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반항범죄의 蔓衍 2008/10/22 12:24 - ‘소외계층 감싸기’는 국가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朴京範, 2008-10-21 오전 09:04:00 이른바 묻지마범죄가 또 일어났다. 이에 對해 진보성향 사회학자는 소외된 자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原論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감싸느냐에 대해서는 (금전적인 지원 말고는) 달리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는 않고 있다. 물론 사회적 능력만 있으면 소외된 자들은 아무리 감싸주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소외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과거의 소외계층은 의식주가 절대부족한 자들이지만 지금은 최소한의 의식주는 公的으로 제공된다. 다만 각자의 바라는 바를 만족시켜주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흉악범죄 蔓衍의 원인을 처벌의 지나친 관대함에 두는 視角도 있다. 어차피 한국의 범죄자들은 사형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있으니 이대로 절망적인 인생을 지낼 바에야 교도소에 가는 것이 별 차이가 없으니 良心不在의 자들에게 달리 극한행위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된 사회라 해도 범죄는 있으니 사회에 책임을 묻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범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있을 필요가 있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우선 구성원각자의 욕심 줄이기와 본분 지키기가 중요하다. 모두가 부유하거나 명예롭게 살수는 없으니 비록 남보다 가지지 못한 자라도 상대적인 박탈감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절대기준에 따른 만족을 추구할 정신적인 능력이 요망된다. 하지만 아무리 욕심을 줄여도 줄이기 어려운 것이 있다. 의식주는 형편에 따라 낮춰 가지면된다 하더라도 인간본연의 생활방식의 한 요소인 性慾은 기대수준을 낮추고 욕심을 줄인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을 얻기 어려운 소외계층일수록 그러한 상황에 대한 자제력은 더욱 薄弱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는 본래 남자가 더욱 많은 노동력과 생산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는 남자를 誘引하는 신체적 매력을 가짐으로써 남자의 노동봉사의 果實을 나누어 받는 生活樣態이다. 여성이 반드시 완전만족을 해야 愛情이 허락된다는 것은 남자가 반드시 일이 재미있어야 노동을 하겠다는 것이나 같아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治安의 발달로 여자는 자기를 물리적으로 보호할 남자가 必要하지는 않게 되었다. 여성에게 자체적 생업의 기회도 많이 제공됨으로써 여자는 적어도 생활을 위해 남자를 원하지는 않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과거에는 남자로부터 생활방편을 제공받는 데 對한 反對給付的인 義務의 意味가 있었던 愛情이, 이제는 여성에게 선택적 위락만이 될 뿐이다. 여성이 반드시 자기가 만족하는 좋은 기분이 완전히 확보되어야만 애정을 허락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은 마치 남자가 자기가 재미있게 느끼는 노동만을 하겠다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여성의 애정제공에 사회적 의무감마저 요구되는 것이다. 진보사회학자가 말하는 ‘강한 자 위주의 사회가 되지 말고 약자와 소외계층을 배려’하라는 실천의 주체는 여성이 되어야 할 것 같다. 2008-10-21 오전 0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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