렸다. 빵 한 근 사러 10리 길을 타박거릴 때도 있고 커피 한 잔 먹으러 버스에 흔들릴 때도 있었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시고 버스로 고개를 넘기같이 위험한 일도 적다. 까소린 냄새에 속이 훑이고 금시에 뇌역질이 나는 것이다. 나는 견디기 어려운 10분 동안을 간신히 참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서슴지 않고 경성과 나남 사이를 버스로 달리기라고 대답할 것을 마음속에 준비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꿀꺽 참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고맙지 않은 차을 먹으러 또 나남으로 가는 것이다. 차를 먹고 빵을 사들고 고개를 타박타박 걸어 넘는 때가 많았다.
고개는 시절을 따라 자태를 변하였다. 이른 봄에는 회초리만 남은 이깔나무의 수풀이 자줏빛을 띠고 잔디밭이 보료같이 따뜻하다. 여름에는 바다가 멀리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고 가을에는 고개 밑 능금밭에 익은 송이송이가 전설 속의 붉은 별같이 다닥다닥 나무 사이에 뿌려진 것이 상줄 만하다. 겨울에는 한층 공기가 차고 맑아 눈발이 휘날리는 속을 부지런히 걷노라면 몸이 후끈히 더워져 어느 때보다도 유쾌한 체온의 조화를 준다. 산마루턱에 올라서 바다를 향하여 더운 봄의 물을 줄기차게 깔리노라면 고개 양편의 마을과 거리가 내 것 같은 호돌스런 느낌이 난다. 나남은 넓게 헤벌어진 휑덩그레한 거리였다. 넓은 벌판에 토막집들을 달룽달룽 들어다가 붙여 늘어놓은 듯한, 모두가 새롭고 멀둥한 거리였다. 새로운 지붕과 벽돌에는 묵은 이야기도 없고 으늑한 이끼가 끼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얄팍한 집안에는 얄팍한 생활이 있을 뿐이었다.
이 거리에 단 하나 눈치 있는 것이 있었으니 한 대의 낡은 마차였다. 먼 외국 어느 거리에서라도 주워온 듯한 여러 세기 전의 산물인 듯도 한 검은 고귀한 낡은 마차. 한 필의 밤빛깔 말이 고개를 의젓이 쳐들고 점잖고 고요하게 마차를 끌었다. 역에서 내린 손님을 싣고-하면 벌써 산문이 되어 버리고 마나 안에 탄 사람이 보이지 않게 검은 휘장을 내리고 모자 쓴 늙은 마부가 앞에 앉아 말을 몰며 고요한 거리를 바퀴 소리를 가볍게 내며 굴러가는 풍경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 무슨 그윽한 옛이야기를 싣고 그것을 헤쳐 보이는 법 없이 시침을 떼고 의젓이 지나가는 것이다. 애숭이 거리에는 아까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거의 경이에 가까운 눈으로 그 한 폭을 무한히 즐겨하였다. 찻집 <동>, 이것이 또한 나에게는 중하고 귀한 곳이었다. 그곳을 바라고 나는 거의 일요일마다 10리의 길을 걸었다. 공원 옆 몸퉁이에 서 있는 조촐한 한 채의 집, 그것이 고요한 <동>의 마차와 함께 거리의 그윽한 것의 하나였다. 붉은 칠이 벗겨진 DON의 글짜가 밤에는 푸른 등불 밑에 깊게 묻혀 버린다.
나는 이 이름의 유래를 모르나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단간방에 탁자와 의자가 꼭 들어찼다. 벽에는 쉬이러의 얼굴이 붙었다. 창의 휘장도 시절을 따라 변하여 여름에는 검은 명주가 커어텐이 걸리고 철이 늦으면 아롱진 두툼한 것으로 갈려졌다. 겨울이면 복판에 난로가 덥고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한편 구석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신선하게 섰다. 낮이면 사단의 초등 병사들이 그 속에 꽉 차는 까닭에 내가 그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느 때나 밤이어야 한다. 마을로 가는 마차 시간 11시까지의 밤을 그 속에서 지우는 것이었다. 주인은 나중에는 집에서 기른 닭고기를 나에게 대접하고 진을 따라 주게까지 되었다.
커피는 처음에는 마련없는 것이 거리에 남양에까지 다녀와 커피 맛에 살찐 친구가 있어서 그의 권고로 나중에는 모카 째버 믹스트르 세 가지를 구별해 내게까지 되었다. 굵은 눈송이가 휘날리는 밤을 나는 그 안에서 난로와 차에 몸을 덥혀 가며 이야기에 휩쓸리거나 레코오드에서 흐르는 <제 두 아무울>의 콧노래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적적한 곳에서 나는 나의 감정을 될 수 있는 대로 화려하게 치장함으로써 먼 것을 꿈꿀 수밖에는 없었다. 생활은 재료만이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향기다. 감정 분위기 향기를 빼앗길 때 그곳에는 모래만이 남는다. 나는 늘 이 향기를 잃어버릴까를 두려워하며 언제든지 그것을 주위에 만들고야 만다. <동>은 그때의 나에게 이 향기를 준 곳이었다.
고요한 곳에서 그 향기를 찾으려고 나는 10리의 밤길을 앞두고 눈오는 밤을 그 속에서 지내는 것이다. 간간히 레코오드 회사 출장원이 내려와 레코오드 연주회를 열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늘 귀한 진미가 되었다. 꿈은 한결 풍성하였다.
물론 주인들과 문학 이야기에 잠기는 수도 있었다. 주인 S와 그의 아내와 처남 T와의 세 사람이 모두 문학에 관하여서는 제법 각각 자신의 의견과 말이 있었다. S는 지방신문의 기자였으나 호담스런 비위에 연말이면 연대장쯤을 찾아가서 객실에 몇 시간이든지 버티고 앉았다가 기어이 금일봉의 봉투를 우려내고야 마는 위인이었다.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고 봉투에 든 액수가 70원밖에는 안된다고 투정을 내는 위인이었다.
동경서 비비대다가 결국 밀려난 것이었으나 그곳에 딩굴고 있을 때에는 정당 연설을 하다가 난투 속에 휩쓸려 얻어맞기도 하고 한동안은 좌익 시인 노릇도 해오고 사회 운동에 몸을 던져도 보았다가 종시 밀려난 것이었다. 아내는 북국에서 자라난 광부의 딸이었으니 직업부인으로 산지사방 구르다가 S와 지내게 되었고, 지식 청년인 처남 T역시 할 일없이 그들을 쫓아나와 거북스런 식객 노릇을 하고 있는 판이었다. 동맹 휴교를 지도하다가 반대파에게 맞았다는 칼침의 흔적을 자랑삼아 몇 번이든지 말하고 보이군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꿈의 부스러기요, 가게에서는 한다하는 쿡 노릇을 하면서 커피자랑과 단벌의 빛나는 그의 구두 자랑을 하는 것이 격에 맞아 보이는 것이었다. 같은 고향 출신의 동경에 있는 몇 사람의 신진 작가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털어놓군 하였다.
S는 한 사람의 여류 작가와의 연애 사건까지 헤쳐 말하였으니 눈치로 보아 그것이 허황한 거짓말만도 아닌 듯하였다. 그 여류 작가는 당시 대잡지에 등장하여 익숙한 단편을 발표하고 있었다. 북국의 광산의 음산한 공기가 방불하게 나타나 그들의 지난 생활은 그랬으려니 짐작하기에 족하였다. 어느 때엔지 신문에 발표된 어떤 우익 여류 작가의 단편을 칭찬하였을 때 S부인은 대단히 불만한 표정을 하였다. 놀라운 기술을 말하다가 범연한 그의 태도에 나는 밑천도 못찾고 객적스런 느낌을 마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철없이 경박하다가도 때로는 확실히 그러한 고집스런 진실한 일면이 있었다. 거짓 장식만이 아닌 뿌리 깊은 생각이 있었다.
가령 이런 일이 있었다. 연대의 초등병 가운데에도 그들도 고향 가까운 곳 사람들이 많았다. 군영 안에서는 책을 금하는 까닭에 그 중의 몇 사람은 가게를 통하여서 붉은 책을 청하였다. 거리에 나와 읽다가 귀영 시간이 되면 가게에 맡기거나 급할 때에는 거리의 풀밭 속에 버리고 영으로 돌아가는 습관인 것을 한번은 부주의로 책자를 품에 지닌 채 돌아갔다가 기어이 발각이 난 것이었다. 당사자가 감금을 당한 것은 물론이어니와 책자의 출처가 문제되어 <동>에까지 손이 뻗쳐 오고야 말았다.
하루는 T가 돌연히 집으로 찾아와서 그 일건의 전후 곡절을 이야기하고 그 하루동안 몸을 맡아 달라는 연유를 말하였다. 손길을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사건 내용도 그런단 것이 아니었으나 결국 S가 그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면 팔방으로 분주히 청을 넣고 하여 T의 일신이 무사히는 되었다. 당사자인 병졸이 군법회의에까지 돌았느지 어쨌는지는 그 후 못들었으나 확실히 시끄러운 조그만 사건이었다.
T에게는 그러한 일면도 있기는 있었다. <동>에 단골로 다니는 때에 색이 다른 사람, 토목기사와 백화점의 사무원과의 거리의 관리와 남에서 돌아온 실업가가 있었다. 토목기사와 사무원은 제법 음악에 대한 소양이 놀라왔다. 청진에 고명한 째즈 가수의 연주회가 있었을 때에도 토목기사만은 동행한 처지였다. 가족들과 이 모든 사람들이 어울리면 가게 안은 웅성웅성 즐거웠다. 나는 눈내리는 여러 밤을 그 안에 휩쓸려 막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군 하였다.
북국의 눈송이는 유달리 굵다. 그리고 밤의 눈이란 길에 푸른빛을 뜨는 것이다. 창 기슭에 쌓이는 함박 같은 눈송이를 두터운 휘장 틈으로 내다보며 난로와 가게 안에 차고 먼 아름다운 것이 눈앞에 보여 오군 하였다. 그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형상도 아무것도 없는 다만 부연 안개일는지도 모른다. 그 안개가 생활에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 안개 속에 많은 밤을 그 안에서 지냈으나 생각하면 다행한 일이었다. 안개 없이는 살 수 없는 까닭이다. 문학도 그 속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때에 한층 생색 있는 것이 된다. 나는 이 끄는 힘, 내 주위에 <동>의 안개를 꾸며 내고 뱉아 내려고 애쓴다.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자이언트문고 문공사 1982.3.1. 124-129쪽
뱀발:
박봉추님 댓글보다
문득 문고판을 뒤져봅니다.
없습니다. ㅋ
헌책방에서 다른 책 주문하다
생각나서 같이 해보았더니
도착했어요
세로읽기......헉~
암튼 분위기 없는 댓글 단 죄로
원본 올립니다.
같이 하고픈 <동>의 풍경이네요
마지막 마무리에서 김승옥의 무진안개 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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