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축구 경기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나 우리나라 중계진들은 사실 우리선수들의 반칙에는 관대하고 묵인한다. 반대의 경우 일본측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원래 한쪽의 진영에 속하게 되면 '내가 속한 진영은 무조건 선이고 참이다.'라는 '진영의 정서'에 빠지게 된다. 사람이 꽤나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동물같지만 의외로 감정적 판단을 많이 하는 동물이다.
'반칙이 없는 축구, 페어플레이'라는 가치의 진보를 가져오려면 바로 이런 진영의 정서에서 벗어나 심판자의 철학을 가져야만 한다. 나의 진영에 불이익이 올지라도 나의 진영이 가진 집단감정에 맞지 않더라도 진영을 떠난 원칙과 상식에 충실한 철학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 정치사를 오래 지배해온 지역주의도 결국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질수 밖에 없는 진영의 정서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소백산맥의 동서로 나뉜 두 지역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정서는 결국 자신의 반칙은 합리화하고 남의 피해를 묵인하는 좁고 왜곡된 시야를 만든다.
한나라당의 반칙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이 레드카드감이지만 민주당의 반칙도 심판의 눈으로 보자면 엘로우카드감이다. 민주당이 흔히 외치는 '정통민주개혁세력'이라는 것이 정말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이란 의미인지 '민주개혁세력'이라는 타이틀로 방패삼아 진흙탕 싸움에서 합리화의 명분이라도 얻어보려는 장사꾼 세력인지 의심이 간다.
심판의 눈은 이미 대세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그간 민주당에서 이루어졌던 DJP연합과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대의로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렸고 대세를 얻기 위한 수단에서 대뇌 피질의 가치마저 팔아먹어버린 정치인들에 대한 퇴장을 명령했다.
심판의 눈은 복지라는 가치 자체에 대한 진정성있는 정책과 철학이 아닌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것을 경고했고 인기에 영합하여 3년전엔 '뉴민주당플랜'이라는 보수경제철학을 외치다가 상황이 바뀌자 '3무정책'을 외치는 예측불가능한 플레이에 대해 실망을 하였다.
심판의 눈은 자기 진영의 값싼 승리를 위해 후보경선때 박스떼기, 금권선거 같은 반칙을 하지 말것을 경고하였고 시민의 의사결정과정을 특정 정치인의 승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에 실망하였다.
축구경기에서 양팀의 선수나 양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심판보다는 훨씬 많다. 숫자가 많고 조직이 크다고 참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지금은 민주당이 야권에서 가장 큰 조직이지만 영원히 진영심리에서 허우적댄다면 가치의 진보에 뒤쳐지기만 할 것이다.
축구는 영원히 양팀으로 갈려서 하는 싸움이지만 정치는 국민이 언젠가 현재의 수준에서 보면 심판의 눈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는 축구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 축구경기였다면 인류가 만든 국가는 민주주의로까지 진화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심판의 철학을 외치는 참여당을 민주당은 욕하고 비난할 것인가? 언제까지 반칙이라고 외치는 심판에게 자신의 반칙을 합리화하고 생떼만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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