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뿌리 출판사를 통하여 정본한단고기 영인본 및 진본 규원사화 영인본이 ‘05년도에 재출간되었음을 본 홈페이지를 통하여 소개한 바 있습니다.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에서 한배달에서 찾아낸 진본 규원사화처럼 이제 진본 한단고기 찾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단고기의 가치에 대하여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진본 한단고기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아래 자료를 소개합니다.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의 추적성과가 조만간 공개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미 오래전에 소개된 사실이지만 → 혹여 본 게시글로 인하여 관련되시는 분들이 ‘곤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 계연수 선생은
일본밀정(스파이)에 의하여 대동강변에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합니다. 이를 본 이유립 선생이 그 유지를 받들어 남하, 세상에 공개한 것이 한단고기 입니다.
일본인 들이 그토록 말살코자 하였던 '우리의 상고사' 이제 그 '천손민족의 일만년 웅대한 민족사'가 하나하나 복원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입니까 ?
coo2.net 은 네티즌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희망합니다. 공부하시고 맞다면 주변에 널리널리 전파하십시요
감사합니다
- 출처 :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
http://www.historyworld.org
(계연수가 편찬한 한단고기 원본 발견) 이유립이 필사한 한단고기의 진위여부가 사학계의 위서논쟁으로 대립되는 가운데, 그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한단고기 원본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아래의 자료를 올립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historyworld.org)에서 조사한 후, 사이트에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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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출처 : 한류열풍사랑 다음카페)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 선생에 의해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을 엮어 한정판 30부로 출간한 것입니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당시 일제 총독부의 사료말살 계획에 의해 자취를 감추고 단학회(배달의숙) 인사들이 만주 등지에서 간직해오다 해방후 이유립 선생이 귀국하여 원본을 오형기씨에게 필사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선생이 공개한 필사본으로 1911년에 계연수 선생에 의해 간행된 원본이 아닙니다.
이유립 선생이 원본을 갖고 있다가 1949년에 원본을 오형기씨에게 필사하게 하였고 그것을 공개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유립 선생이 원본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기성 역사학계로부터 원본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이유립 옹을 공개하지 못하고 마음고생하시다 1986년에 작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 숙명여대에 소장되어 있다는 연락을받았습니다. 본인이 확인한 결과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 도서관에는 원본이 없었고 숙명여대 ***님에게 부탁하여 그 복사본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이전의 오형기 필사본과 원문을 대조한 결과 이것이 필사되기 이전의 원본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책은 애국지사로서 건국훈장을 받은 바 있는 송지영 전 KBS 이사장께서 1989년에 숙대 도서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책 말미에는 1911년에 배달의숙에서 30부를 출간하고 1980년에 한정판 100부를 출간했다고 하는데 간행자와 소장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고 송지영 옹이 이 책의 간행자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구입하신 것인지는 추후 자세한 조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분과 친분이 깊은 최태영 박사(103세)께서 아마도 환단고기 원본에 대한 내력을 알고 계시지 않나 판단됩니다.
이 책이 1911년에 간행된 확실한 원본이라면 환단고기 위서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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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숙명여대 도서관 자료검색결과입니다.
참고로 영인본은 원본을 사진으로 찍어서 복제(複製)한 책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유립이 베껴서 썻다는 필사본이 아니라, 계연수가 1911년 편찬한 한단고기 원본과 동일한 책입니다.
- 자료유형: 단행본 - 서명/저자사항 : 桓檀古記 / 桂延壽 原著 ; 李沂 校閱 - 개인저자: 계연수, 이기 - 판사항: 影印本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倍達義t塾, 神市開天5876[1979]. - 형태사항: 137p. ; 26cm. - 원본주기: 원본 : 桓檀古記. [발행지불명] : [발행처 불명], 光武15[1911] - 분류번호: 951
→ 왜 민족사서는 하나같이 ‘대출불가’로 되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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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한단고기가 30부 중의 한부와 동일 (자세한 것은 추후 밝힘)
(도) 한뿌리 / 북캠프 대표 권태흥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동영 역 한단고기/규원사화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입니다
이제 정본 한단고기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된 진본 규원사화 영인본을 누구나 쉽게 접하고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구입문의는 "북캠프" 로 -> http://www.bookcamp21.com 구입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하셔도 됩니다 -> http://www.aladdin.co.kr
(正本 桓檀古記, 影印 揆園史話를 내면서...) 정본 환단고기, 영인 규원사화
- (도) 한뿌리 / 북캠프 대표 권태흥


우리는 사서에 목마른 이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철저한 기록문화가 유산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 사서는 12세기 중엽 고려시대 때 편찬된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최고(最古)의 사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여러 사서 가운데 왕조사인 실록 외에 일관된 흐름의 사서들이 꾸준히 전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서 기록한 사서들이다. 그런데 정작 원본이나 진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때의 수서령(收書令)으로 기록된 사서들은 서목만 전할 뿐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다행히 환단고기를 통해 그 내용이 일부 전할 뿐이다.
우리 역사는 “중국의 사서를 인용해야 성립된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 환단고기는 우리에게 귀중한 사서다. 우리 손으로 우리 역사 시각에서 기록된 사서다.
타 민족을 오랑캐라 부르는 중국사의 오만과 소중화주의로 왕조의 안위만 엿보던 시대의 왕조사로 기록된 것이 정사라는 이상한(?) 사관으로 보면 황당하고 당돌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편협한 민족사관이라는 수식어로 급기야는 민족사 해체를 들고 나오는 우를 범하는 작금의 학자들 행태는 선량한 독자들을 더욱 헷갈리게 하고 있다.
우리에게 언제 민족사관이라고 해서 제대로 역사서술을 연구한 적이 있으며, 그것조차도 발붙일 토대가 있었는가!
그나마 민족사서라고 해야 규원사화, 단기고사, 환단고기 외에 몇 종이 전할 뿐이다.
환단고기는 그 원본 보다는 복사본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었다. 가시마 노부루의 <환단고기>나 임승국의 <환단고기>에 인용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각 기(紀)마다 서체가 다른 점, 단군세기의 기를 記로 쓴 점, 무엇보다 정오표가 버젓이 붙어 있다는 점 등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도 이유립 선생께서 환단고기를 전하시면서 기록의 엄밀성과 내용의 중요도를 볼 때 수없이 감수하고 검토하였으리라는 것과
<대배달민족사>에 상당한 논문을 발표한 사실로 보아 제대로 된 <환단고기>를 펴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환단고기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이것은 차례에 누락된 가섭원부여기가 들어 있었고, 단군세기(檀君世記)가 단군세기(檀君世紀)로 기록된 점, 서체가 일정한 점 등으로 이것이 제대로 된 이유립 선생의 <환단고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앞서의 잘못된 곳이 제대로 고쳐진 것도 믿음을 가지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환단고기의 필사본을 보고 싶어 했다. 필자도 그런 면에서 소장하고픈 욕심이 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많은 이들이 필사본을 통해 제대로 된 연구가 이어지길 바라는 뜻에서 <正本 桓檀古記>라는 제목으로 펴내게 되었다.
<揆園史話>는 그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고 우리 역사를 거론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인용된 사서다.
무엇보다도 규원사화의 서문에 담긴 북애의 뜨거운 민족역사에 대한 사랑과 절규가 오늘날도 큰 울림을 지니고 있다.
<影印 揆園史話>를 펴내는 것도 330여 년 전의 북애의 마음으로 오늘의 역사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에서 간행하였다.
우리 역사는 단기고사, 규원사화, 환단고기가 나오면서 진정한 우리 역사를 종횡으로 엮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록된 내용의 일관성과 중국사서나 삼국유사, 삼국사기로서 도저히 풀 수 없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은 독자들과 연구자들의 열정은 오늘날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내며, 우리 역사의 면면을 제대로 연구하고 이에 관련된 많은 논문이 발표되길 기대한다.
환웅천황이 신시를 열었을 때의 이상과 정치,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했을 때의 백성 사랑과 통치이념,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과정의 고난과 다물을 연호로 정한 이유, 왕건이 무엇을 통일하려 했던가를 심각히 연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들의 고민을 이해할 때, 선조들의 사상과 역사흐름의 일관성을 꿰뚫어볼 때,
우리 역사가 나아갈 방향이 제대로 정해지고, 민족의 번영과 세계사에 대한 기여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옛 조상의 고민(苦悶)이 오늘날 어떻게 전개되고 이어져왔음을 통찰할 수 있을 때 우리 역사는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가 “우리 역사를 회통(會通)하라”던 말씀이 그리운 요즘이다.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my&page=2&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이유립&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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