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호: 좀 더 구체적으로 진보·개혁 진영의 인물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대로 된 집권을 하려면 제대로 된 대표 주자가 있어야 하는데, 솔직하게 까놓고 인물평을 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우선 유시민 씨 이야기를 해보죠. 사실 6·2 지방선거를 되돌아보면, 초반에 야권이 활기가 없다가 국민참여당의 유시민이 야권단일화를 통해 0.98%퍼센트 차이로 김진표 씨를 누르고 경기자사 후보가 되면서 "판이 볼만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유시민은 판을 휘저을 수도, 판을 바꿀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유시민은 아까 말씀하신 노무현 스타일을 상당히 많이 간직하고 있죠. 물론 차이도 적지 않지만요. 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유시민이 한국 정치판의 주역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조국: 사람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니 부담이 커지네요. '주례사'식으로만 말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유시민은 지보개혁 진영의 대표적인 대권주자입니다. <한겨레21>과 전국 10개 대학 학생기자단이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월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유시민은 대학생이 가장 지지하는 차기 대선주자로 뽑혔죠.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이 분명하고, 늦어도 2017년에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뛰고 있을 겁니다. 그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한 만큼 노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유빠'라고 불리는 열렬한 고정지지 세력도 있죠. 분명 그는 정치적 감각과 돌파력이 있어요. 6·2 지방선거 때 '유시민 펀드'는 그의 영리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한국 정치판의 주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연호: 다른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유시민의 강점 중 하나는 책으로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 아닐까요? 그가 가장 최근에 쓴 <<청춘의 독서>>를 읽어보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죠. 정치권에서는 '싸가지' 없다는 말까지 듣지만 그 책을 읽으면 그의 지식과 지혜, 고뇌뿐 아니라 비전, 나아가 겸손까지 느껴지거든요.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면 마이크 잡고 감각적으로 말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한 것 같아요.
조국: 맞습니다. 오바마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할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버락 오바 담대한 희망>>을 써서 자신의 비전을 놓고 독자들과 소통을 했어요. 유시민도 그런 능력을 보여주었죠. 그는 사회자로 알려진 면도 있지만, 직접 여러 권의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내지 않았습니까? 경제학이나 헌법 원리를 풀어 쓴 책부터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까지, 전문학자의 학술서적은 아니지만 상당한 콘텐츠가 있어요. 그의 책을 본 독자들이 지지자로 바뀌기도 하니까요. 다른 정치인들도 책을 내지만, 주로 콘텐츠가 약한 홍보용 책이 많죠.
오연호: 유시민은 무난한 선택보다는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선택을 자주 하는 것 같아요. 국민참여당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그렇고, 경기도지사 후보단일화 과정도 그렇고, 냉정한 승부사적 기질이 있는 거죠. 보통 사람 같으면 엄청나게 비난을 받기 때문에 국민참여당에 참여하지 못하거든요. 선배들인 이해찬, 한명숙 다 안 갔잖아요. 두 기둥이 안 갔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말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해 버린 거죠. 그러니까 저질러버리는 그런 것들이 대중들하테는 한편으로는 욕먹을 행동으로 보이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강단이 있다. 승부를 걸 줄 안다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비치는 거죠.
이렇게 긴장감을 즐기는 것도 정치인이 구비해야 할 능력 아닐까요? 시쳇말로 '사고'를 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민주당의 386 정치인들이 너무 '사고'를 치지 않고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지만요, 유시민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국: 그는 치고 나가는 감각이 좋습니다. 그 점에서 '엉덩이'이가 무거운 민주당의 386 정친보다는 낫죠. 그리고 그는 권력의 속성,정치라는 '게임'의 법칙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마키아벨리'적인 재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시민에게는 품성에 대한 '낙인'이 있습니다. 이 '낙인'은 그가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을 예를 갖추지 않고 야멸치게 비판하면서 생긴 것이죠. 유시민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데 정치권 내에서는 인기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구태에 물든 정치권 인사들의 탓도 있지만, '동지애'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유시민 개인의 스타일 탓도 있지 않을까요? 2005년 3월 열린우리당 시절 김영춘 의원이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유시민을 공개 비판했는데, 이 말이 오랫동안 시중에 회자되지 않았습니까?
유시민이 '큰 꿈'을 이루려면 김영춘이 제기한 비판의 합리적 핵심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너 원래 한나라당 출신이잖아,'반노'였잖아!" 이렇게 쏘지 말고 말입니다. 예리하게 갈라 치는 모습을 넘어 아우르고 껴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희망합니다. 재승박덕才勝薄德의 이미지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그가 꾸는 꿈은 '경호실장'이 아니라 '대통령'이니까요. 그의 정치적 스승인 노무현 대통려은 '적'과는 무섭게 싸우는 '투사'이자 과감한 승부사였습니다. 그러면서 친화력도 뛰어났아요. 유시민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대구를 포기하고 경기도로 간 것을 언급하면서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바보는 아닌 것 같다"라고 했는데, 그에게서 '바보 노무현'의 냄새가 더 나길 바랍니다. 다행히 그는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김영춘은 "명석한 유시민이 겸양과 온유함까지 체득해가고 있다"고 재평가하며 유시민을 지지했죠. 또 다른 인터뷰에서 유시민은 "야수와 싸울지라도 성인의 고결함을 견지해야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국민들이 알아봅니다" 라고 했어요. 그가 말한 대로 그런 지도자가 되길 기대합니다.
한편 유시민은 노무현의 모든 것을 무조건 옹호하려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장관이었던 만큼 이해가 가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무현의 성취를 부정하거나 폄하해서도 안 되지만 그 한계를 외면해서도 안 되죠. 유시민이 자신의 대학 동기인 심상정과 정태인의 비판과 문제제기를 과감히 수용할 수는 없을까요?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노무현 정권이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진 것을 두고 " 1948년 이래 가장 나은 정부가 1987년 이래 가장 나쁜 정부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 이 역설"을 고민해야 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유시민과 노회찬은 여러모로 생각이 다르겠지만, 유시민은 이러한 역설의 원인에 대하여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이 역설이 발생한 것에 일정한 책임도 있을 것이고요.요컨데, 우리 사회의 진보와 개혁은 노무현을 계승하면서도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