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는 사적인 인간관계에 의해 보호받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은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이 더하다.
개혁당 때의 일이다. 나는 개혁당내에서 공적으로 고위직에 올라있는 사람들보다 유시민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과 사적인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 당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더 빨리 더 정확히 안다는 사실에 기겁을 했다. 정보가 곧 권력이다. 다시 말해 유시민의 친구나 후배라는 것이 공적으로 당선된 사람의 권력보다 더 강하다. 공적인 선거가 무의미하다.
나는 이 예를 유시민을 공격하기 위해 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유시민은 오히려 사적으로 아는 사람들을 챙기질 않아서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불린다. 이러니 다른 50대쯤 되는 정치인들이 국회에 모여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헛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도당을 이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신세'를 진다. 이러니까 어떤 한 인물이 한 자리하게 되면 그 신세를 갚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정치가들이나 유명 기업인들과 사적인 관계가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사적인 관계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지나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나는 그저 내 친구나 후배를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도 선배도 구할 수 없는 계층에 태어난 사람은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는 꼴이 된다.
더구나 개인적 관계가 중요하면 세상에 대한 정보는 자꾸 왜곡된다. 이렇게 해서 조중동기자나 기업인들과 어울리는 정치가들은 자꾸 신세를 지고 신세를 갚아나가면서 세상을 바꿀 힘을 잃어버린다. 그들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와 술 먹고 밥 먹는 게 그냥 술 먹고 밥 먹는 게 아니다. 사람은 부대끼면 신세를 지게 된다. 정이 생긴다. 그러면 공과사가 희미해지는 것이 한국이다.
노무현이 개혁적인가 아닌가 말이 많지만 노무현의 최대장점은 노무현은 특정 사람들에게 빚진 게 적다는 것이다. 파벌 만들지 않았고 학생운동도 안했던 정치인이다. 무슨 계열에서 오랜간 큰 사람은 몇십 년 정치하고 나면 실은 옴짝달싹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더구나 세월은 점점 파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불투명성과 불법자금을 구하기 어렵게 되었으니까 파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자기를 돕는 사람에게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많은 386운동권 정치인들은 이런 점에서 별로다. 이들 중 다수는 학생운동후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한채 십수년을 흘러다닌 사람들이다. 이들이 그동안 살면서 인간적으로 빚을 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국민을 위해서 서로를 비판할 수 있는가. 실력대로 사람을 뽑고 쓸 수 있는가. 인간적으로 그럴 수 없다.
세상이 바뀌려면 빚지지 않은 사람이 필요하다. 빚이 많은 사람은 정치인이 되면 안 된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현실은 정치인이 크자면 특정무리의 사람들에게 무수한 빚을 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개혁되나? 개혁 어렵다.
정동영도 김근태도 개인 플레이어로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다. 작건 크건 파벌로 유명하다. 이 사람들이 정말 개혁할 수 있을까? 나는 비관적으로 본다. 민노당사람들도 자신이 되면 무지 깨끗한 정치할 것 같지만 나는 비관적으로 본다.
그 사람들도 다 인간적 빚장이다. 정말 빚장이가 잘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게 투자를 해왔다. 그것은 사적인 투자다. 누군가가 개혁을 정말로 하려고 하면 이 사적인 인간투자를 부도를 내야한다. 그리고 공과 사를 철저히 가리라고 주장해야 한다. 국참의 행보에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생활 한두해에 벌써 빚이 쌓여서 생기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빚이 적은 것은 젊은 세대다. 일단 빚질 시간이 적고 예전과 지금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유시민도 너무 젊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나서고 사람들이 과감히 공과사를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인간채권을 부도낼 때만이 더 큰 공동체를 위한 개혁이 진행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이 불가능하다. 나이든 현역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인연의 족쇄로 꽁꽁 묶여있기 때문이다. 마치 전두환에게 충성하는 장세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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