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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이 정치에서 좌절했다. 사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별로 놀랍지는 않다. 관료가 정치에 투신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보기 드물기도 하고 그만큼 완벽하게 관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없다고 보는게 옳은 일일 것이다.
며칠 전 반기문씨가 말하길 "나에 대해서는 검증의 검자도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라는 말을 듣고 아 이사람 정말 정치하면 안되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장관 청문회만 해도 예수, 부처를 갖다 놔도 통과하기 힘들거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도는 판에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했나 라는 실망. 그럼 정말 정치판에는 도둑놈들만 있어서 그렇게 항상 시끄러웠을 거라고 생각했나?
나라에 어른이 없다. 서울대 총장하고 경제학자로 이름 날렸던 정운찬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때 무엇에 홀렸는지 국무총리 자리를 덥석 받아서 결국 731부대도 모르고 병역비리 휩싸이고 위장전입 문제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지더니 결국 야인이 되고 말았다. 행정의 달인이라 불리던 고건 총리도 날아갔다. 반기문씨도 날아갔다.
종교에는 이판과 사판이 있다. 이판은 종교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는 수도원 같은 곳을 이야기한다. 사판은 속세에 걸쳐 있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천주교에는 수많은 수도원과 수녀원들이 있다. 이 세상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곳이다. 그 곳에서는 역설적으로 세속에 내려가 있는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세속에 내려와서 중생들을 만나는 스님들도 있지만 그들을 위해 정진하고 기도하는 사찰들이 존재한다. 사판을 지탱하는 많은 힘들이 이판들의 기도에서 나온다고 한다.
흔히 무협지를 보면 세상에 나와 있는 문주나 방주가 존재하고 산 속에서 문주를 지탱하며 무예를 닦고 있는 장로들이 존재한다. 그 장로들은 문주의 일에 간섭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싸움이 나면 가장 앞장서서 자기의 문파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장로들을 보며 문파의 후예들은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이기곤 하는 얘기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라에도 어른이 필요하다.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도 필요하고 외교적인 권위도 필요하고 학문적인 권위를 가진 이도 필요하다. 우리 나라는 블랙홀처럼 그들을 빨아들여서 다들 바보를 만들어 버린다.
이번 반기문씨가 아주 안타까운 이유이다. 만약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들, 훈수에 그치고 있었다면 그의 정치적 발언은 훨씬 더 엄중해졌을 것이며 그를 원하는 국민들은 점점 더 많아졌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가볍게 덥석 물어서 영영 건너지 말아야 할 다리를 건너버렸다. 이제 그는 보수의 한 찌끄러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의 말은 더 이상 정략을 벗어나서 듣기 어렵게 되었다.
그의 좌절이 개인적으로는 가슴 아프다. 내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고, 내 그를 지원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좌절이 우리 국민에게서 커다란 무엇인가를 뺐어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지나친 미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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